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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945. 9. 8] 2차세계대전 패전 후 귀향 열차를 기다리는 일본 육군 병사들

라마막 2023. 4. 21. 10:09

1945년 9월 8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히로시마(廣島)역에서 귀향 열차를 기다리는 구(舊) 일본군 병사들의 모습. 당시 열차는 귀환병을 위해 무료로 운행했으므로 대부분의 귀환병사들은 열차편으로 귀가했다.

1945815,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후 약 540만 명의 일본 육군 병사와 180만 명의 일본 해군 수병이 연합군 포로로 사로 잡혔다. 전쟁 막판에 본토 공습을 당한 일본은 파괴된 인프라 뿐 아니라 1946년에 찾아온 대 기근 때문에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거의 700만 명의 포로를 잡고 있던 연합군 역시 구 일본군 포로와 민간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어려웠다.

한편, 종전이 선언된 뒤에도 태평양 일각에서는 항복하지 않고 버틴 일본군 병사들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743월에 가서야 항복한 필리핀 루방 섬의 오노다 히로( 小野田 寛郎, 1922~2014) 중위가 있었고, 바로 9개월 뒤인 197412월에는 인도네시아 모로타이 섬에서 저항하던 나카무라 테루오(中村 輝夫, 1919~1979) 일병도 현지 경찰에 항복했다. 이후에도 항복이나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남은 이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대부분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현지 주민과 동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전사한 일본군 병사는 공식적으로 2백만 명이 넘는다.

: "일본군"은 일본의 근대화와 함께 1868년에 창군했다. 에도(江戶)막부는 자체적인 막부 군()을 보유했으나 지방 다이묘(大名)들 역시 자체적인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일본의 개항 문제로 막부와 천황 간의 이견이 발생하자 1868년 메이지(明治) 천황을 중심으로 한 보신(戊辰) 전쟁이 발생했고, 이 전쟁에서 오랜 숙원을 잊고 연합하기로 한 사쓰마(薩摩)번과 쵸슈(長州)번이 "삿쵸" 동맹을 결성했다. 결국 막부를 쓰러뜨린 이 두 번()은 각각 일본 해군과 육군의 뿌리가 되었다.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청일전쟁(1894), 의화단 사건(1899), 러일전쟁(1904), 1차세계대전(1914)을 거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서방에 의해 사실상 "준 서방국가"로 인정받자 아시아권의 맹주가 되기 위해 중국, 조선, 대만 등지로 영역을 확대했다. 심지어 독일-이탈리아와 3국 방공동맹을 체결한 뒤 지속적으로 중국 내륙과 동남아로 영역을 확대하려 하자 미국이 제동을 걸었고, 동남아와 중국 대부분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들어오자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선택했다.

2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 일본 육군은 51개 사단 170만 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중 27개 사단은 중국에, 13개 사단은 중국~몽골 국경에 있었으며, 조선에도 순환 형태로 1~2개 사단이 교대로 전개됐다. 1942년 개전 후에는 홍콩(23), 필리핀(14), 태국(15), 버마(15), 네덜란드령 동인도(16), 말라야(25)에 신규로 부대가 전개됐고, 1945년 말까지 최대 6백 만의 병력을 운용했다.

하지만 엄청난 양적 팽창과 달리, 1943년부터 일본 육군은 엄청난 물자 부족을 겪었으며, 특히 식량과 의료품, 탄약, 무장이 심각하게 모자랐다. 이는 대부분 해상 수송로에 의존해야 하는 일본군의 보급선을 연합군이 잠수함 전력 등으로 끊은 것도 문제였지만, 삿쵸동맹 시절부터 경쟁관계인 일본 육군과 해군의 손발이 맞지 않은 것도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육군 항공대는 전쟁 말엽으로 갈수록 항공기 가동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이는 해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수리부품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컸다. 일본은 전쟁 기간 중 최대 2/3의 병력을 질병과 기아로 잃었다.

공식적으로 2차대전 중 일본 육군에서 발생한 전사/사망 중 비전투 손실(전투 외의 요인으로 사망)2,120,000명 서 2,190,000명으로 추산되며, 전사는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약 1,569,661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가장 큰 손실은 태평양에서 미군과 싸우며 잃은 659,650명이며, 중국에서도 435,600명을 잃었다. 같은 기간 중 일본군에서 발생한 실종자는 810,000명이었으며, 일본군 군속 자격이던 민간인의 사망 역시 672,000명에 달한다. 동 기간 중 일본 해군 역시 473,800명이 태평양과 인도양 전역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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