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티니안 제도 인근에 주둔 중이던 일본 해군항공단 소속 21식(式) G3M2 폭격기의 묘사화. 연합군 코드명은 "넬(Nell)"이었다.
G3M은 1933년 당시 일본 제국해군 기술과장이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1943) 소장이 밀어붙여 개발에 돌입했던 폭격기다.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에서 제작한 G3M 96식 폭격기는 일본 해군이 운용한 지상기지 기반 폭격기의 중추였으며, 태평양 전쟁이 개전했을 무렵에는 어뢰 투발과 고고도 폭격 임무를 맡아 소화했다.
G3M은 1941년 말 G4M (연합군 코드명 "베티[Betty]")과 임무를 교대했으나, "넬"은 여전히 말라야 및 태평양 도서지역 점령작전에서 일본군의 중요한 항공전력으로 활약했다. 특히 1941년 12월 10일에는 60대의 G3M2가 말레이 반도 침공에 투입되면서 영국 왕립해군의 주력 함정이던 프린스-오브-웨일즈(HMS Prince-of-Wales)와 리펄스(HMS Repulse)를 격침해 사실상 동남아 지역의 왕립해군을 괴멸시켰다.
G3M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항속거리에 있었다. G3M2는 최대 4,380km까지 비행이 가능했으며, 최종 형상인 G3M3는 6,230km까지 비행이 가능했다. 심지어 이 항속거리는 둘 다 무장창에 최대한 폭탄을 탑재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항속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장갑을 빼 방탄능력이 빈약했고, 연료탱크도 보호가 되지 않아 한 두 발의 피격으로도 불덩어리가 된다는 점은 "넬"의 약점이었다.
1943년 초, G3M 폭격기는 대부분 비전투 임무로 전환되어 물자 수송용 글라이더나 수송기, 훈련기 역할로 돌려졌다. G3M은 생산기간 내내 1,048대가 양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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