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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4. 7]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르완다 대학살 시작...투치족의 70%가 살해당해

라마막 2023. 4. 8. 21:56
학살이 시작된 후 인근 우간다로 피신 중인 투치족 난민들.

1994년 4월 7일, 아프리카 동남부의 소국인 르완다에서 대학살이 시작됐다.

르완다 대학살은 후투족이 장악 중이던 르완다 정부가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대량 학살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이 학살극은 유럽 열강에 의한 식민통치 시절부터 누적된 민족 갈등으로 시작됐다. 지배국이던 벨기에는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우대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다수 민족인 후투족은 대부분 농부였던 반면, 투치족은 물소 사육을 주로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르완다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완다를 지배했던 독일과 벨기에는 이에 따라 의도적으로 식민정부에 투치족을 주로 기용했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우위의 입장에서 식민 종주국에 협력하며 후투족 착취를 도왔다.

르완다는 1961년에 독립했으며, 벨기에가 빠져나가자 마자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던 후투족이 신생 정부를 장악했다. 그리고 식민시절부터 쌓인 구원을 해결하기 위해 투치족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90년부터 1993년까지 후투 정부와 우간다계 반군 간 내전이 발발했으며, 이 과정에서 후투 정부의 후투족은 조직적으로 투치족 인구를 말살하기 위한 학살 준비에 들어갔다.

투치족에 대한 학살은 후투족 출신인 주베날 하뱌리마나(Juvenal Habyarimana, 1937~1994) 대통령이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후투 정부는 투치족이 대통령 암살의 배후라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학살을 시작했으며, 후투족 민병대는 마을 단위로 수색을 하며 눈에 띄는 후투족은 모조리 죽였다. 통계에 따르면 당시 일일 단위로 약 8천 명의 투치족이 학살당했다.

대학살 기간 중 수적으로 열세인 투치족은 일방적으로 살해당했으며, 도합 80만 명에서 1백만 명의 투치족이 후투족 민병대와 정부군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르완다 내에 거주하던 투치족 인구의 70%에 육박한다.

사태 수습을 위해 UN 및 서방국가들이 개입했으나, 압도적 숫자의 후투족을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사건이 발발하자 국제연합(United Nations)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국제사회는 대학살극을 저지하기 위해 일부 개입했으나,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일이었으므로 소극적으로만 개입했을 뿐이다. 특히 주요 강대국들은 이 사건이 아프리카 외로 번지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는데, 예를 들어 UN 안전보장이사회(UNSC)에서 르완다 개입을 시도하자 미국이 부결권을 행사해 개입을 막았다. 결국 식민 종주국의 책임 때문에 벨기에를 주축으로 한 국제평화유지군이 일부 전개되기도 했으나, 경무장에 교전권도 완전히 갖지 않은 이들이 분노한 후투족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당시 UN PKO 국장이던 코피 아난(Kofi Anan, 1938~2018/훗날 UN 사무총장 역임)은 본인이 아프리카 가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벨기에군의 철군을 명령했는데, 이는 '유럽인'이 이 내전에서 전사할 경우 정치적 무게가 다를 뿐 아니라 서방세계의 강제 개입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이 흘리는 피는 아프리카인의 피와 정치적 무게가 달랐으므로, 주요 열강은 휴전을 위해 개입시킨 평화유지군이 오히려 우간다 외로 전쟁을 확전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 르완다 대학살은 발발 100일 뒤, 투치족 반군이 후투족 정부를 전복하는데 성공하면서 종식됐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다시 투치족이 주도하게 된 르완다 정부가 후투족을 상대로 복수의 학살극에 돌입하면서 수만 명이 죽었다.

오늘날 르완다 대학살은 인류가 가장 최근에 경험한 일방적 대학살 사건으로 기억된다. 사건 종식 후에 들어선 현재의 르완다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으나, 여전히 잔인한 전재주의적 영향이 르완다 내에 남아있는 상태이다.

투치족 희생자들의 무명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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