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무기체계

[1990. 3. 6] '미사일도 떨치는 초음속기' SR-71의 마지막 비행

라마막 2023. 6. 6. 10:07

버지니아 주 스티븐 F. 우드바-헤이지(Steven F. Udvar-Hazy) 센터 내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Discovery)호와 함께 전시 중인 SR-71 기체 등록번호 61-7972기의 모습.

1991년부터 2003년 9월까지 61-7972기는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내에 SR-71기 보관을 위해 특별히 만든 건물 내에서 관리됐다. 해당 기체의 관리를 위해 미 연방 항공우주박물관 측은 특별 인력을 파견해 기체를 엄격하게 관리 감독 했으며, 최상의 보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습도를 주기적으로 조정했다. 7972기는 라이트-패터슨(Wright-Patterson) 공군기지 내 미 공군 박물관에 보관 중인 SR-71A 61-7976기와 함께 현존하는 마지막 SR-71중 가장 최상의 상태의 SR-71로 인정 받는다.

해당 기체는 1990년 3월 6일, 플로리다 주 팜데일(Palmdale, FL)에서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공항까지 비행해 왔으며, 이것이 미 공군 소속 SR-71의 사실상 마지막 비행이 되었다. 이 7972기는 1974년 뉴욕에서 런던 까지 1시간 54분 56.4초로 비행해 해당 구간 최단시간 비행 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체는 팜데일에서 테스트 항공기로 운용되던 61-7955기가 1985년 1월 24일자로 퇴역하자 그 뒤를 이어 우주개발 사업에 투입되어 시험비행 항공기로 운용됐다.

사진 속 기체의 러더(rudder)에는 제조사인 스컹크웍스(Skunk Works)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61-7972기는 1965년 12월 13일에 조립이 시작됐으며, 1966년 9월 15일에 출고(roll-out)됐다. 61-7972기는 1966년 12월 12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이후 23년 반 동안 총 2801.1시간을 비행했다.

: "블랙버드(Blackbird)"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초음속 고고도 정찰기. 최고 속도는 마하 3+이며, 북한 영공에 들어갔다가 미사일로 요격당하자 마하 3의 속도 만으로 미사일을 떨쳐낸 기록이 있다.

최초 "블랙(Black)" 프로젝트로 개발 사업이 출범했으며,  앞서 CIA가 의뢰하여 개발한 A-12 정찰기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최초에는 초음속 폭격기 형상도 개발이 고려됐지만 개발비 문제 등으로 파생형 개발은 좌초되고 순수한 정찰기 형상만 개발이 완료됐다. SR-71은 신호정보 센서와 공중 측면 탐지 레이더, 고속 카메라가 장착됐으며, 최고 속도는 고도 25,900m에서 수립한 마하 3.2이다.

이 기체는 최초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 행정부 때 개발 사실이 발표됐는데, 1964년 대선에 출마한 존슨을 두고 공화당의 베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1998) 후보가 "케네디-존슨 행정부는 국방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공격하자 이를 반박할 목적으로 서둘러 개발 사실을 공표했다. 존슨 대통령이 개발 사실을 발표할 당시 커티스 르메이(Curtis E. LeMay, 1906~1990) 미 공군참모총장이 동석했는데, 그는 최초 미 공군 항공기 식별부호규정에 따라 RS-71로 정해진 기체 발음이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해 대통령이 실제 원고를 읽기 직전 항공기 명칭을 "SR-71"로 적어서 전달했다. 하지만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RS-71로 명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존슨이 실수한 것 아니냐"는 낭설이 떠돌았다.

여전히 현존 항공기 중에는 SR-71의 정찰 능력을 상회하는 기체가 없지만, SR-71은 임무 복귀 후 재출격(turnaround) 시간이 길어 평균 한 주에 1회 가량 밖에 비행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사실 SR-71이 퇴역하게 된 계기는 이런 비용이나 실리적인 문제보다 정치적인 이유가 더 컸다. SR-71이 최초 도입된 후에는 고고도 정찰기 조종사 출신들이 대거 공군 요직으로 진출하면서 SR-71의 운용에 힘을 실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이 모두 퇴역해버려 더 이상 초음속 고고도 정찰기를 옹호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인항공기(UAV)의 등장도 SR-71의 퇴역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는데, UAV 운용을 옹호하는 신세대 지휘관과 제작사들은 SR-71에 계속 비용이 투입된다면 UAV 쪽으로 전용될 비용이 적어진다고 판단했고, 이들의 설명에 설득된 의회 역시 SR-71 관련 예산을 계속 줄여나간 것이다.

결국 SR-71은 1988년에 한 차례 퇴역했다가 다시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사용 용도가 불분명한 상태로 유지관리만 이루어지다가 1998년 9월에 미 공군 측이 완전히 예산을 끊으면서 최종 퇴역이 결정됐다. 반면 미 항공우주국(NASA)은 여전히 두 대의 SR-71을 운용 중이며, 무인기 형상으로 개발한 D-21 드론도 드라이든(Dryden) 비행연구센터에서 계속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R-71은 총 32대가 제작됐다. 그 중 12대는 사고로 파괴되었지만, 적에게 피격 당한 기체는 단 한 대도 없다.

#냉전 #항공기 #역사사진 #블랙버드 #SR71 #SR71A #우주개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