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한국전쟁 7

[1950. 11. 16] 청천강 인근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 병사들

1950년 11월 16일, 청천강 북방 어딘가에서 미 제 24보병사단 19보병연대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나오고 있는 북한군의 모습. 이들이 군복을 벗어던진 정규군 병사인지, 혹은 게릴라, 통칭 "빨치산"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1월 초부터 미 제 19연대는 청천강 인근의 미 제 8군 교두보를 유지하기 위해 영연방 제 27 여단과 협조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19연대를 제외한 24보병사단의 나머지 잔여 병력과 미 제 1군단은 전투력 복원을 위해 청천강 아래로 이동했다. 따라서 미 제 19보병연대 예하 3, 2, 1 대대만이 청천강 측방의 안주에서부터 구룡강까지 퍼져 방어 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11월 4일부터 6일까지 중국 인민지원군이 대규모 공세를 실시했다. 이들은 한국군의 전면인 군우리와 미군의..

[1950. 11. 26] 중공 인민지원군, 625 전쟁 개입

1950년 11월 26일,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인민지원군이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일로를 걷고 있던 북한 인민군 지원을 위해 6.25 전쟁에 개입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부터 한반도의 공산화를 목표로 남침을 개시했으나, 미국이 지휘권을 받아 행사하게 된 국제연합군(UN군)이 창설되며 신생 국가인 대한민국 구원에 나섰다. UN군과 한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처절한 방어전을 치르는 찰나 세계 각지에서 증파된 UN군은 인천에 집결해 기습상륙을 실시했고, 이 한차례의 기습으로 양분된 인민군은 UN군과 낙동강의 한미연합군 사이에 끼어 괴멸했다. 이후 UN군과 한국군이 북상을 개시하며 평양을 점령했고, 곧 종전 시점이 다가오려는 순간 한반도에 통일 반공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보고있을 수 없던 중국은 전격적..

[1950. 10. 19] 터키 제 1 여단, 대한민국 도착 후 UN군에 합류

*어제자 UN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1950년 10월 19일, 제 1 터키 여단 4,500명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터키 여단은 대부분 터키 육군으로 구성됐으며, 총 3개 보병대대와 1개 야전보병대대, 1개 공병 중대, 1개 방공포대, 1개 수송중대, 1개 통신 소대, 1개 의무 중대, 기타 유지정비부대와 군악대, 예비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병 터키군이 다양한 병종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은 독립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제 1 터키 여단은 최초 주한 미 제 8군(EUSA)에 배속됐다. 1950년 11월, 터키 여단은 전초기지를 방어하면서 미 제 2보병사단의 우익을 맡았다. 이후 터키 여단은 미 제 25사단으로 배속되어 임무를 수행했다. 미군과 합동작전을 수행하면서 터키군은 뛰어난 총검술과..

[1951. 6. 1] 거제 수용소에 수용된 중공군 간호사

1952년 6월 1일,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중국인 의대생으로만 밝혀진 여성의 모습. 스스로를 '최씨'라고만 이름을 밝혔으며, 민간인 복장 상태로 구금되어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진에는 의대생인 동시에 의무병으로 활동했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므로 중국 인민의용군에서 활동하다가 포로가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1950. 9] 북한 인민군의 리학구 총좌, UN군 투항

1950년 9월, 대구에서 미군에게 투항한 직후 촬영된 북한 인민군의 리학구(李學九, 1922~1963) 총좌. 그는 낙동강까지 진출한 인민군 제 13사단 참모장이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인민군의 선두부대와 후속부대 간 허리가 끊기자 마주 대치 중이던 미 제 1기병사단 8기병연대 1대대 B중대에 투항했다. 그는 6.25 전쟁 중 UN군의 포로가 된 인민군 최고위급 장교였으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휴전이 되고 나서야 포로교환이 이루어져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는 1952년 여름 거제도에서 일어난 공산 포로 폭동사건의 주동자이기도 했다. : 에서도 소개된 인물. 총좌는 현재 폐지된 계급으로, 국군 계급에 대응하자면 준장에 가깝다(소좌-중좌-대좌-총좌). 소속대인 인민군 13사단은 개전 초부터..

[1952. 1. 9] 현역 시절 전쟁터를 두 번 다녀온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 테드 윌리엄스 선수

1952년 1월 9일, 미국 메이저리그(Major League)의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소속 좌익수인 테드 윌리엄스(Ted Samuel Williams, 1918~2002)가 현역 신분으로 전환된다고 미 해병대가 발표했다. 테드 윌리엄스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5월, 미 선별징병청(USSS: United States Selective Service)에 의해 미 해군 예비군으로 징병되어 한 차례 야구선수 커리어가 중단됐다. 이 시기에 징집된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은 해군 소속으로 적(籍)을 옮긴 후 야구를 계속했으나, 그는 징집자로 분류되자 몸 편하게 야구를 계속하는 대신 해군 항공대에 자원 입대했다. 그는 미 해군에 의해 앰허스트 대학교로 위탁교육을 보내져 항법학을 반년..

[1950. 10]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노획한 제 27 영연방 여단

1950년 10월 경, 현재의 북한 지역 어딘가에서 영국 육군 제 27보병여단 병사들이 이오시프 스탈린(上)과 김일성(下)의 사진을 노획한 뒤 찍은 기념 사진. 정확한 장소는 특정되지 않는다. : 영국 제 27보병여단은 현재는 해편된 부대이며, 당시 예하에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군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제 27 영연방 여단(27th British Commonwealth Brigade)였다. 27여단은 1914년에 제 9 스코틀랜드 사단 예하부대로 첫 창설했으며, 1차세계대전 발발 후 편성된 자원여단 중 하나였다.특히 이 부대는 '킷체너(Kitchener) 공의 군대'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유럽 서부전선에서 싸우기 위해 호레이쇼 허버트 킷체너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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