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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

[1943] 독일 공군의 명작, 메서슈미트 BF-109

라마막 2023. 6. 20. 21:09

1943년, 미국 보스턴으로 이송 중인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Bf109F4의 모습. 독일 제 27 전투비행단 소속 기체로, 미군은 이를 전쟁채권(War bonds) 판매 홍보를 위해 사용할 생각으로 본토로 수송해왔다.

: 독일군의 '전설적인' 주력 전투기. 성능의 우열은 둘째치더라도, 독일은 거의 이 기종과 포케-불프(Focke-Wulf) Fw190 두 기종으로 왕립공군(Royal Air Force)의 허리케인부터 미 육군항공대(USAAF)의 무스탕까지 상대했을 정도로 성능이 우수했다.

최초 설계는 빌리 메서슈미트(Willy Messerchmitt, 1898~1978)와 로베르트 루서(Robert Lusser, 1899~1969) 두 사람이 맡았으며, 1935년 초도 비행에 성공한 후 1937년 2월 스페인 내전 때 처음 전장에 투입했다. 첫 등장 당시 전 동체에 금속제 모노코크 설계를 적용한데다 밀폐식 캐노피를 채택했고, 수납식 랜딩기어, 도립기관 방식의 수랭식 V-12 엔진을 적용해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전투기였다.

Bf-109는 처음 요격기 용도로 설계했으나 2차대전이 진행되면서 개량이 거듭되어 폭격기 호위기, 전폭기, 주간/야간 전폭기, 전천후 전투기, 지상공격기, 항공정찰기 등의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됐다. Bf-109는 주로 독일군이 운용했으나 일부 기체는 추축국이나 추축국 우방으로 수출되어 총 34,248대가 양산됐고, 최종 기체는 프랑코 정권 하의 스페인 공군이 운용하다가 1965년 12월 27일에 퇴역했다.

Bf-109는 2차세계대전 최고 에이스 중 상위 세 사람이 운용한 기종이라는 점도 그 우수성을 증명한다. 최 선두의 에리히 하트만(Erich Hartmann, 1922~1993) 소령(종전 후 독일연방군에서 대령까지 복무)은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며 352대의 적기를 격추했고, 게르하르트 바르코른(Gerhard Barkhorn, 1919~1983) 소령은 301대를 격추했다. 귄터 랄(Günther Rall, 1918~2009) 소령은 총 275대를 격추했다. 이 세 사람이 격추한 숫자만 도합해도 928대에 달한다.

한편 Bf-109는 북아프리카에서 활약한 에이스인 한스-요아힘 마르세유(Hans-Joachim Marseille, 1919~1942) 대위의 애기(愛機)이기도 했으며, 그는 총 158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또한 독일인이 아닌 타국 국적자가 Bf-109로 에이스가 된 사례도 다수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핀란드 공군의 일마리 유틸라이넨(Ilmari Juutilainen, 1914~1999) 원사로, 전쟁기간 중 도합 94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그는 비(非) 독일인으로 가장 상위권에 랭크된 에이스이기도 하다.

BG-209G6형은 자체중량 2,247kg에 총 중량 3,148kg, 최대이륙중량 3,400kg를 자랑했으며, 최고속도는 520km/h, 순항속도 590km/h, 항속거리 880~1,144km을 기록했다. 전투범위는 최대 572km에 달했으며, 실용상승한도는 12,000m, 상승률은 20.1m/s, 출력대비중량은 0.344kW/kg에 달했다. 기본무장으로는 13mm 공축식 MG131 기관총 두 정을 장착했고, 필요에 따라 20mm MG151/20 기관포나 30mm MG151/20 기관포를 동체 하부나 날개 아래에 포드 형태로 장착할 수 있었다. 21cm Wfr. Gr. 21 로켓이 두 발 장착 가능했으며, 폭탄으로는 250kg 1발이나 50kg 폭탄 4발을 달 수 있었고 증가탱크를 설치할 경우 300리터 탱크 하나를 장착하는 것이 가능했다.

Bf-109는 워낙 우수한 성능 때문에 2차세계대전 전후로도 다양한 국가들이 운용했다. 전쟁 기간 중에는 불가리아, 스페인, 핀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등이 운용했으며, 전후에는 그리스, 이스라엘 등이 나포 기체 혹은 전후 도입한 중고기체를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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