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944. 12. 11] 독일-일본-이탈리아의 동맹 체결 후 일본의 입장 변화

라마막 2023. 3. 14. 15:55

핀란드에서 벌어진 계속전쟁(1941~1944) 기간 중 독일군 대위와 일본군 소좌(소령), 핀란드군 소령이 한 자리에서 모여 회의 중 촬영한 사진.

19411211,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베를린에서 삼국동맹을 체결했으며, 향후 독--일 삼자가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는 한 별도로 미국 혹은 영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유럽 전선에서 독일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일본의 관점도 단계적으로 변화했다.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전 후, 독일 주재 일본 국방무관을 지내던 반자이 이치로(坂西 一良, 1891~1945) 중장은 이를 "실수"였다고 언급했지만 "그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전황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19435, 이탈리아가 전면 퇴각을 개시하자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입장 변화가 발생했다. 도조 히데키(東條 英機, 1884~1948) 일본 총리대신은 이 사건 후 일본은 홀로 동쪽에서 계속 전쟁을 진행해야만 하며, 소련을 침공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시게미쓰 마모루(重光 葵, 1887~1957) 외무대신은 이에 냉소적으로 답했다. "일본은 소련과 완벽한 평화를 유지하는 것 외에 선택이 없소." 사실 이 시점에서 도조의 주장은 넌센스에 가까웠다.

1944년 여름,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곧이어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독일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으로 내다 보았다. 일본은 가용한 외교적 선택지 중 가장 안전한 선택은 소련과 양자 동맹을 맺은 후 미국과 영국에 대항하는 길이라 판단했으며, 이는 <세계 정세분석>이라는 보고서 형태로 발간됐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인 1945년 초, 유럽 전선을 정리한 소련군이 유럽의 병력을 동부로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일본 총참모부에 곧 도달했다.

육군참모차장인 가와베 도라시로(河辺 虎四郎, 1890~1960) 장군은 이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스탈린이 정말 일본과 싸우기로 결심한 것인가? (중략) ... 나는 스탈린이 똑똑하고 계산적인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시점에 동아시아에 새로운 전선을 만들 생각을 할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2차세계대전 #전쟁사 #역사사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