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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11.14] 연합국을 상대로 성전을 선언 중인 오토만 제국

라마막 2022. 11. 30. 12:02

알리 하이다르 에펜디가 파티흐 모스크에서 지하드(聖戰)을 선언 중인 모습.

1914년 11월 14일, 파트와(Fatwa: 이슬람 율법학자) 고문인 알리 하이다르 에펜디(Ali Haydar Efendi, 1870~1960)가 이스탄불의 파티흐(Fatih) 모스크에서 지하드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이날 오토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은 독일의 지원과 독려를 받아 지하드(聖戰)를 선언했으며, 전세계 무슬림 신자들로 하여금 오토만 제국군에 합류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라고 선언했다. 오토만 제국은 흑해 공습사건 후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날리자 1914년 11월 1일자로 동맹군(Central Powers) 측에 가담하여 1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오토만 제국은 왕정제와 유사한 칼리프 국가였으며, 당시 술탄(Sultan)인 메흐메드 5세(Mehmed V, 1844~1958)는 전세계 이슬람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젊은 투르크(Young Turk)> 혁명세력과 독일은 둘 다 '지하드'를 통한 선전 선동이 전세계 무슬림을 단결시켜 동맹국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오토만 제국은 전세계 무슬림의 중심점이었으므로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 등에 거주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이 성전에 참여할 경우 연합국 식민지 영역 내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고, 이는 연합군이 동맹군 방향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총구 방향을 흩뜨릴 중요한 카드가 될 수 있었다. 독일은 이렇게 승리를 할 경우 연합국이 보유하던 식민지까지 전후에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1914년 11월 14일, 이스탄불의 파티흐 모스크에서 페트와(Fetva) 종교 고문인 하이다르 에펜디는 동맹국의 적인 '연합국'에 대한 지하드를 선언했으며, 동시에 연합국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했다. 이 선언은 전세계 무슬림들로 하여금 '이슬람의 이름으로' 무기를 들고 연합군에 대항하게 하는 중요한 선언이 되었다.



이후 독일은 이 무슬림 병사들의 지하드를 지원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독일은 특히 서부전선에 투입된 영국령 인도 식민지와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동원한 연합국 내 무슬림 병사들을 부추기기 위해 노력했다. 동맹군은 무슬림 병사들이 전개된 전투 지역에 지속적으로 항공기를 띄워 병사들이 독일진영으로 투항하도록 권유하는 전단지를 뿌렸다. 이들은 전단지를 통해 "무슬림 병사들"이 독일 진영으로 올 경우 영국이나 프랑스인들보다 훨씬 나은 처우를 약속했다.



한편 독일은 1915년에 처음으로 할프몬틀라거(Halbmondlager) 포로 수용소 내에 첫 모스크를 세웠으며, 약 4,000~5,000명 가량의 무슬림 포로들만 이 곳으로 따로 수용한 후 전향을 유도해 3,000명 가량의 무슬림 포로들이 독일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독일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독일군으로 전향한 연합군 내 무슬림 병사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전단지 등도 무시한 채 계속 자신이 속한 영국군 혹은 프랑스군에 충성했다.



오토만 제국의 지하드 선언은 사실 국내적으로 성공했을 뿐, 전세계적으로는 호응이 미지근했다는 것이 후대의 평가이다. 심지어 독일은 이 작업을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썼지만 결과는 실패작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드는 중동지역에서 싸우던 영국계 인도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하는 미미한 효과가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무슬림 형제들을 죽여야 하는 갈등상황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오토만 제국은 이 '심리적 영향'이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도 병사들의 진지를 공격할 때마다 이를 이용하려 했지만, 인도 병사들은 심리적 거부감이나 죄책감과는 별개로 전투 중 진지를 이탈하지 않았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대오를 지키고 싸웠다.



한편 지하드 선언은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오토만 제국 내의 단합과 통일을 유도했다. 오토만 제국은 지하드 선언으로 국민개병제를 채택해 대규모 무슬림 병사들을 징집했으며, 심지어 아랍 폭동(1916~1918: 1차대전 중 시리아/아라비아 반도의 병사들이 오토만 제국을 상대로 일으킨 반란)이 터졌을 때도 대부분의 아랍계 인구는 동요하지 않고 오토만 제국에 대항하거나 반란세력에 가담하지 않았다.

: 참고 - "오스만"은 오토만 제국의 창시자이고, 제국의 이름은 "오스만투르크"가 아니라 "오토만투르크"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오스만 제국"으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일본어에서 "오토만 제국"으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들여와 고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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