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2월 26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에어프랑스(Air France) 소속 8969기가 알제리계 이슬람 과격분자들에 의해 납치당한 '에어프랑스 8969기 납치사건'이 종료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12월 24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프랑스군 대테러 부대인 '지젠느(GIGN)'가 투입되면서 해결되었고, 지젠느의 명성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린 사건으로 기록됐다.
당시 알제리는 내전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알제리 노선의 8969기(A300기)는 민항기라도 미사일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기장과 승무원이 모두 자발적으로 자원한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르나르 델렘(Bernard Dhellemme)씨를 기장으로 한 8969기는 알제 우에리 부마디엔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다음 날인 1994년 12월 24일 빠리 오를리 공항을 향해 다시 귀환을 하기 위해 11:15분 경쯤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8969편은 만석이었는데, 이륙 직전 갑자기 알제리 경찰 복장을 한 4명이 탑승했다. 이들은 공항 보안경관이라고 말한 뒤 기내로 들어와 승객들 여권을 검사하기 시작했는데, 승무원이던 끌로드 부르니아(Claude Burgniard)씨에 의하면 "통상 무장상태로 경관들이 탑승하진 않는데 무장상태로 들어와 다소 의아했다"고 나중에 증언했다.
이 상황에서 알제리 공항당국과 군은 문제의 AF8969기가 허가없이 이륙을 지체하자 이상한 상황임을 눈치챘다. 알제리 군과 경찰은 8969기 주변을 둘러싸고 상황을 보려 했으나, 내부의 테러리스트가 바깥에서 접근해오는 알제리 특수부대 "닌자"를 발견해버렸다. 승객이던 자히다 카카치 씨에 의하면 갑자기 테러리스트들이 '경찰', '인피델(무신론자)!' 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태도가 돌변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제리에 이슬람국가 건설을 꿈꾸는 무자헤딘(이슬람 무장조직)이라 밝혔으며, 구 식민지의 상징이던 프랑스를 대표한 "에어프랑스"를 납치한다고 밝혔다. 테러리스트들은 기내를 제압한 후 방송을 통해 "우리는 자비의 군인이다. 알라는 우리를 자신의 병사로 뽑으셨으며, 그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성전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원리주의 이슬람교도인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위배되는 상황에 강한 적개심을 보였다. 남녀가 함께 앉아있거나 여성들이 차도르를 쓰지 않은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 항공기를 장악한 후 곧 남녀를 분리시켜 앉히고 승무원을 비롯한 모든 여성에게 차도르를 씌웠다. 그리고 조종석과 기내 중간에 폭탄 한 묶음을 설치하여 특수부대의 진입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황 통제를 위해 곧 알제리 압둘라만 베지안-샤리프 내무장관이 도착하여 관제탑에서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에 돌입했다. 테러리스트들은 기장을 시켜 간접으로 대화에 응했다. 이들은 이슬람 해방전선의 지도자인 아바시 마다니와 가택연금 상태이던 알리 벨하지 두 사람의 석방을 요구했다. 샤리프 장관은 일단 알제리 정부와 협상에 돌입하고 싶다면 아이들과 노인들부터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샤리프 장관의 반응을 보고 협상이 어렵다고 생각한 테러리스트들은 여권 검사를 하면서 알제리 경찰이 한 명 있었음을 떠올리고 그를 찾아 따라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왜 그러는지 몰라 주저하다가 따라 나섰는데, 잠시 후 탑승계단 입구로 끌려간 그는 "죽이지 마시오! 나에겐 아내와 아이들이 있소!!"라고 소리쳤으나 머리에 총을 한 발 맞아 살해당한 후 기내 밖으로 내던져졌다. 이 때까지도 대부분의 승객은 승객 한 명이 살해당한 것을 몰랐지만, 스튜어디스가 조종석으로 가 기장에게 물을 한 잔 건내자 파랗게 질려 물을 제대로 못 마시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알제리 정부는 이 상황에도 버텼고, 결국 테러리스트들은 알제리 주재 베트남대사관 상무관이던 부이 지앙 토씨를 끌어내 살해했다. 당시 그는 총 앞에서 별로 주눅이 들지 않아 테러리스트들을 더 화나게 했다는데, 아마도 외교관 신분인데다 당시 상황과 관계없는 외국인이라 곧 석방될 것으로 생각한 듯 하다고 한다.
프랑스 쪽도 비상체제에 돌입해 외무장관 알랑 쥬뻬와 내무장관 샤를 빠스꾸아가 상황을 지휘하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의 관계장관도 모두 휴가를 취소하고 돌아왔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프랑스는 군 특수부대를 파견하려 했지만 알제리 정부가 달가와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는 기내 자체가 프랑스 영토에 대한 침공임을 주장하며 프랑스가 해결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에두아르드 발라뒤르 (Eduard Balladur) 총리는 차라리 해당 기체가 프랑스로 올 수 있도록 이륙허가를 주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첫날 밤을 맞은 가운데, 승무원들은 최대한 테러범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기장은 이들의 신뢰를 얻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이날 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군 대테러부대인 지젠느(GIGN: [국가헌병대 진압단]Groupe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의 스페인 마요르카 전개를 허가했으며, 8969기와 동일한 A300기를 기지로 가져온 후 마요르카까지 가면서 대테러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알제리가 계속 강경한 자세로 나와 지젠느는 대기상태로 있어야 했다.
