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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세사

[1167. 7. 8] 시리미움 전투에서 대승한 비잔틴 제국

라마막 2022. 12. 8. 23:21

서구의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12세기의 비잔틴(Byzantine) 군은 야전(野戰)에 능숙한 군대였다. 비잔틴 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마누엘 콤네노스(Manuel Komnenos, 1118~1180) 재위 중이던 1167년에 벌어진 시리미움(Sirimium) 전투이다.

당시 비잔틴 군은 안드로니코스 콘토스테파노스(Andronikos Kontostephanos, 1132~1182)가 지휘하고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인 니케타스 코니아테스(Niketas Choniates, 1155~1217)는 이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출발하기 전 "황제는 말소리가 들릴 거리에 서서 군대에게 고상하고 유창하며 설득력 있는 용어로 연설을 했다. 그는 콘토스테파노스 장군을 독려했다... 황제는 전술적 기동 뿐 아니라 공격 시기, 사용해야 할 무기, 그리고 진형에 대해서도 말했다."라고 적었다. 마누엘 황제는 군이 "야만족들을 격퇴하여 황제의 위광을 높인다면, 이들에게 산처럼 쌓인 보화로 보답하겠다"고 말해 군의 사기를 북돋았다.

이들 군대가 시리움 근처까지 왔을 때, 헝가리 병사들은 게르만계 용병까지 포함한 15,000명 가량으로 비잔틴 군보다 훨씬 더 큰 수적 우세를 과시했다. 헝가리 측은 데네스(Denes) 장군이 지휘하고 있었으며, 그는 이미 비잔틴 군과 소규모로 접전을 벌여 몇 차례 승리한 적이 있었으므로 이번 전투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1167년 7월 8일, 비잔틴 군은 콘토스테파노스 장군을 중심으로 진형을 펼쳐 전투 준비를 마쳤다. 코니아테스의 기록에 따르면, 마누엘 황제는 별자리와 점성술을 볼 때 이날 길운이 좋지 못하므로 가급적 전투를 피하라고 지시를 보냈지만, 콘토스테파노스 장군은 이를 무시했다.

전투는 곧 개활지에서 펼쳐졌으며, 헝가리 군은 우세한 기병을 앞세운 반면 비잔틴 군은 집단으로 뭉쳐 서서히 전진했다. 비잔틴 군은 헝가리 군 진형을 깨기 위해 궁기병으로 공격했으며, 곧 쌍방은 근거리에서 충돌했다. 코니아테스는 이 전투를 묘사하면서 "방패와 방패가 부딪혔고, 도끼와 도끼가 불꽃을 튀겼으며,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혔다"고 묘사했다.

헝가리 군은 기병으로 돌격했으나 비잔틴 군은 뭉툭한 철제 전곤(戰棍)으로 갑옷을 걸친 헝가리 병사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곧 헝가리 군이 사방으로 흩어진 뒤 퇴각을 시작하자 비잔틴 병사들은 잔적 격멸에 들어가 헝가리 병사들을 처치했으며, 쓰러진 병사들의 갑옷을 벗기고, 기수를 잃은 헝가리 군의 말을 뺏어 탔다.

비잔틴 군은 승전 후 콘스탄티노플로 귀환했으며, 마누엘 황제는 승전보에 기뻐하며 신들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헝가리 측은 이 패배를 인정했으며, 이후 마누엘 황제가 제시한 평화 협정 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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