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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6. 13]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첫 암살 미수사건 발생

라마막 2023. 8. 31. 17:44

 

1981613, 당시 재위 29년 차이던 54세의 엘리자베스 2(Queen Elizabeth II, 1926~2022)가 연례 기병 사열식인 '트루핑 더 컬러(Trooping the Color)' 행사 중 마커스 사젠트(Marcus Sarjeant, 1963?~)라는 사나이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향해 총을 꺼내 여섯 발을 쐈다.

즉위 후 발생한 이 첫 암살 시도 사건에서 암살자는 여왕의 측면에서 그대로 여섯 발을 쏜 후 체포됐으나, 조사 결과 그가 쏜 총은 전부 공포탄이었다. 그는 징역 5년 형을 받아 복역했다.

: 사전트라는 사내의 정확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78년 공군 훈련단(Air Training Corps: 참고로 고딩이들 보이스카웃 같은 거라고 함)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이 곳에서 훈련 중 공기총 명사수 뱃지를 받은 적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왕립 해병대에 지원했으나 장교들이 괴롭혔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전역했으며, 다시 육군에 지원했지만 이번에는 이틀 만에 나갔다.

다시 사회로 돌아온 사전트는 경찰과 소방수에도 지원했으나 전부 탈락했고, 결국 포케스톤(Forkestone) 예술관 관내 동물원에서 일했다. 훗날 주변인 조사에 따르면 그는 이 곳에 있던 1980년 경 반() 왕정 운동에 참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1613, 사전트는 왕실 행사 일정을 확인한 뒤 몰(Mall)과 호스가드(Horseguards) 거리가 만나는 접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행사가 시작되고 자신의 눈 앞으로 여왕이 지나가자 재빨리 총을 꺼내 여왕을 향해 여섯 발을 연사로 쐈다. 말은 놀라 사방으로 뛰어댔으나 여왕은 곧 말을 진정 시켰다. 곧 여왕 옆에서 함께 행진 중이던 스코트 가드(Scots Guards) 소속 알렉 겔러웨이(Alec Galloway) 상병이 재빨리 뛰어가 사전트를 체포했으며, 통제선 안쪽으로 밀어넣은 후 무장을 해제했다. 당시 사전트는 체포되면서 "유명해지고 싶어! 사람들이 날 알아보게 하고 싶어!!"라고 소리쳐댔다고 한다.

이 사건은 여왕이 버킹검 궁에서 출발한지 15분 만에 발생했으며, 여왕 근위대는 포메이션을 바꿔 밀착 경호로 바꾼 후 행사를 마저 소화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전트는 처음 아버지가 갖고 있던 .455 웨블리(Webley) 리벌버를 꺼내 쓰려 했으나 아버지가 총알을 숨겨둔 것을 못 찾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자신의 총기 소유 허가증을 얻기위해 현지 사격클럽에 가입했으며, 66.9 파운드를 내고 콜트 파이슨(Cold Python) 리볼버 권총 모형 두 정과 공포탄을 구입했다. 그는 행사 전 두 잡지사에 자신이 아버지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냈고, 버킹검 궁에도 사전에 편지를 보내 "여왕 폐하, 트루핑 더 컬러 행사에 가시지 않기를 권합니다. 그날 버킹검 궁 바로 밖에는 암살자들이 여왕님을 암살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라고 편지를 보냈던 것도 확인됐다.

그는 암살 시도 동기로 한 해 전인 198012월에 발생한 존 레논(John Lenon, 1940~1980) 암살 사건과 19813월에 발생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미 대통령 암살시도 사건, 그리고 19815월에 발생한 교황 요한 바오로 2(Ioannes Paulus II, 1920~2005) 암살 미수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존 레논을 암살한 마크 데이비드 챕먼(Mark David Chapman, 1955~)이 사건 후 유명세를 타는 것을 보면서 암살 시도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전트의 친구 한 명은 존 힝클리 주니어(John Hinkley Jr., 1955~)의 레이건 암살 시도 사건 당시 사전트가 "나도 곧 세상을 충격과 궁금증에 휩싸이게 할꺼야.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청소년이 되겠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정신과 의사가 그의 정신 상태를 감정했으나 치료가 필요한 정신 문제는 없는 것으로 진단했다.

사전트는 1966년 이후 처음으로 1842년에 제정된 반역법(Treason Act)이 적용됐으며, 1981914일부터 재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그의 탄원을 거부하고 5년 형을 선고했으며, "피고가 공개적으로 행한 광란의 행위는 분명히 기억되어야 한다. 따라서 피고가 행한 기행에 대해서는 분명한 응징이 따라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패했다.

사전트는 버킹검셔(Buckinghamshire) 인근 그렌든 언더우드(Grendon Underwood) 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했으며, 19841020세의 나이로 석방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이름과 주소를 바꾸고 새 삶을 살기 시작했으며, 복역 당시 여왕에게 사과 서신을 써서 보냈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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