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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6] 록히드, 제트기 시대를 위해 준비한 XF-90 개발

라마막 2023. 8. 3. 15:41

1940년대 말, 미 공군은 새로운 항공시대에 대비해 장거리 돌파용 폭격기를 호위할 에스코트용 전투기 개발을 요청했다. 제트엔진이 처음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항공기술은 순식간에 발전했고, 이에 따라 록히드는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미 공군의 요구에 부응할 XP-90(개발 중 제식번호를 재지정해 XF-90으로 변경)을 내놓았다.

이 기체는 록히드가 앞서 개발한 P-80에 바탕하여 전투기 개발의 명가 스컹크웍스(Skunk Works)가 내놓은 현대적인 초고속 제트기였다. XF-90은 록히드의 이전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긴 했으나, 실질적인 알맹이는 완전히 새로운 기체였다.

이렇게 제작된 XF-90 시제기 두 대는 모두 저출력으로 악명높던 웨스팅하우스 사의 J34 엔진을 장착했다. 그나마 2번기에는 애프터버너가 장착됐지만 여전히 항공기 설계에 비해서는 출력이 낮았다.

당시 XF-90의 경쟁작은 XF-88 부두(Voodoo)로, 이는 앞서 개발된 F-101 부두의 후속기종이었다. XF-90은 태생적인 엔진 저출력 때문에 결국 미 공군 입찰에서 패했으며, 맥도넬(McDonnell/1997년 보잉에 합병)이 입찰을 따내면서 XF-88 부두의 양산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장거리 돌파용 전투기' 사업 자체가 취소되면서 맥도넬 역시 부두의 양산을 해보지 못했다.

XF-90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무거운 전투기였으며, 이 중량 문제도 가뜩이나 저출력인 엔진에 부담을 주었다. 이 중량은 동체를 튼튼하게 설계하면서 발생한 부가적인 문제였다. XF-90은 당시 전투기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알루미늄보다 강도가 높은 고강도 알루미늄을 사용해 기본 골조 자체부터 무게가 무거웠다.

XF-90은 사업 취소와 함께 오하이오 주 NACA로 이관됐으며, 이 곳에서 동체 파괴 실험에 동원됐다. 시제기 2번기는 더 끔찍한(?) 운명을 맞이했다. 이 기체는 1952년 네바다 주 시험장으로 보내져 방사능에 의한 동체 영향성 연구를 위해 세 차례 핵 폭발 현장에 투입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2번기는 끝까지 살아남았으며, 이후 광범위한 방사능 제독 작업을 장기간 거친 뒤 오하이오 주 데이튼의 항공우주박물관으로 이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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