이 와중에 이들 테러리스트의 소속단체인 GIA에 침투한 정보원이 엄청난 정보를 가져왔다. 이들 테러리스트의 목적은 이 기체를 파리로 가져온 후 상공에서 에펠탑에 충돌시키는 것임을 밝혀낸 것이다.
일단 25일이 되자 테러리스트들은 협상 진전을 위해 아이들과 아이들 어머니, 환자 등을 일부 석방했다. 하지만 이들은 63명만 석방했을 뿐이며 여전히 166명의 포로를 잡아들고 알제리와 대치상태를 이어갔다. 석방된 사람 중 한 명은 석방을 거부하기도 했는데, 이는 자신이 나갈 경우 승무원들이 전원 살해당하는 상황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알제리 경찰은 야시경으로 이들 중 리더가 압둘 야히아 임을 밝혀냈고, 프랑스는 그의 모친을 데려와 투항을 종용했다. 하지만 이는 테러리스트들을 더욱 자극했을 뿐이며, 이들은 8969기의 이륙허가를 주지 않으면 30분에 한 명씩 살해하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결국 프랑스 대사관의 요리사인 야닉 부그네씨를 살해하자 프랑스도 알제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고, 결국 알제리 측이 손을 들어 사건발생 39시간 만인 12월 25일 밤 11시 경에 이륙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원래 테러리스트들은 파리로 가자고 했으나, 기장은 핑계를 대면서 연료가 부족해 마르세유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지젠느는 마르세유로 이동해 전개 중이었으며, 26일 새벽 3시에 8969기가 도착하자 급유를 핑계로 항공기를 격리장소로 이동시켰다. 테러리스트들은 재급유 연료로 27톤을 요구했는데, 파리까지 소요 연료가 잘해야 10톤임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이 8969기를 "폭탄"으로 쓰려는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해보였다. 게다가 석방된 승객들을 통해 기내에 폭탄이 있음을 알아냈지만, 이것이 문 같은 곳에 설치되지 않은 것은 폭발력 극대화가 목적임이 뻔해지면서 프랑스군은 해당 항공기를 마르세유 공항에서 이륙시키지 않은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9시 경 식사 등을 전달한다고 하면서 기내에 들어가 안을 둘러본 지젠느의 위장 요원들은 내부 진입에 걸림돌이 없음을 확인했으며, 도청장치를 비롯한 감시장비들을 기내에 몰래 설치해 이들의 내부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후 테러리스트들은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요구했는데, 이것이 시간 지연에 도움이 된다고 본 프랑스 정부는 인터뷰를 주선한다면서 1등석을 비워놓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승객과 테러리스트를 분리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작 인터뷰가 안 이루어지자 테러리스트들은 분개해 기체를 관제탑 아래로 옮겼는데, 여기서 자폭이라도 했다간 피해가 커질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젠느 측도 돌입 준비 속도를 올렸다. 테러리스트들도 압박 차원에서 승무원 한 명을 추가 살해하기 위해 위협하면서 죽은자의 기도를 암송했으며, 문을 열고 관제탑에 총질까지 하면서 극도의 흥분상태를 보이자 프랑스 총리가 지젠느의 돌입을 최종 허가했다.
오후 5시 12분을 기해 계단차를 끌고 항공기 후미로 돌입한 지젠느는 항공기와 사다리차 높이가 안 맞아 문을 열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흥분하지 않고 침착히 사다리차를 후진시킨 후 요원 하나가 항공기 문으로 점프해 매달린 뒤 외부에서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지젠느의 돌입을 눈치챈 테러리스트들은 돌입에 대비했다. 결국 기내에서 총격전에 돌입한 지젠느는 한 명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으나 네 명의 초기 돌입 요원들이 부상당했다. 이 와중에 후방에 돌입한 팀은 승객들을 탈출시키기 시작했으며, 선두 팀이 테러리스트들을 1등석 쪽으로 몰아붙이면서 테러리스트들의 방해시도를 차단했다.
이 와중에 조종실에 있던 장-뽈 보르데리 부기장이 유리를 깨고 밖으로 굴러 떨어져 탈출하면서 저격수들이 밖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총과 수류탄까지 쓰며 격렬히 저항했으나 결국 전원 사살당했으며, 마지막 테러리스트가 제거되자 조종석에 엎드려 있던 항법사가 공항 쪽에 "테러리스트 전원 사망"을 알리면서 작전이 성공리에 종료됐다. 작전은 총 22분만에 종료됐으며, 납치 시작으로부터 54시간 만이었다.
이 작전은 실질적으론 부기장 한 명을 제외하곤 승객 중에선 부상자조차 발생하지 않아 성공적인 대테러 작전으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지젠느를 전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지젠느는 이후 대규모 대테러부대로 증편되어 오늘날까지도 가장 우수한 대테러부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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