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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12. 24] 항공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17세 소녀

라마막 2022. 12. 19. 10:39

줄리안 퀘프케/Public Domain

1971년 12월 24일, 탑승 중이던 여객기가 벼락을 맞은 후 항공기에서 빨려나갔지만 살아남은 17세의 소녀인 줄리안 퀘프케(Juliane Koepcke, 1954~)의 모습.

그녀는 좌석벨트에 묶인 채로 고도 3km 상공에서 떨어졌지만 살아남았고, 10일간 아마존 정글을 헤치고 다니면서 버텼다. 사고로부터 열흘 후 그녀는 아직 연료가 꽤 차 있는 보트를 발견했으며, 연료를 퍼내 자신의 상처에 부어 팔 위에서 들끓기 시작한 구더기를 모두 제거했다.

그녀는 탑승자와 승무원을 포함, 총 93명이 탑승했던 란사(LANSA) 508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 이날 페루 국적의 항공사인 LANSA(Lineas Aéreas Nacionales Sociedad Anonima/1972년 폐업) 508편은 리마에서 이륙해 페루 푸칼파(Pucallpa)로 향하고 있었다. 이날 508편은 리마의 호르헤 차베즈(Jorge Chávez) 국제공항을 출발, 푸칼파를 경유한 후 이퀴토스(Iquitos)로 향할 예정이었으며, 고도 약 6,400m에 도달했을 때 폭풍우 및 심각한 기류와 만났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조종사들은 크리스마스부터 새해로 이어지는 복잡한 연휴 스케줄 압박 때문에 악천후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비행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508편으로 편성됐던 기체인 록히드(Lockheed) L-188 일렉트라(Electra) 여객기도 문제가 있었는데, 사고 후 페루 측 조사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체가 거의 예비 부품을 모아 만들었다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 퀘프케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며, 어머니와 함께 12월 23일 졸업식까지 치르고 아버지가 있는 팡구아나(Panguana)로 가려 했기 때문에 야간 비행기를 찾았으나 연휴 때문에 티켓이 없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가 억지로 LANSA의 항공편 하나를 찾았는데, 퀘프케의 아버지는 워낙 악명이 높은 항공사이므로 해당 항공편을 타지 말라고 했으나 선택이 없었기 때문에 두 모녀는 그대로 12월 24일에 이륙하는 508편 티켓을 끊고 탑승했다.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대략적인 정황을 보자면 508편은 정상적으로 이륙했지만 비행 중 벼락을 맞았다. 그 순간 조악하게 정비되어 있던 여객기는 공중에서 부서졌고,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퀘프케는 좌석에 앉아 벨트를 맨 상태로 기체에서 튕겨나갔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좌석은 페루 내륙의 울창한 정글지대 속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쇄골이 부러지고 팔을 다쳤지만 그래도 다른 92명에 비해서는 훨씬 운이 좋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508편의 유일한 생존자인 퀘프케는 총 11일 간 정글을 헤맸으며, 그 과정에서 강을 발견하자 물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녀는 11일 간 벌레들에게 엄청나게 물렸고, 부상을 입은 팔은 조직이 일부 괴사해 구더기가 들끓었다. 다행스럽게도 정글을 헤맨 지 9일 차에 야영지를 하나 발견했다. 그 곳에서 퀘프케는 간단한 응급약을 찾았으며, 강가 한 켠에 연료가 남은 보트가 있었으므로 급한 대로 연료를 일부 덜어내 팔의 상처 부위에 부었다. 구더기는 휘발유를 붓자 상처 부위에서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다시 야영지 주변을 맴돌다 통나무 조각을 찾아 부목으로 댄 후 상처를 치료했고, 그 곳을 기점으로 인적을 찾아 이틀 간 더 헤매던 중 작은 민가를 발견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녀는 치료 후 수색팀이 항공기 추락 지점을 찾는 수색 활동을 도왔으며, 모친의 시신도 1972년 1월 12일, 사고로부터 20일 만에 발견했다.

그녀는 사고 후 독일로 돌아갔으며, 독일 키엘(Kiel)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다시 페루로 돌아와 박쥐에 대해 연구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존기를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When I fell from the Sky)>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베르너 헤르초크(Werner Herzog, 1942~) 감독은 이 이야기를 <희망의 날개(Wings of Hope)>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당시 헤르초크 감독은 1971년 사고 날 바로 이 LANSA 508편에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일정이 변경되면서 탑승하지 않은 인연이 있었으므로 이 이야기의 영화화에 더더욱 열정을 보였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좌석벨트를 매고 있던 것이 중요했다는 점은 이견이 없다. 좌석과 붙어있던 상태라 무거운 의자 면이 아래로 향해 떨어졌고, 그것이 정글로 추락하면서 방패와 쿠션 역할을 했을 것으로만 추정될 뿐이다.

퀘프케는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9년 곤충 학자인 에리히 딜러(Erich Diller)와 결혼해 줄리안 딜러가 됐다. 그녀는 사고와 관련해 쓴 책("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로 2011년 코린 문학상(Corine Literature Prize)을 수상했고, 페루 정부는 2019년 우수유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녀는 페루에서 부친이 설립한 연구소에서 내내 일하고 있으며, 2000년 부친이 타계하면서 이 연구소 소장직을 승계해 재직 중이다.

"수년 간, 오래토록 그 날의 악몽에 시달렸다. 당연히 어머니의 죽음과 그 날 죽은 다른 탑승객들에 대한 슬픔이 끝도 없이 반복됐다... 대체 '왜 나만 혼자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이 항상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 줄리안 퀘프케 (2010년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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