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진주만 6

[1941. 12. 7] 진주만 기습을 지휘한 일본 해군 항공대장

후치다 미쓰오(淵田美津雄, 1902~1976) 대위는 일본 해군 항공대 소속이었으며, 2차대전 이전부터 종전 시기까지 폭격기 관측사였다. 그는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실시했을 당시 일본 기습함대의 제 1파(派)를 지휘했던 인물로 가장 잘 알려졌다. 이 날 그는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 1887~1944) 중장이 지휘하는 기습함대의 항공 전력 전체를 관장했다. 종전 후 그는 기독교로 개종해 전도사가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을 다니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설파했다. 그는 말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는 않았다. 그가 전후에 밝힌 회고담은 사실 신빙성 문제 때문에 역사가들이 종종 의구심을 갖는 편이다. 특히 진주만에서 2파 공격이 끝나자 후치다 자신은 3파 공격을 주장했지만 나구..

현대사 2023.05.28

[1939. 4. 18] 훈련 후 아리아케 만에 부상한 일본해군 I-71 잠수함

일본 해군의 이(伊)형 잠수함인 I-71함이 훈련 후 부상한 모습. 앞에는 I-73함과 I-72함이 보인다. 1939년 4월 18일에 아리아케(有明) 만 앞에서 촬영된 사진. I-71함은 고베(神戸)에 있던 가와사키(川崎) 조선소에서 건조했으며, 1933년 2월 15일에 착공하여 1934년 8월 25일에 진수했다. I-71함은 1935년 12월 24일에 건조가 끝나 취역했으며, 취역 후 구레(吳) 해군조병창에 배치됐다. 일본 해군은 테평양 전쟁이 임박하자 I-71함을 'Z 작전'에 투입해 진주만 공습에 참가시키고자 했다. 이에 따라 I-71함은 제 3 잠수함전대 20 잠수함대대에 배치하려 했으나, 작전 단행 직전에 편성이 변경되면서 제 6함대 전방원정단에 배치됐다. 1941년 11월 11일, I-71함은..

[1941. 12. 7]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미 구축함의 첫 한 발

많은 이들의 상상과 달리, 사실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첫 한 발"의 총격은 일본군이 아닌 미군 구축함에서 발사됐다. 12월 7일 새벽 5시 45분, 미 해군 소속 화물선인 안타레스 함(USS Antares, AG-10)진주만 외곽에 설정된 방어 해상 구역(Defensive Sea Area) 바깥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포착했다. 이에 구축함 워드 함(USS Ward, DD-139)이 해당 물체를 향해 오전 6:37분경 두 발의 함포를 발사했다. 워드 함의 두 번째 함포 사격이 해당 물체에 명중했으며, 뭔지 알 수 없던 '그것'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당시 명중 당한 잠수함은 선발대로 진주만에 온 일본군 소형 잠수정으로, 이 잠수정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일본군 수병은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 발생한..

[1941. 12. 7] 일본, 진주만 공습 개시...미국의 2차세계대전 본격 개입

1941년 12월 7일,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의 참전을 야기한 '진주만 공습'이 벌어졌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은 공습 직후 "앞으로 오늘은 치욕으로 기억될 날(a date which will live in infamy)"이라 언급했으며, 이 사건으로 전쟁 불개입을 표방하던 미국은 본격적으로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게 되었다. 미 정부는 일본이 독일과 방공협정을 체결한 후 중국과 동남아 일대로 영토를 팽창하자 중일전쟁 이전 영토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이 끝끝내 거부하자 미국은 국내 일본 자산에 대한 동결과 강철 및 유류에 대한 엠바고(embargo) 조치에 돌입했다. 영토가 팽창한 상태에서 유류가 제한 받을 경우 치명타가 될 ..

[1941. 12. 7] 일본 정부로부터도 이용당한 주미 하와이 일본대사, 노무라 제독

1941년 11월 14일, 주미 일본대사였던 기치사부로 노무라(野村 吉三郎, 1877~1964) 제독은 미-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자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미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으며, 일본 정부에는 미 정부와 협상을 하기 위해 융통성 없는 "데드라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던 당시의 주미 일본대사. 와카야마(和歌山)현 출신으로, 일본 해군병학교(海軍兵學校) 26기로 입교하여 1898년 57명의 사관생도 중 2등으로 졸업했다. 견습사관을 거쳐 1900년 1월에 소위 계급을 단 그는 전함 미카사(三笠)에 배속되어 1901년부터 1902년까지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러-일 전쟁이 발발할 당시 순양함 다카치호(高千穂)함 수석 항해사로 참전했으며, 전후에도 순양함..

[1941. 12. 7] 진주만 공습 직후 서류를 소각하는 하와이주재 일본영사관 직원

하와이(Hawaii)의 진주만(Pearl Harbor) 공습 직후인 1941년 12월 7일 오후 12:30분경, 하와이 경찰이 호놀룰루 소재 일본 영사관에 급습했을 당시 촬영된 사진. 당시 직원은 서둘러 주요 문서를 소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일본 대본영은 작전 개시 전에 선전포고가 가해질 경우 미국이 사전에 대비할 것을 우려해 일본 외무성에 기습작전 내용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대본영은 나구모 주이치(1887~1944) 중장이 지휘하는 진주만 기습함대가 작전을 개시한 뒤에야 전세계 일본 공관에 비문화 한 선전포고문을 송달했고, 하와이 영사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기습함대의 공습은 오전 7:50분부터 시작됐으며, 약 9:00시까지 한 시간 남짓동안 실시됐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영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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