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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8. 2] 日 I-30 잠수함,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 로리앙 도착

라마막 2022. 12. 17. 16:03

로리앙(Lorient) 항구로 들어오는 I-30을 바라보고 있는 독일 수병들.

일본 해군의 이(伊)형 잠수함인 I-30함이 1942년 8월,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 로리앙(Lorient)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 

I-30은 일본이 2차세계대전 중에 운용한 B1급 잠수함 중 하나였다. 1942년 6월 중순, I-30은 유럽으로 가는 "야나기 작전(柳作戦)"에 투입됐다. 이 작전은 일본에서 출항하여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거친 뒤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까지 가는 내용이었다. I-30은 1942년 8월 2일자로 비스케이(Biscay)만에 도착했으며, 곧 독일군의 M급 소해함과 융커스(Junkers) Ju-88 폭격기의 에스코트를 받아 로리앙에 들어섰다. I-30은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도달한 첫 일본 잠수함이었다.

I-30의 승조원은 곧 에리히 레더(Erich Raeder, 1876~1960) 원수와 칼 되니츠(Karl Dönitz, 1891~1980) 대장, 그리고 주독 무관을 지내고 있던 타다오 요코이(横井忠雄, 1895~1965) 대좌의 환영을 받았다. I-30의 장교와 승조원들은 '동맹' 독일이 주최한 환영행사에 초청 받았으며, 엔도 시노부(遠藤 忍, ?~?) 함장은 베를린까지 초청받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총통과 만났다. 그는 로리앙까지 돌아오는 길에는 파리를 경유해 시내를 구경한 후 돌아왔다. 

그 사이 I-30 함은 1,500톤의 운모와 659kg의 셸락(shellac)을 하역하고 91식(式) 어뢰의 설계도를 선물로 독일에 전달했다. 독일은 답례로 I-30 함의 선체를 U-보트의 회색으로 재도장 해주었으며, 기존의 96식 25mm 대공포를 제거하고 메톡스(Metox) 레이더 탐지기와 38 경대공포(Flakvierling) 및 20mm 방공포를 설치해주었다. 

I-30은 8월 22일 일본인 엔지니어들을 태우고 출항했다. 화물로는 뷔르츠부르크(Wurzburg) 방공 지상레이더 한 기와 설계도를 실었고, 5개의 독일 G7a/G7e 어뢰를 탑재했으며, 그 외에 5개의 어뢰 데이터 계산기와 240기의 볼데(Bolde) 소나 대응체계 탄, 로켓, 글라이더 폭탄, 대전차포, 자이스(Zeiss) 대공포 추적기(사통장치), 200발의 200mm 대공포탄, 공업용 다이아몬드 약 1백만엔 어치, 그리고 50개의 에니그마(Enigma) T 암호화 기계를 실었다. 

1942년 10월 8일, I-30은 재급유와 물자 보충을 위해 말라야 페낭(Penang)에 기항했다. 보급 후에는 싱가포르로 항해했으며, 10월 13일 오전에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기항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4시, 일본으로 출항한 지 불과 몇 시간 뒤 I-30 함은 케펠(Keppel)만 동쪽 4.8km 지점에서 영국이 설치한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으며, 복구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I-30의 승조원 96명은 구조됐지만 13명은 그대로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일본은 급히 제 101 해군 수리반 다이버들을 투입했지만 화물만 일부 건져냈으며, 대부분 20mm 대공포 포탄과 어뢰 데이터 계산기, 레이더 청사진 정도였고 그나마도 바닷물에 젖어 파손된 상태였다. 건져낸 것 중 가장 중요했던 데이터 계산기는 바닷물 때문에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I-30은 전후인 1959년 경 호쿠세이 삼파쿠 코교 라는 일본 업체가 인양했으나 건져낼 것이 없자 1960년에 폐선처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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