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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3. 30] 레이건 암살미수 사건 발생

라마막 2023. 3. 31. 00:56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미 대통령이 존 힝클리 주니어(John W. Hinkley Jr., 1955~)에게 가슴을 저격당하는 암살 미수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체포된 힝클리 주니어는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Alicia Christian 'Jodie' Foster, 1962~)에게 인상을 남기고 싶어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힝클리가 대통령을 저격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토머스 드라헨티(Thomas Delahanty, 1934~) 경관, 비밀수사국(USSS) 소속 팀 맥카시(Tim McCarthy, 1949~) 요원, 그리고 백악관 소속 제임스 브래디(James Brady, 1940~2014) 언론보좌관을 함께 쐈다. 그 중 브래디 보좌관은 치명상을 입어 평생 불구가 되었으며, 33년 후 결국 이날 총상이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

저격사건이 터지자 레이건 대통령은 비밀수사국 요원들에 의해 전용차에 다시 올라탄 후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빠른 조치 덕분에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회복했다. 힝클리 주니어는 대통령 암살미수 혐의로 기소됐으나 정신병 증세를 이유로 들어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조치됐다.

힝클리 주니어는 세인트 엘리자베스(Saint Elizabeth)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16년에야 퇴원했다.

: 이날 레이건은 AFL-CIO 노동조합에서 오찬 연설이 있었기 때문에 워싱턴 D.C.의 힐튼호텔에 영부인 낸시 레이건(Nancy Reagan, 1921~2016) 여사와 함께 방문했다. 이 곳은 대통령이 자주 방문하는 호텔인데다 백악관 인근이므로 USSS가 100회 이상 안전검사를 실시해 경호원들에게도 익숙한 장소였다. 특히 이 호텔에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직후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전용 출입로를 따로 설치하고 있었다.

이날 대통령은 오후 1시 45분쯤 전용 출입구로 호텔에 들어갔으며, 전용로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시민과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USSS 측은 대통령에게 종종 방탄조끼 착용을 권유했으나, 이날 레이건은 동선 상에서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순간이 리무진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는 9m 정도의 동선이었으므로 조끼를 입지 않았고, 경호국도 굳이 조끼 착용을 권유하지 않았다. 문제의 존 힝클리는 이미 이 때 호텔 앞에 도착해 군중 속에 있었으나, 훗날 목격자 조사에 따르면 별달리 이상한 행동 징후가 없었다고 한다.

레이건은 연설 후 2시 27분경 호텔을 나섰으며, 마찬가지로 대통령 전용 출입구로 나왔다. 힝클리 역시 여전히 언론 기자단 및 일반시민 속에 서 있었는데, USSS는 호텔 내 참석자는 모두 검열을 거쳤지만 밖에서 불과 대통령 동선 4.6m 거리에 서 있던 이들을 따로 보안 검사하지 않은 것이 실수가 되었다. USSS는 출입구에 접근하는 이들을 2단계로 검사해 무기류 소지검사를 한 차례 했는데, 힝클리 주니어는 어떻게인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2단계 보안조치를 모두 피했다.

대통령은 출구로 나오면서 군중들에게 다가가 손을 흔들었는데, 그 와중에 힝클리 주니어 바로 앞에 섰다. 이때 옆에 있던 AP(Associated Press) 소속의 마이크 퍼첼(Mike Putzel, 1942~) 기자가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통령 각하, 오늘은-" 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보다 더 적절한 저격순간이 없다고 판단한 힝클리 주니어는 순간 무릎을 굽힌 상태로 롬 RG 14(Röhm RG 14) .22구경 LR 리볼버 권총을 꺼내 1.7초동안 여섯 발을 연사했다. 하지만 이 중 다섯 발은 모두 대통령에게 맞지 않았으며, 앞서 약술했듯 경호 중이던 경관과 경호요원이 맞았다. 그 중 첫 발은 대통령 뒤에 서 있던 제임스 브래디 보좌관의 왼쪽 눈 위 이마에 명중했는데, 총알이 소형 폭발성 탄약이었으므로 이마 근처에서 터지며 뇌까지 영향을 주었다.

힝클리가 총알을 난사하자 옆에 있던 알프레드 안테누치(Alfred Antenucci, 1965~)라는 시민이 힝클리의 머리를 강타했지만 힝클리는 여전히 난사를 해 여섯째 한 발이 리무진 사이로 통과해 차로 긴급하게 실려 들어가던 레이건의 왼팔 아래 겨드랑이에 명중했다. 대통령은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힝클리는 안테누치에게 제압당해 주먹으로 두드려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그는 곧 뒤따라 온 경관들에게 현장에서 체포됐다.

레이건은 인근 조지 워싱턴 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진단 결과 총알에 맞으면서 갈비뼈 일부가 부러지고 허파에 총알이 박힌 것으로 나왔다. 레이건은 긴급 수술에 들어갔으며, 백악관은 긴급조치를 발동해 조지 부시(George H.W. Bush, 1924~2018) 부통령이 임시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레이건은 수술 후 만 이틀 만에 회복됐으며, 4월 11일 오전에 완치상태로 퇴원했다. 하지만 각료 회의는 26일까지 모두 연기했으며 현업으로 복귀한 것은 사실상 5월이 되고나서였다.

이 사건으로 당선 후 인기가 낮았던 레이건의 국정 지지율은 순식간에 60%를 찍었고, 회복 후에는 70%까지 도달했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당시 열 여덟에 불과했던 조디 포스터에게 큰 충격이 됐는데, 특히 그녀에게 '인상을 남기려는' 자들에 의한 범죄가 자행된 것이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힝클리 주니어는 1982년 6월 21일자로 '정신병에 따른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으나, 곧장 치료 명령이 내려져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에 입원조치가 되었다. 그는 2006년까지 병원에서만 치료를 받다가 단계적으로 모친의 집에 일시 방문이 허락되었으며, 2016년 필수 치료기간이 끝나면서 퇴원이 허가됐다. 그는 퇴원 후 자신의 저격이 "세계 역사상 사랑을 위해 당겨진 최고의 총알"이라 말해 자신의 시도를 전혀 후회하지 않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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