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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소련이 처형한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라마막 2023. 5. 29. 13:49

어쩌면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 중 하나지만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

비톨트 필레츠키(Wiltold Pilecki, 1901~1948)는 폴란드 육군 출신의 정보장교로,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에서 자행된 나치 독일의 대규모 학살 행위를 파헤친 인물이다.

필레츠키는 이미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폴란드로 쳐들어온 소련군, 리투아니아군, 독일군과 싸웠다. 그는 기술이 좋은데다 계산이 정확한 인물이었으므로 정보를 수집한 후 이를 토대로 적에게 확실한 사보타주를 가했다. 그는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독일군의 유대인 대학살, 통칭 홀로코스트(Holocaust) 정황을 처음으로 포착한 인물이다.

필레츠키는 폴란드가 독일-소련에 나뉘어 점령당하자 지하 저항세력인 폴란드 레지스탕스에 참가했으며, 1940년 스스로 자원하여 아우슈비츠에 수감되겠다고 나섰다. 당시까지 이들 수용소는 단순한 포로수용소 시설로만 알려졌지, 대학살이 벌어지던 처형장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던 때였다. 필레츠키는 아우슈비츠에 도착하자마자 잔인한 대규모 처형 현장을 목격했고, 민간인이 대다수인 수감자들을 혹독하게 대하고 있는 모습을 목도했다.

필레츠키는 수용소 안에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소규모의 정보 수집집단을 조직했으며, 수감된 포로들의 사기를 높게 유지시킬 목적으로 수용소 내에서 다양한 종류의 물자를 빼돌려 분배할 방법을 찾았다. 필레츠키의 집단은 '군사조직연합(MOU: Military Organization Union)"으로 불렸다.

이 MOU는 수용소 탈출을 감행하거나 어쩌다 풀려나는 이들에게 그간 수집한 정보를 들려 보냈다. 풀려난 이는 자유폴란드나 폴란드 레지스탕스에게 이 정보를 넘겼으며, 다시 그 정보는 연합군과 공유되었다. 필레츠키는 본인 조차 엄청난 학대를 당하고,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에도 이 '내부 정보' 수집 체계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운영했다.

필레츠키는 심지어 수용소 안으로 몰래 반입해 들어온 부품 조각을 모아 소형 간이 무전기까지 만들었다. 그는 이를 이용하여 폴란드 레지스탕스와 정보를 주고 받았지만, 1943년 경에 무전기의 존재가 발각되어 파괴된 뒤에는 다시 대체품을 만들지 못했다.

1943년, 수용소의 간수들이 드디어 MOU의 존재를 인지했고,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에 들어가 여러 명의 정보원을 살해했다. 필레츠키는 아우슈비츠 탈출을 감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독일군의 총격을 받았지만 수용소를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그는 탈출 후 살아남았으며, 이후 폴란드 레지스탕스 지휘부에 합류해 바르샤바 대봉기를 조직하는데 참여했다. 하지만 서방 연합군의 비협조로 봉기가 실패로 끝나며 그는 체포됐고, 이번에는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 설치한 구 폴란드 장교 수용시설에 수감됐다.

필레츠키는 2차세계대전이 종전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종전 후 폴란드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어 괴뢰정부가 수립되자 공산당은 그를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았다. 특히 대규모 봉기를 조직한 그의 경력과 우수한 스파이 침투 실력을 파악한 소련은 그를 위험 분자로 분류하다가 온갖 음해로 엮어 그를 1947년에 총살했다. 사후 소련 정부는 그를 어디에 매장했는지 비밀로 했으므로 그의 무덤의 위치는 알 길이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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