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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5. 10] 항복 후 미군 장성과 기념촬영을 한 독일공군 케셀링 원수

라마막 2023. 5. 10. 11:23

1945510,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튿날 함께 기념촬영을 한 알베르트 케셀링(Albert Kesselring) 독일국방군 원수(중앙), 맥스웰 테일러(Maxwell D. Taylor) 미육군 소장(우측, 101 공정사단장), 그리고 제럴드 히긴스(Gerald J. Higgins) 미 육군 준장(좌측, 101 공정사단 부사단장)의 모습.

케셀링 원수는 육군 출신이지만 개전 후 공군으로 전군하면서 독일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 총장을 지낸 인물로, 항복 당시 제1 항공군 군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194559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 잘펜델(Saalfendel)에서 미 101 공정사단에 항복했으며, 테일러 소장은 그와 한 차례 면담 후 케셀링 원수를 매우 정중하게 예우하면서 권총을 비롯한 개인 화기나 원수 지휘봉을 계속 소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심지어 테일러 소장은 베르히테스가덴 (Berchtesgarten)의 한 호텔을 섭외해 케셀링 원수와 참모들이 묵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테일러 장군은 케셀링 원수를 구속하지 않고 최대한 배려해 그가 독일육군 중앙집단군사령부가 위치한 첼트베크(Zeltweg)와 남부집단군사령부가 위치한 그라츠(Graz)에 방문하겠다고 하자 에스코트 없이 혼자 다녀오도록 허락했다.

케셀링 원수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전범으로 회부됐으며, 특히 아르데아티네(Ardeatine) 동굴에 이탈리아 민간인 335명을 몰아넣고 학살한 혐의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처형을 명령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재심에서 종신형으로 한 차례 감형됐으며, 정치적 협상과 언론의 관심 덕에 그는 1952년 건강을 이유로 조기 석방됐다. 이후 그는 <어느 병사의 마지막 날>이라는 자서전을 냈으며, 만년에는 주로 독일공군 참전용사 관련 협회에서 협회장 활동을 하다가 19607월에 사망했다.

<참고: 맥스웰 테일러 장군은 19536625 전쟁 마지막 단계에서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휴전까지의 전투를 지휘했으며,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을 거쳐 베트남 전쟁 초창기 남베트남 대사를 지냈다. 미드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서 주인공 윈터스 소령이 유럽종전 후 태평양 전속을 요청하자 그와 개인면담을 하며 '장군이 되고 싶어 이러는거면 이미 경력은 충분한데?'라고 말했던 인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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