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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10. 14] 스위스에 비상착륙한 미군 B-17의 '검은 목요일'

라마막 2022. 12. 8. 18:00

스위스 애쉬에 비상착륙한 B-17.

1943년 10월 14일,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에 촬영된 사진.

이날 임무를 위해 출격한 출격한 총 291대의 B-17 플라잉 포트레스(Flying Fortress) 중 60대는 격추당했고, 17대는 심각하게 파손되어 귀환 후 폐기해야 했으며, 나머지 121대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입었다.

미 제 8공군 제 305 폭격단 예하 364 폭격비행대대 소속 B-17F, 기체번호 4230831 WF-H "레이지 베이비(Lazy Baby)"역시 1943년 10월 14일 "검은 목요일"날 격추 당했다. 해당 기체는 스위스 슐라토프(Schlatthof)의 들판에 랜딩기어를 빼지 않은 채로 동체 착륙했으며, 이 파손된 기체는 곧 스위스 바젤란트의 애쉬(Aesch) 마을 중앙로를 통해 운송되어 바젤(Basel)의 폐기장으로 향했다.

: 폭격임무 수행 중 에드워드 디엔하트(Edward W. Dienhart, 1918~2002) 중위의 B-17F "레이지 베이비"는 독일 바이에른의 슈바인푸르트(Schweinfurt)의 볼 베어링 공장을 폭격하다가 격추됐다. 특히 대공포 한 발이 기수에 명중하면서 앞쪽에 앉아있던 항법사인 도널드 라울리(Donald T. Rowley, 1921~1943) 소위는 양 팔이 전부 절단되는 치명상을 입었으며, 뒤에 있던 다른 승무원 한 명도 파편상을 입었다.

엔진은 모두 정지하고 하나만 돌고 있는 상태에서 디엔하트 중위는 전원 탈출을 명령했지만, 부조종사인 브룬손 볼린(Brunson Bolin) 소위와 비행 엔지니어 조지 블레이록(George Blaylock) 병장 두 사람만 제 때 탈출에 성공했다. 나머지 인원은 탈출이 불가한 상황이거나 혼란 속에서 탈출 명령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탈출한 두 사람은 곧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포로 수용소에 갇혔다.

조종석에 남아있던 디엔하트 중위는 기체를 고도 7,000m에서 910m까지 급강하하여 추격해오던 독일군 전투기를 떨쳐냈으며, 중립국인 스위스에 착륙해 위기를 피할 생각을 했다. 그는 스위스 영공으로 진입해 5km 이상 영내로 진입한 후 애쉬에 동체 착륙을 시도했다. 이들은 곧 스위스군에게 체포됐으며, 중상을 입고 있던 라울리 소위가 우선 바젤 주 인근의 뷔르게스슈피탈(bürgerspital)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에서 이튿날 숨지고 말았다. 나머지 인원은 모두 5성 호텔을 포로 수용시설로 개조한 아델보덴(Adelboden)에 격리되었다.

미 육군항공대(USAAF) 소속 B-17 "레이지베이비(Lazy Baby)" 승무원들.


스위스군이 포로로 격리한 인원은 조종사 에드워드 디엔하트 중위, 폭격수 칼 존슨(Carl Johnson), 무전수 헐리 스미스(Hurley Smith), 볼 터렛 사수 크리스티 줄로(Christy Zullo), 미익 사수 버니 세갈(Sernie Segal) 등 다섯 명이었고 항법사인 도널드 라울리 소위는 전사 처리됐다. 이 중 헐리 스미스와 칼 존슨은 부상으로 스위스의 병원에서 한동안 지냈으나 회복 후 아델보덴으로 이송되어 앞서 이송된 디엔하트 일행과 함께 지냈다. 이들은 전후 스위스가 모든 포로를 석방하면서 미 본토로 귀국했으며, 앞서 탈출에 성공했다가 독일에서 포로가 됐던 두 사람도 종전과 함께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전사가 확인된 라울리 소위에게는 미 전쟁부가 은성훈장과 퍼플하트(Purple Heart)를 사후 수여했다.

현재 스위스 애쉬의 B-17F "레이지 베이비" 동체 착륙 장소에는 추모비가 서 있다.

스위스 애쉬의 "레이지 베이비" 동체 착륙 장소에 설치된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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