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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12. 18] 일본육군의 마지막 항복자, 나카무라 테루오 이병

라마막 2022. 12. 20. 19:28

1974년 12월 18일, 인도네시아 모로타이 섬에서 저항하던 나카무라 테루오(中村 輝夫, 1919~1979)가 항복해 일본군의 공식적인 마지막 항복자가 됐다.

나카무라 테루오의 대만 귀국 후 모습. 그는 제 4 다카사고 의용대(高砂義勇隊) 소속이었다.


그는 대만계 팡카족으로, 일본인이 아니다. 원래 이름은 아툰 팔라린이던 그는 1943년 11월 대만에서 편성한 타카사고 자원부대에 입대했으며, 동인도 모로타이 섬에 배치됐다. 하지만 그가 배치되고나서 불과 얼마 뒤인 1944년 11월, 모로타이 전투 후 연합군이 섬을 장악했고,  일본군 역시 그가 11월 13일에 전사했다고 군적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섬 깊숙한 곳에서 소수의 병사들과 살아남은 그는 저항을 시작했고, 어느새 저항은 1950년대까지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게릴라 행위를 계속하다 인도네시아 경찰과 충돌했고, 이에 따라 그의 생존을 확인한 일본 정부는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통해 협조를 요청했다. 인니 정부는 공군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실시했으며, 결국 그는 체포됐다. 1972년 12월 18일에 체포된 그는 자카르타로 이동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모로타이 섬에 서있는 그의 동상.


나카무라의 항복 소식은 12월 27일에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나, 그는 일본 대신 곧장 대만으로 송환되기를 희망했다. 대만 쪽에서는 그의 신원을 수소문한 끝에 본명이 리구앙후이((李光輝)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당 정권은 그가 일본제국 시절의 충성파라고 판단해 별로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사실 일본 여론은 그의 항복 소식에 대해 불과 몇 개월 전 필리핀에서 발견된 오노다 히로(小野田 寛郎, 1922~2014)에 비해 뜨뜻 미지근 했다. 일단 오노다는 장교인데다 민족적으로 일본인이기 때문에 관심이 컸지만, 나카무라는 스스로 대만 송환을 희망했을 정도로 정체성부터 일본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오노다 히로의 경우 밀린 급여를 산정해 지급했으나, 나카무라의 경우는 1953년에 개정된 연금법에 따라 병사계급이라 연금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린 급여 지급을 거절하고 위로비 조로 6만 8천엔(현재 물가가치로 약 170만원)만 지급했다.

그는 대만 귀국 5년 뒤인 1979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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