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16일, 청천강 북방 어딘가에서 미 제 24보병사단 19보병연대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나오고 있는 북한군의 모습. 이들이 군복을 벗어던진 정규군 병사인지, 혹은 게릴라, 통칭 "빨치산"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1월 초부터 미 제 19연대는 청천강 인근의 미 제 8군 교두보를 유지하기 위해 영연방 제 27 여단과 협조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19연대를 제외한 24보병사단의 나머지 잔여 병력과 미 제 1군단은 전투력 복원을 위해 청천강 아래로 이동했다. 따라서 미 제 19보병연대 예하 3, 2, 1 대대만이 청천강 측방의 안주에서부터 구룡강까지 퍼져 방어 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11월 4일부터 6일까지 중국 인민지원군이 대규모 공세를 실시했다. 이들은 한국군의 전면인 군우리와 미군의 동남쪽에 공세를 가했으며, 청천강 교두보에 대해서도 강력한 위협을 가했다. 5~6일 야간에 실시한 공세는 19보병연대 전 진지를 위협했지만, 연대는 진지를 지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세를 가해온 중공군 쪽에 큰 피해를 입혔다. 19연대 2대대 책임지역과 123 고지 인근에서는 474명의 중공군 시신이 전투 후에 수습됐다.
미 정보 계통은 이 시신들이 각각 중공군의 제 119사단 355연대, 제 120사단 358연대, 그리고 소속을 알 수 없는 북한군 병사들이라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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