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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6. 5] 레이건 前 미 대통령 서거

라마막 2023. 6. 6. 10:40

 

200465,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미 대통령이 서거했다. 향년 93세였으며 사인은 폐렴이었다.

그는 잭 레이건(Jack Reagan, 1883~1941)과 넬 윌슨(Nelle Wilson, 1883~1962)의 차남이었으며, 차분하고 온건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라디오 스포츠 중계가가 되었으며, 곧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사와 계약을 해 전속 관계가 되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직접 참전했으며, 전쟁 기간 내내 전쟁부 산하에서 공보 영화를 촬영했다.

레이건은 처음 영화배우 제인 와이먼(Jane Wyman, 1917~2007)과 결혼해 슬하에 모린(Maureen Reagan, 1941~2001)과 마이클(Michael Reagan, 1941~) 두 자녀를 두었다. 1948년 이혼 후에는 역시 영화배우인 낸시 데이비스(Nancy Davis, 1921~2016)와 결혼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는 패티(Patti Davis, 1952~)와 론(Ron Reagan, 1958~) 두 자녀를 낳았다.

그는 미 영화배우협회(Screen Actors Guild) 협회장으로 선출됐으며, 선출 후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 서서히 침투 중이던 공산주의의 영향을 떨쳐내고자 노력했다. 그는 최초 자유주의자로 시작했으나 보수주의 철학자로 변모했으며, "거대한 정부" 주의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레이건은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됐으며, 두 차례 임기 동안 주지사를 지낸 뒤 198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 출마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는 인기가 급락하고 있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 대통령을 꺾고 제 40대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섰을 당시, 미국의 국운은 크게 기울어 있었다. 실업률은 사상 최대치를 찍고 있었고, 인플레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높아졌다. 심지어 임기 초반에는 암살 미수 사건까지 발생했으나 살아남았다. 그는 산업계에 복잡하게 묶여있던 규제를 계속 풀었고, 국방비와 관계없는 분야에서는 대규모로 세금을 감면했다. 이를 통해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해 곧 최 정점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소련에 대해 강경책을 취했으며,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라 부르면서 미군 전력을 증강했다. 1984년 재선 시기가 도래했을 무렵에는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Walter Mondale, 1928~2021/지미 카터의 부통령) 후보를 압도적 차이로 꺾고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두 번째 임기는 이란-콘트라 사건 때문에 암울하게 시작했으나, 곧이어 공산-자유주의 대결에서 가시적인 승리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남은 잔여 임기 내내 높은 국정 지지율을 누렸다. 그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날 당시 국정 지지율은 무려 68%에 달했다. 그의 뒤는 레이건의 부통령을 지낸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1924~2018)가 이어 받아 냉전의 승리를 완성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1994년 알츠하이머 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조용한 은퇴 생활을 택했다. 그는 마지막 10년간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의 간호를 받으며 조용히 지내다가 고향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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