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일본군 3

[1945. 9. 8] 2차세계대전 패전 후 귀향 열차를 기다리는 일본 육군 병사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후 약 540만 명의 일본 육군 병사와 180만 명의 일본 해군 수병이 연합군 포로로 사로 잡혔다. 전쟁 막판에 본토 공습을 당한 일본은 파괴된 인프라 뿐 아니라 1946년에 찾아온 대 기근 때문에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거의 700만 명의 포로를 잡고 있던 연합군 역시 구 일본군 포로와 민간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어려웠다. 한편, 종전이 선언된 뒤에도 태평양 일각에서는 항복하지 않고 버틴 일본군 병사들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74년 3월에 가서야 항복한 필리핀 루방 섬의 오노다 히로( 小野田 寛郎, 1922~2014) 중위가 있었고, 바로 9개월 뒤인 1974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 모로타이 섬에서 저항하던 나카무라 테루오(中村 輝夫, 1..

[1945. 6. 27] 적들조차 인정한 일본의 마지막 명장, 우시지마 미쓰루 중장

2차 세계대전 및 태평양전쟁의 종장 중 하나인 오키나와(沖縄) 전투에서 방자(防者) 측인 일본군을 지휘한 우시지마 미쓰루(牛島 満, 1887~1945) 중장의 모습. 그는 압도적인 열세의 상황에서 지구전으로 대응했으며, 이 때문에 미군은 지연전에 말려들면서 오키나와 제도 점령에 2개월이 걸렸을 뿐 아니라 사상자도 35,000명 이상이 발생했다. 가고시마(鹿児島) 태생인 그는 사쓰마 번(薩摩藩) 무사였던 부친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이 현대화 된 군대를 설치하자 부친 또한 초창기 일본군에서 장교 생활을 했다. 그는 성년이 되어 일본 육군사관학교 20기로 입교했으며, 1908년에 졸업하여 육군대학에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장)나 다나카 시즈이치(田中静壱, 대장) 등과 함께 28기로 입교했다. 중일전..

[1974. 12. 18] 일본육군의 마지막 항복자, 나카무라 테루오 이병

1974년 12월 18일, 인도네시아 모로타이 섬에서 저항하던 나카무라 테루오(中村 輝夫, 1919~1979)가 항복해 일본군의 공식적인 마지막 항복자가 됐다. 그는 대만계 팡카족으로, 일본인이 아니다. 원래 이름은 아툰 팔라린이던 그는 1943년 11월 대만에서 편성한 타카사고 자원부대에 입대했으며, 동인도 모로타이 섬에 배치됐다. 하지만 그가 배치되고나서 불과 얼마 뒤인 1944년 11월, 모로타이 전투 후 연합군이 섬을 장악했고, 일본군 역시 그가 11월 13일에 전사했다고 군적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섬 깊숙한 곳에서 소수의 병사들과 살아남은 그는 저항을 시작했고, 어느새 저항은 1950년대까지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게릴라 행위를 계속하다 인도네시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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