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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8. 23] '스톡홀름 신드롬'을 낳은 노르말름스토리 강도사건 발생

라마막 2023. 8. 23. 15:40

1973823~28일간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 시내에서 벌어진 노르말름스토리(Norrmalmstorg) 강도사건 중 언론사가 촬영한 스웨덴 경찰 저격수의 모습.

이 실패한 은행 강도 사건은 인질극으로 이어졌고, 인질들의 독특한 행동 양식 때문에 훗날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이 억류 과정에서 납치범과 정신적으로 강력한 유대감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강도사건에서 인질들은 납치범과 강력한 유대감을 갖게 된 나머지, 이들을 보호하고자 나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질은 사실 인질범을 강하게 신뢰한 것 보다는 경찰이 인질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때문에 나선 경향이 강했다.

스웨덴 경찰은 결국 사건 발발 5일 뒤 은행 안으로 최루탄 공격을 감행했으며, 인질범들 역시 저항을 포기하고 곧 순순히 투항하면서 사건이 종료됐다.

: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르말름스토리 광장에 위치한 크레디트방켄(Kreditbanken) 은행에서 발생한 사건. 주모자는 탈옥수인 얀-에리크 올손(Jan-Erik Olsson, 1941~)으로, 열 여섯 살부터 무장강도 범죄를 저질러 여러차례 체포됐던 인물이다. 그는 이 사건 직전에도 은행 강도를 저지르면서 은행에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리고 진입하려 했으나 폭탄이 불발로 터지면서 체포되어 칼마르(Kalmar)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탈주했다.

-에리크 올손은 823일에 교도소를 탈주한 후 곧장 은행털이에 나섰으며, 스웨덴 경찰은 그가 은행에 강도행각을 시작하고 얼마 후 사건을 통보 받은 뒤 현장에 도착했다. 올손은 곧 경찰과 총격전에 돌입했으며 그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총상을 입었다. 올손은 이 때 인질 한 명을 끌어내 의자에 앉아 노래를 하게 시켰으며, 다른 네 명을 끌어낸 뒤 교도소 친구인 클라르크 올로프손(Clark Olofsson, 1947~)과 교환을 제의했다. 경찰과 본격 대치 상태에 들어간 올손은 3백만 크로나(현재가치 2,200만 크로나/283천만원), 두 자루의 총, 방탄조끼, 방탄 헬멧, 그리고 포드 무스탕(Ford Mustang) 자동차 한 대를 요구했다.

스웨덴 정부는 일단 올로프손을 교도소에서 꺼내 현장으로 데려갔으며, 협상관이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그를 일단 풀어 주었다. 이 때 인질들은 올로프손이 현장에 오는 것을 보고 다소 안심했으나, 여전히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선회할 가능성 때문에 겁먹고 있었다고 한다. 올손과 올로프손은 금고 안쪽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뒤 그 안에 인질들을 몰아 넣었다. 협상관은 일단 탈출용 차부터 섭외해 보겠지만 올손과 올로프손은 절대 인질을 데리고 떠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올손은 올로프 팔메(Olof Palme, 1927~1986) 총리와 직접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목에 줄을 걸어 놓은 여성 인질을 끌고 나와 협박했다. 결국 총리는 이튿날 인질이던 크리스틴 엔마르크(Kristin Enmark)와 통화했으며, 엔마르크는 총리의 태도가 매우 불쾌하며, 어서 강도와 인질들이 모두 현장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올로프손은 이 때 잡혀있는 인질들 주변을 돌면서 로베타 플렉(Roberta Flack)<킬링 미 소프틀리(Killing me Softly)>를 부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경찰은 826일이 되자 은행 위층 가정집에서 아래 방향의 금고 안으로 작은 구멍을 뚫었으며, 인질의 상태와 올로프손의 사진을 촬영했다. 올로프손은 곧 이 구멍을 발견하자 구멍을 통해 총을 쐈고, 그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손과 얼굴에 총상을 입었다. 이후 경찰의 강제진압을 예감한 올손은 다시 경찰을 향해 '최루탄 공격을 하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공중에 총을 쏴댔다. 경찰은 이틀 뒤인 28일에 은행 안으로 최루탄을 던져 넣었으며, 올손과 올로프손은 의외로 한 시간 뒤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걸어 나왔다. 인질 역시 가벼운 부상자만 있었을 뿐, 대부분 무사한 상태로 풀려 나왔다.

이후 올손과 올로프손은 기존 형량에 은행 강도 형량이 더해졌다. 올로프손은 재판 중 억울하다면서 '올손에게 협력한 적이 없으며, 최대한 상황을 진정시키면서 인질들을 보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해 기존 형량만 채우는 것으로 판결을 받았다. 올로프손은 석방 후 인질이던 크리스틴 엔마르크를 수 차례 찾아갔으며, 이후 그녀의 가족과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게 됐다고 알려졌다. 물론 그는 석방 이후에도 출소해 몇 차례 더 범죄를 저질렀다.

올손은 10년형을 받았으며, 대치 기간 중 얻은 '인기'로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올손 역시 석방 후 수 차례 더 범죄를 저질렀으며, 금융사기로 10년형을 받고 도주했다가 2006년에 자수했으나 공소시효가 끝나 다시 풀려났다. -에리크 올손은 1996년 아내(인질 중 하나였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은 아닌 것으로 판명) 및 아들과 태국 북부로 이주했다가 2013년 스웨덴으로 귀국했다.

이 사건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인질들이 보인 '인질범에 대한 교감''스톡홀름 신드롬' 때문이다. 당시 인질들은 올손에게 위협을 당하던 상황이긴 하나 경찰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으며, 사건 말미에는 자신들끼리도 폭력적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리크 올손은 2009년 이 사건을 토대로 자서전을 썼으며, 자서전의 제목은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s-Syndromet)>이었다. 이 사건은 2022년 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Netflix)에서 <클라르크(Clark)>라는 제목의 6부작 에피소드로 제작했으며, 스웨덴 배우인 빌 스카스가드(Bill Skarsgård, 1990~)가 클라르크 올로프손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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