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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 4. 6] '사자왕' 리처드 1세 서거

라마막 2023. 4. 6. 21:09

1199년 4월 6일, "사자심(Lionheart)왕"으로 알려진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가 서거했다. 그는 1189년 제위에 올라 약 십여 년 간 영국을 다스렸다.

리처드 1세는 헨리 2세(Henry II, 1133~1189)와 아키텐(Aquitaine)의 알리에노르(Eleanor, 1122~1204) 왕비 사이의 다섯 자녀 중 세 번째 아이였다. 알리에노르 왕비는 프랑스 까페 왕가의 루이 7세(Louis VII, 1120~1180)의 아내였으나 이혼 후 헨리 2세와 재혼해 영국의 왕비가 되었다.

셋째 아이이던 리처드는 사실 헨리 2세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낮았으며, 그의 형제들은 훗날의 존 1세(John I, 1199~1216)도 단명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리처드는 왕위에 오른 뒤 군사 지휘관으로 용맹을 떨쳤으며, 이미 열 여섯 살 때 푸아투(Poitou)에서 발생한 반란을 직접 진압하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리처드 1세는 이슬람 세력에게 빼았긴 성지를 되찾자는 교황의 외침에 적극적으로 응했으며, 직접 군사를 이끌고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다. 십자군에 합류한 리처드 1세는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프랑스의 필리프 2세(Philip II, 1165~1223)가 본국으로 떠나버리자 이후 십자군을 맡아 총 지휘했다. 리처드는 아크레와 아르수프에서 이슬람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슬람 진영의 총사령관인 살라딘(Saladin al-Din Yusuf Ibn Ayyub, 1137~1193)과 대립각을 세우며 싸웠고, 이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라이벌 관계이자 전사의 표상으로 두고두고 숭상 받았다.

이들은 수개월 간 싸웠음에도 결정적인 승부가 나지 않자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쌍방은 협의를 통해 예루살렘의 지배권은 계속 이슬람이 행사하되, 기독교 순례자들의 자유로운 출입과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리처드 1세는 영국 국왕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하나이나, 옥스포드에서 태어나 즉위 전까지 내내 영국에서만 살았음에도 그는 불어 밖에 할 줄 몰랐고, 즉위 후 재위기간 중 영국에서 그가 보낸 시간은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민간 전승인 <로빈 후드> 이야기 등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다고 알려졌는데, 머리카락은 적빛이 도는 금발이었고, 창백할 정도의 하얀 피부에 옅은 푸른 색의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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