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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625전쟁사

[1980. 10. 18] 625전쟁 에이스의 짧았던 여정

라마막 2023. 6. 12. 14:25

마누엘 페르난데즈 (Manuel J. Fernandez, Jr.) 대위는 미 공군에서 20년 이상 복무한 전설적인 파일럿으로, 실전 참가 기록으로 수많은 훈장을 받았을 뿐 아니라 6.25 전쟁 중 최다 격추왕 3위에 오른 에이스였다.

6.25 전쟁 참전 전까지 그는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Las Vegas, NV)의 넬리스(Nellis) 공군기지의 비행 교관을 지내고 있었다. 페르난데즈 대위는 6.25 참전을 희망했으므로 교관 보직 중이었지만 참전부대로 옮겨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당시 공군은 최고의 교관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을 주저했다. 그가 차라리 넬리스에서 준수한 조종사들을 더 많이 양성해 전쟁터로 보내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요청이 계속 거부되자 페르난데즈 대위는 태업에 돌입했다. 그는 술에 취해 새벽 5시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어떤 날은 출근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을 전쟁터로 보내줄게 아니면 차라리 군사법원으로 보내달라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결국 미 공군은 그를 한국으로 파견하기로 했으며, 한반도에 도착한 그는 에이스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이름 값을 했다.

페르난데즈는 특히 전투기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다. 페르난데즈대위는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 중 도그파이트 기록이 월등히 높았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저격" 기술 덕이었다.

그는 미그기 뒤에 몰래 따라붙기보다는 멀리서부터 지능적으로 미행했다. 그 만의 독특한 작업방식(modus operandi)은 '급작스럽게 기동하고, 무장은 오직 완벽한 사격 위치에 도달했을 때만 발사한다'였다.

6.25 전쟁의 다른 에이스들과 마찬가지로 페르난데즈 대위는 종종 압록강을 넘어 중국 공역으로 들어가 사냥감인 미그기들을 쫓았다. 그는 항상 적을 추적하는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잊지 않았으며, 수많은 격추 기록을 완수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윙맨(wingman)의 안전을 놓고 무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는 총 14.5대의 격추기록을 달성해 격추왕 3위에 올랐다. 그의 기록의 독특한 점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이 기록이 달성됐다는 점으로, 그는 단 9개월 만에 이 기록을 세웠다. 그는 9개월 임무 중 우수공로훈장과 은성훈장, 우수비행훈장 2개를 수훈받았다.

페르난데즈 대위는 당대 최고의 조종사로 마음껏 기량을 뽐냈으며, 귀국 후에도 비행관련 영화 자문을 해주고 F-100 슈퍼 세이버(Super Sabre) 전투기 시험비행을 맡는 등 이견이 없는 "공군 최고의 조종사"로 활약했다. 그는 1960년 8월, 스페인어 어학교육을 이수한 후 스페인 공군 자문관으로 파견됐으며, 1963년 1월 소령 계급을 끝으로 전역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은 1980년 10월 18일 어느날 갑자기 끝나고 말았다. 남미의 모처에서 항공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 그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돌았는데,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던 이야기는 그의 CIA요원 설이었다. 이 설에 따르면, 그는 퇴역 후 CIA로 옮겨 중남미 지역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항공기 사고로 순직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설은 끝내 확인된 바 없으며, CIA도 별도로 성명을 내거나 인정한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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