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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942] 동부전선에서 동료의 군장을 정리 중인 독일군 병사

라마막 2023. 1. 2. 12:03

동부전선에서 동료의 군장을 정리해주고 있는 독일군 병사.

전쟁 말엽까지 독일군은 약 1,250만 명을 징집했으며, 전쟁 전체 기간 중의 사상자는 4백만 명에 달한다. 독일군의 생존률은 각각의 병사들이 투입된 전선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동부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의 전사 및 부상 확률은 서부 전선이나 덴마크, 노르웨이에 있던 병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한 전쟁 말 오스트리아 빈(Wien) 인근이나 슐레지엔, 혹은 독일이 거의 마지막까지 승세를 유지했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최후의 치열한 전투 지역에서는 병사들의 생존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

물론 병종이나 병과 또한 생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U-보트 승조원의 경우는 종전 전까지 전사할 확률이 80%에 달했으며, 개전 초부터 종전 시점까지 살아남은 U-보트 수병의 수는 많지 않았다. 조종사나 항공병의 경우 또한 전개 지역, 그리고 입대 시점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천차만별 이었다. 이 경우는 오히려 개전 초에 입대해 경험이 축적된 조종사일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대신 전쟁 말에 다다를수록 위험한 임무에 투입된 확률이 높았다.

<2차 세계대전의 더럽고 작은 비밀(Dirty Little Secrets of World War II)>이라는 책에 따르면, 전쟁 기간 중의 통계 상 병사가 입대 후 90일 간의 전투 일수를 살아남았다면 종전까지 살아남을 확률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통상 신병들이 전사할 가능성이 가장 큰 위험한 시기는 전선 배치 후로부터 몇 주 간이었다.

소련 전선은 독일의 전 전선 중 생존 가능성이 가장 낮은 전선이었다. 만약 1939년에 독일국방군(베르마흐트: Wermacht)에 입대해 바르바로사(Barbarossa) 작전에 투입된 병사였다면 그가 종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은 60% 정도였고, 종전까지 살아남아 포로가 되지 않을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았다.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군 병력은 총 4백 만 명이었으나 1941년 단 한 해 동안 백 만 명 가까이 전사했으며, 대부분의 사망 사유는 동사나 아사였다.

많은 경우, 생존 자체가 운에 달려있었다. 독일국방군 제 132사단에 배치되어 있던 비데르만(Bidermann) 중위는 동부전선에 배치됐음에도 운이 좋던 경우로,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Sevastopol)에 최초 배치됐으나 곧 그의 사단은 스탈린그라드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부대는 전개 직전에 레닌그라드 공세로 바뀌어 투입됐다.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처음부터 투입되어 작전 종료까지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5%에 불과했다. 결국 비데르만 중위는 이 모든 위기를 뚫고 살아남았으며, 종전 시점에 독일의 마지막 처절한 인력 낭비가 된 덴마크의 '한니발(Hannibal)' 작전으로 부대가 투입되기 직전 라트비아의 쿠틀란드 포켓에서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한편 노르웨이에 배치됐던 병사들은 생존 확률이 90%에 달했다. 비록 노르웨이에서도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들의 사나운 공격과 독일 포로에 대한 잔인한 보복성 고문이 자행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전 전쟁터에 비교한다면 생존 가능성이 그 어디보다도 높았던 전선이었던 셈이다.

미군은 개전 초부터 종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가능성이 무려 84%에 달했다. 반면 독일군의 전 전쟁 기간 평균 생존 가능성은 약 70% 정도였다. 독일은 더 오랜 기간 전쟁을 치렀으며, 더 치열한 전장에서 강한 적과 험준한 지형, 처절한 기상 조건에서 싸웠지만, 총알에 맞든, 굶어 죽든, 추위에 얼어 죽든, 인간이 죽는 조건은 누구에게나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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