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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12. 2] 희대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사살

라마막 2022. 12. 5. 11:14

메데인 카르텔의 대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머그샷. 이 사진은 그의 제국에 금이가기 시작하는 시발점이 됐다.

1993년 12월 2일, 콜롬비아 메데인(Medellin) 카르텔의 대부이자 마약왕인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1949~1993)가 총격전 중 사살당했다. 그는 당시 포위망을 좁혀오는 수색팀 '서치블록(Search Bloc)'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최후를 맞이했다.
 
지구 최대의 마약제국을 구축한 그는 미국과 척을 지면서 미 정부 산하 마약무기단속국(DEA), 콜롬비아 경찰, 그리고 라이벌인 칼리(Cali) 카르텔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사살당하던 날 위고 마르티네즈(Hugo Martinez) 준장이 지휘하는 콜롬비아 전자감시팀은 통신전파의 삼각측량 방식을 이용하여 에스코바르의 핸드폰 전파를 역추적 해 그가 메데인 지역의 중산층 동네인 로스 올리보스(Los Olivos)에 숨어있는 것을 파악했다.
 
에스코바르가 숨은 집을 확인하던 콜롬비아 군 당국은 8인조 수색팀을 에스코바르의 은신처로 최종 지목한 가택에 투입했으며, 이들은 현관문을 폭파시킨 후 1층부터 진입해 에스코바르 일행을 2층으로 몰아갔다. 에스코바르는 창을 열고 지붕으로 탈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에스코바르를 따라간 이는 경호원인 알바로 데 제수스 아귀델로(Alvaro de Jesus Agudelo), 통칭 "엘 리몬(El Limon)" 하나 뿐이었으며, 이 두 사람은 밀집된 집 지붕을 건너 뛰며 내달려 도로까지 도달한 후 차편으로 도주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엘 리몬이 먼저 사살당했고, 잠시 후 에스코바르 역시 콜롬비아 국립경찰 대원에게 사살당하면서 마약왕 최후의 도주극은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에스코바르는 다리와 몸통에 각각 한 발씩 총에 맞았으며, 치명상이 된 한 발은 한쪽 귀를 관통해 뇌를 뚫었다.
 
에스코바르를 죽인 '마지막 한 발'을 누가 쐈는지는 두고두고 계속되어 온 관심사지만 결국 밝혀진 바가 없으며, 사실 이 한 발이 추격 중에 발사된 것인지, 혹은 그가 투항한 뒤 처형 목적으로 쏜 것인지도 검증된 바가 없다. 심지어 에스코바르의 친인척들은 그 '마지막 한 발'이 에스코바르가 자살할 목적으로 스스로 머리에 대고 쐈을 것이라 믿는다. 특히 에스코바르의 두 형제인 로베르토 에스코바르(Roberto Escobar)와 페르난도 산체스 아렐라노(Fernando Sanchez Arellano)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분명 최후를 직감했을 때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 근거는 에스코바르가 형제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때문인데, 에스코바르는 생전에 "만약 진짜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이 되면, 그땐 내가 스스로 내 귓구멍에 대고 한 발을 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주하던 에스코바르를 사살한 후 기념촬영을 한 콜롬비아 군경들.

 
에스코바르의 사망 직후 메데인 카르텔의 잔당은 완전히 와해됐으며, 마약시장은 경쟁조직이던 칼리 카르텔이 장악해 1990년대 중반까지 마약제국을 구축했다. 하지만 칼리 카르텔 역시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의 공조에 걸려 결국 수뇌부가 사살당하면서 조직이 와해되고 말았다.

 

에스코바르가 범죄조직을 구축해놓고 오래 갈 수 있던 이유는 그가 '콜롬비아의 로빈 후드' 이미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던 그는 마약 거래로 재산이 축적되자 표 밭이 될 빈민층 위주로 다양한 복지사업을 일으켰고, 그 결과 에스코바르가 범죄자로 쫓기게 됐을 때에도 그로부터 혜택을 받은 빈민들은 에스코바르를 숨겨주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애도를 위해 장례식에 방문한 이는 25,000명이 넘었다. 심지어 이들 일부는 그가 성인이었으며, 사후에는 신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 하며 죽은 마약왕의 명복을 빌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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