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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5] 오키나와 전투 중 전사한 아들을 전장에서 애도하는 미군 대령

라마막 2023. 5. 23. 10:31

19455, 오키나와에서 아들인 마이크 펜턴(Mike Fenton 1925~1945) 일병의 임시 장례식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 중인 미 해병대의 프랜시스 펜턴(Francis Fenton) 대령의 모습. 이 사진은 해병대 전통을 따른 한 가족이 연루된 오키나와 전투의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프랜시스 I. 펜턴 대령(준장 예편)19178월 미 해병대에 병사로 입대했다. 그는 계급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가 19447월 미 제 1해병사단 공병장교로 임관했다. 그는 1사단에 소속되어 펠리리우 전투에 참가해 동성훈장을 수상했으며, 그 직후 이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됐다.

펜턴 대령이 상급부대로 올라간 동안 그의 막내아들인 마이클 펜턴은 1943817일 미 해병대에 입대해 아버지가 임관했을 때 처음 배치됐던 바로 그 사단인 미 제 해병사단 5연대 1대대 B중대에 배치됐다. 당시 마이클은 장교 보수교육과정 추천을 받았지만, 본인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선에서 싸우고 싶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계속 중대 저격수로 활동했다.

이 두 부자(父子)는 오키나와 전투 중 한 농가에서 잠시 서로 스쳐 지나갔다. 이 두 사람은 잠시 농장 한 가운데 서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형인 프랜시스 펜턴 주니어(1941년 해병 소위로 임관)의 소식을 전했다. 두 사람은 다시 자신의 소속 위치로 돌아갔으며, 이것이 두 사람이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됐다.

194557, 미 해병대가 '슈가 로프(Sugar Loaf)' 고지에서 일본군의 역습을 다시 격퇴하던 중 19세의 마이클 펜턴 일병이 전사했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쓰디쓴 소식을 들은 프랜시스 펜턴 대령은 현장으로 달려갔으며, 그 자리에서 성조기로 덮여있는 아들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리고 동행한 정훈장교가 이 순간 태평양 전쟁 중 가장 가슴 쓰라린 사진을 담았다.

펜턴 대령은 기도를 끝내고 일어서서 다른 병사들의 시신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젊은 영혼들 같으니... 아무도 지금 이 순간 함께 있어 줄 아버지가 없다니..." 그는 장례식 후 본부로 돌아가 샌디에고에 있던 아내 메리에게 짤막한 편지를 썼다.

펜턴 대령은 다시 본부로 돌아와 벽에 걸린 큰 지도를 잠시 동안 살펴 본 후 옆에 있던 부하에게 말했다. "5번 다리 주변에 방어를 강화해야겠네. 일본군이 이 다리를 날려버리려고 할 수도 있겠어." 그렇게 그는 다시 전투로 복귀했다.

메리 펜턴 여사는 남편의 편지를 받기 전에 막내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했다. 편지를 받기 이틀 전 미 해병대 사령관이 전신으로 아들의 전사 소식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 다음 날 그녀는 남편이 동성훈장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녀는 기자들로부터 아들의 전사에 대해 질문받자 '아들은 해병대에서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으므로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그녀는 아들이 마지막으로 보냈던 편지를 인용하면서, 마이클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이미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펜턴 대령과 그의 장남은 모두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았다. 마이크 펜턴 일병의 시신은 이후 화장되어 임시 가묘에 매장됐다가 전후 이장되어 현재는 하와이 주 호놀룰루의 연방 국립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디지털 채색=로이스턴 레너드(Royston Leon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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