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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5. 2] 베를린 시청에 깃발을 거는 소련군 병사 사진의 뒷이야기

라마막 2023. 5. 4. 14:50
익히 잘 알려진 칼데이의 최종 결과물 사진.

1945년 5월 2일, 소련군이 독일 제국의회의사당 건물 위에 소비에트  깃발을 걸고 있는 모습.

이 "제국의회의사당에 깃발을 거는 소련군" 사진은 상징으로 가득할 뿐 아니라, 역사적인 순간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제국의회의사당은 1894년에 건립된 건물로, 당시 건축기술과 건축적 미학이 담긴 시대의 정수였다. 이 건물 자체가 역사성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붉은 군대는 이 의사당을 '적의 상징'으로 삼고 있었다.

소련군 병사가 깃발을 거는 이 예브게니 칼데이(Yebgeny Khaldei, 1917~1997)의 사진은 아마도 이오지마에서 미군 병사들이 모여 성조기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조 로젠탈(Joe Rosenthal)의 사진 다음으로 유명한 2차 세계대전의 대표적 사진일 것이다. 사실 칼데이의 이 사진은 로젠탈의 이오지마 사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비록 이오지마 사진처럼 당대에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이 사진은 소련 당국(특히 스탈린 자신)이 일부러 칼데이를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보낸 후 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리를 상징할 상징적 사진을 찍으라는 명령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유대계 출신으로 소련군 해군 장교이기도 했던 칼데이는 베를린에 도착하자 사진 촬영을 위해 소규모의 병사들을 차출했으며, 이미 소련군은 이틀 전에 의사당 지붕에 깃발을 달아놨지만 1945년 5월 2일에 다시 이 깃발 게양 순간을 재연출하기로 했다. 촬영 후 인화된 사진을 검열한 소련군 검열관은 깃발을 걸던 병사 하나의 손목에 금시계를 차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그가 현지에서 약탈한 시계가 분명했으므로 "약탈자"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칼데이에게 손목시계를 지우도록 명령했다. 칼데이는 이에 시계를 지웠을 뿐 아니라 배경도 약간 어둡게 연출했다.

원본 사진 중 하나. 최종 사진과 비교하면 연출이 가해진 것이 보인다.

훗날 한 소련군 관리는 문제의 "손목시계"가 약탈한 손목시계가 아니라 아드리아노프(Adrianov) 나침반이라 지적했다. 결국 검열관의 오해 때문에 정상적으로 지급된 장비를 시신에서 약탈한 물건으로 오해해 사진에 손을 대게 된 것이다 . 어쨌든 이 "시계" 때문에 한 번 손을 대게 된 사진은 계속 손을 대게 됐고, 깃발도 여러 차례 합성하면서 더욱 더 크고 넓게 휘날리도록 수정됐다. 심지어 이 사진은 나중에 채색까지 됐다.

삭제된 병사의 손목시계.
소련군 제식장비인 아드리아노프의 나침반.

칼데이는 죽는 날까지도 자신의 "대표작"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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