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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

[1942] 일본 해군의 주력 폭격기, 미쓰비시 G3M "넬(Nell)"

라마막 2023. 6. 19. 14:44

1942년 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티니안 제도 인근에 주둔 중이던 일본 해군항공단 소속 21() G3M2 폭격기의 묘사화. 연합군 코드명은 "(Nell)"이었다.

G3M1933년 당시 일본 제국해군 기술과장이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1943) 소장이 밀어붙여 개발에 돌입했던 폭격기다.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에서 제작한 G3M 96식 폭격기는 일본 해군이 운용한 지상기지 기반 폭격기의 중추였으며, 태평양 전쟁이 개전했을 무렵에는 어뢰 투발과 고고도 폭격 임무를 맡아 소화했다.

G3M1941년 말 G4M (연합군 코드명 "베티[Betty]")과 임무를 교대했으나, ""은 여전히 말라야 및 태평양 도서지역 점령작전에서 일본군의 중요한 항공전력으로 활약했다. 특히 19411210일에는 60대의 G3M2가 말레이 반도 침공에 투입되면서 영국 왕립해군의 주력 함정이던 프린스-오브-웨일즈(HMS Prince-of-Wales)와 리펄스(HMS Repulse)를 격침해 사실상 동남아 지역의 왕립해군을 괴멸시켰다.

G3M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항속거리에 있었다. G3M2는 최대 4,380km까지 비행이 가능했으며, 최종 형상인 G3M36,230km까지 비행이 가능했다. 심지어 이 항속거리는 둘 다 무장창에 최대한 폭탄을 탑재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항속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장갑을 빼 방탄능력이 빈약했고, 연료탱크도 보호가 되지 않아 한 두 발의 피격으로도 불덩어리가 된다는 점은 ""의 약점이었다.

1943년 초, G3M 폭격기는 대부분 비전투 임무로 전환되어 물자 수송용 글라이더나 수송기, 훈련기 역할로 돌려졌다. G3M은 생산기간 내내 1,048대가 양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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