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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베트남전쟁사

[1998. 6. 30] '무명의 용사'로 오인받은 미군 조종사, 이름을 되찾다

라마막 2023. 7. 7. 18:15
1984년 "무명용사"의 장례식에서 관 위에 헌화 중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모습. 관 앞쪽에서 경례하고 있는 이는 당시 미 워싱턴 군구(US Military District of Washington) 사령관인 존 발란틴(John L. Ballantyne) 소장이다.

1972년, 베트남 공화국군(ARVN: Army of the Republic of Vietnam) 정찰대가 미군 A37 지상 공격기 추락 지점을 정찰하던 중 시신 일부를 수거해 미군에 전달했다. 당시 베트남 공화국 군은 해당 지점에서 미군의 신분증, 군번 줄, 가족 사진이 들어있는 지갑, 조종복과 권총집 일부를 함께 수거해왔으며, 당시 신분증에는 마이클 블라시에(Michael Blassie) 미 공군 중위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 베트남으로부터 이 물건들을 인수받은 윌리엄 파넬(William Parnell) 대위는 이 물건들을 군번줄로 감아 플라스틱 박스에 넣은 후 태국에 설치한 미 수색회복본부로 넘겼으며, 다시 이 물건들은 하와이에 위치한 미 육군 중앙 신원확인 연구소(US Army Central Identification Lab)로 보내졌다. 이들은 최초 이 시신의 신원을 미 공군의 A-37 조종사인 마이클 블라시에 중위로 확인했으나, 다시 재검사를 했을 때 시신의 연령과 키가 마이클 블라시에 중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신원 미상"으로 재분류했다.

결국 신원 미상자로 최종 분류된 시신은 미 해군 프리깃 함인 브루턴(USS Brewton, FF-1086)함에 실려 캘리포니아 주 알라메다(Alameda) 해군 기지로 이송되었으며, 이는 다시 5월 24일자로 트레비스 공군 기지를 거쳐 이튿날 워싱턴 D.C. 인근의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옮겨졌다.

이 '신원미상자'의 관은 임시로 미 의회에 안치되어 2차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 뿐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부부 등이 방문하여 애도했고, 이 관은 1984년 5월 28일 현충일(Memorial Day) 아침에 알링턴(Arlington) 미 국립 묘지로 옮겨져 장례식이 치러졌다. 당시 이 "무명 용사"의 장례식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여 대통령 조화를 관 위에 바쳤고, 미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이 무명의 용사에게 명예 대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한편 이 무명 용사는 장례식에 참석할 직계 가족이 없었으므로 레이건 대통령이 스스로 이 '무명 용사'의 가족 자격으로 관 위에 덮여있던 성조기를 인수했다.

이 '무명 용사'는 이후 1998년까지 알링턴에 이름 없는 묘비 상태로 묻혀있었다.

그러던 중 1996년 '베터란 디스패치(US Veteran Dispatch)'지가 미 국방부 기록을 근거로 추정하여 '무명 용사는 블라시에 중위가 맞다'고 보도를 냈고, 1998년 1월에는 CBS 방송이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당시 CBS는 최초로 문제의 시신을 인수했던 윌리엄 파넬 예)대령과 인터뷰를 했으며, 그 또한 베트남 군에게 시신을 넘겨 받았던 정황을 짚으며 '무명의 용사'는 블라시에가 맞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에 블라시에 가족이 문제의 '무명 용사'의 시신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해 1998년 5월 14일자로 시신 재검증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미 국방부는 관 속의 시신을 다시 파내어 신원 검증을 실시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 도입된 DNA 조사 방식이 동원되면서 무명 용사의 신원은 1998년 6월 30일자로 마이클 블라시에 중위가 맞다고 최종 판정했다.

마이클 블라시에 중위의 시신은 다시 관 속에 안치되어 가족들이 있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옮겨졌으며, 인근 제퍼슨 배럭스(Jefferson Barracks) 국립 묘지에 안장되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서는 블라시에 중위의 관이 나간 후, 그의 묘지가 있던 자리에 <베트남>이라고 새겨진 슬랩(slab)을 대신 안치했으며, 비석에는 <미국의 실종된 장병들을 존경하고, 이들과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라는 문구를 새겨넣었다.

하지만 '무명 용사'에게 헌정됐던 명예 대훈장은 블라시에 중위의 신원이 확인된 후 그의 명의로 전환되지 않았다. 이는 처음부터 '무명의 헌신'을 한 군인에게 수여한 것이었지, 블라시에 중위 한 사람의 공적을 기려 수여한 훈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라시에 중위는 사후 은성 훈장을 비롯하여 우수 비행십자훈장, 전상장(퍼플하트), 국토방위근무훈장, 베트남근무훈장 등을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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