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전쟁사/베트남전쟁사

[1968. 7] 백악관에서 베트남으로 떠난 사위의 음성 테이프를 듣는 린든 존슨 대통령

라마막 2023. 5. 23. 10:26

19687, 사위인 찰스 롭(Charles "Chuck" Spittal Robb, 1939~) 대위가 베트남에서 보낸 음성 테이프를 듣는 중인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 대통령의 모습.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08827일 생으로, 흔히 이름의 약자인 "LBJ"로 불린다. 그는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미 제 36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그 이전인 케네디 행정부 시기(1961~1963)에 부통령을 지냈다.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 암살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그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지내기 전 이미 텍사스 주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상원에서 여당 당수를 역임했다.

존슨이 대통령이 됐을 무렵 미국은 엄청난 사회적 과도기였다. 특히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민권운동의 시기로 여권 신장과 유색인종 차별 정책의 철폐가 한창 진행 중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훗날 냉전의 상징이 된 베트남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외교 문제에서 존슨은 임기 내내 베트남 전쟁에 압도됐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부터 소규모 군사고문단을 남베트남에 파병하고 있었으나, 존슨이 취임한 시기부터 갑자기 두 베트남 간의 대결 양상이 극단적이 되면서 미국의 개입 필요성이 커졌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 존슨은 의회로부터 북 베트남의 잠재적 위협을 격퇴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었다.

주월(駐越) 미군은 케네디 시절 1,000여 명에 불과했으나 존슨 임기 시작 후 16,700명으로 증가했고, 1968년 그의 임기가 끝날 무렵까지 50만 명 이상이 파병됐다. 하지만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압도적인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 가정 내 TV 보급율이 90%가 넘어가면서 저녁시간마다 미국 가정의 안방으로 전쟁이 보도됐고, '미디어'가 베트남 전쟁 경과를 일일 단위로 알리면서 전쟁에 대한 반전 여론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1968년 테트(Tet) 공세 직후부터는 여론 전체가 완전히 존슨 행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존슨 대통령은 임기 막판까지 베트남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지지율이 바닥을 치자 존슨은 재선을 포기했고, 그를 대신해 출마한 휴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 1911~1978/존슨의 부통령) 후보는 베트남 철군을 공약으로 걸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