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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10. 5] CIA 비밀 작전 중이던 해센퍼스, 니카라과에서 체포

라마막 2023. 11. 12. 14:16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 파일럿인 유진 해센퍼스(Eugene Hasenfus, 1941~)19861115일 니카라과 법정에서 재판받던 당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는 모습. 그는 테러 사주 혐의로 30년형을 받았다.

1986105, 해센퍼스는 코포레이트 에어 서비스(Corporate Air Service)사 소속 HPF821기로 등록된 C-123K 수송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는 CIA가 설립한 위장 기업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이 곳에서 니카라과까지 정기 비행을 하면서 반공단체인 '콘트라(Contra)'에게 계속 무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날, 그의 수송기는 산디니스타 방공 부대에게 식별되었으며 곧 SA-7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

당시 해센퍼스는 화물칸에 약 60정의 AKS-47 돌격소총, 5만 발의 7.62mm , RPG-7 약 열 댓 기와 탄두, 그리고 150켤레의 정글화를 싣고 있었다. 이들 무기 대부분은 당시 이슬람 혁명으로 반미 성향이 된 이란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을 뒤흔들며 위협한 통칭 "이란-콘트라(Iran-Contra) 사건의 기반이 되었다.

: 해센퍼스는 원래 미 해병대 조종사 출신으로, 19605월부터 약 5년간 복무한 후 명예 전역했다.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나 곧 CIA에 채용된 후 화물기 조종사로 활동해 온 것으로 보인다.

운명의 날인 1986105, 그의 항공기는 평소 다니던 항로를 통해 니카라과로 진입했으나 그 날 따라 산디니스타 정부군에게 걸려 지대공 미사일에 요격당했다. 그는 추락하는 와중에 코스타리카로 들어가려 했으나 국경에서 불과 56km 지점에 추락해 체포됐다. 추락 당시 동승 중이던 세 명의 승무원은 모두 사망했으며, 해센퍼스만 유일하게 생존해 항공기 해치를 통해 탈출했다. 하지만 며칠 간 시골을 헤메고 다니던 그는 정글 속에서 낙하산으로 만든 해먹을 걸고 휴식하다가 니카라과 군에게 포착되어 체포됐다.

체포 후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CIA 소속임을 밝혔으며, 이전에는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물자 투하 임무를 소화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그의 신원이나 CIA 관련성 등에 대해 모두 부인했으며, 그저 민간인이 콘트라 정부를 돕던 것으로 보인다고만 언급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조지 슐츠(George Shultz)는 심지어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의 항공기는 민간 항공사가 전세로 운영하고 있던 것을 확인했으며, 탑승자 모두 미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19861115일 재판에서 30년 형을 받았다. 해센퍼스의 아내인 샐리(Sally)가 니카라과 대통령이던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 1945~)에게 사면을 요청하는 편지까지 썼으나 묵살당했다. 훗날 오르테가 대통령의 동생인 움베르토 오르테가 국방장관은 "30년 형은 해센퍼스 개인에게 내린 형벌이라기보다는, 미 정부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정책에 대한 항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뒤인 19861217, 해센퍼스는 니카라과 정부에 의해 사면조치 되어 석방됐다. 당시 석방에는 로비스트 출신인 미 상원의원인 크리스토퍼 도드(Christopher Dodd, 1944~ /민주당/코네티컷) 의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 후 해센퍼스는 자신을 "위험한 임무"에 투입했다는 이유로 미 공군의 리처드 세커드(Richard Secord, 1932~) 소장, 서던 에어 트랜스포트 사의 앨버트 하킴(Albert Hakim, 1936~2003), 그리고 CIA의 위장 회사인 코포레이트 에어 서비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다. 이 사건은 미 하원에서도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실제로 이행되지는 못했다. 언론 일각에서는 당시 미국이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체포된 인질과 맞교환 조건으로 무기를 공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 또한 분명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해센퍼스는 이후 고향인 위스콘신으로 돌아갔으나, 200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성기노출 혐의로 체포됐고, 2005년에는 월마트 주차장에서 집행유예 조건을 어기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체포되어 수 개월 간 그린베이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수감 중 자신의 니카라과 석방 19주년에 맞춰 사면되어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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