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전쟁사 202

[1950. 11. 16] 청천강 인근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 병사들

1950년 11월 16일, 청천강 북방 어딘가에서 미 제 24보병사단 19보병연대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나오고 있는 북한군의 모습. 이들이 군복을 벗어던진 정규군 병사인지, 혹은 게릴라, 통칭 "빨치산"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1월 초부터 미 제 19연대는 청천강 인근의 미 제 8군 교두보를 유지하기 위해 영연방 제 27 여단과 협조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19연대를 제외한 24보병사단의 나머지 잔여 병력과 미 제 1군단은 전투력 복원을 위해 청천강 아래로 이동했다. 따라서 미 제 19보병연대 예하 3, 2, 1 대대만이 청천강 측방의 안주에서부터 구룡강까지 퍼져 방어 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11월 4일부터 6일까지 중국 인민지원군이 대규모 공세를 실시했다. 이들은 한국군의 전면인 군우리와 미군의..

[1914. 12. 24] 조촐하게 크리스마스를 즐긴 독일군 병사의 회고

1914년 12월, 동부 전선의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두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독일 군인들의 모습. 다음은 1914년 12월 23일, 오늘로부터 109년 전, 동부 전선 최전방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덴마크-독일 군인 헤밍 스코브(Hemming Skov)의 기록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12월 23일 저녁에 우리는 참호로 들어갔고, 철도와 루드비코프 마을 사이에 위치한 진흙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낼 것 같았습니다. 몇몇 전우들과 함께 참호에 난로를 '설치'하여 아늑한 따스함을 즐겼습니다. 조용한 하루를 보낸 뒤 거룩한 크리스마스 이브, 사랑하는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낼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싸늘하고 적막한 환경 속에서 서로서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했습니다. 모두가 ..

[1942. 12. 22] 막내동생의 전사소식을 들은 '히틀러의 최측근' 알베르트 슈페어

1942년 12월 22일, 문 앞에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는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1905~1981). : 독일의 건축가로, 히틀러에게 중용받아 2차세계대전 내내 군수생산부 장관을 지냈다. 만하임의 중산층 집안 출신이며, 성적이 좋았지만 1923년에 발생한 초 인플레이션 사태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카를스루에(Karlsruhe)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이후 사정이 좀 나아지면서 뮌헨 기술대학교로 편입했다가 1925년에는 베를린 기술대학교로 옮겼으며, 이 곳에서 건축가 하인리히 테세나우(Heinrich Tessenow) 문하로 들어갔다. 그는 1927년 테세나우의 조교가 되면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슈페어는 1931년 1월 나치당에 가입 신청서를 냈으며, 1931년 3월 1일자로 수..

[1944. 12. 24] 총살 집행 중인 독일군 침투부대

미군 진영에 침투하던 독일군 첩자들이 총살당하기 직전의 모습. 이들은 1944년 12월 23일, '그리프(Grief)' 작전을 통해 미군 전투복을 입고 미군 진영 후방에 투입되었으며, 공공연하게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원수를 암살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들은 미군 전투복을 입고 교란행위를 한 혐의로 사형이 언도됐다. 이들을 처형한 근거는 정확하게 말하면 헤이그 협정 내용 중 '지상전에 관한 협약' 부분이다. 23조에 따르면 "이하의 내용은 특히 금지된다(중략)...휴전을 위한 백기, 혹은 적국의 국기나 군사 표식, 군복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프 작전은 발지 대전투 중 독일군이 실행한 비밀 작전으로, 1944년 12..

[1941. 12. 13] 진주만 공습 중 불시착한 일본군 조종사가 일으킨 '니이하우 사건' 발생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이 벌어지던 중 일본군 함재기 조종사인 니시가이치 시게노리(西開地 重徳)가 하와이 제도 중 조금 떨어진 섬인 인구 136명의 니이하우 섬에 불시착했다. 아직 진주만 공습 사건을 모르던 현지 주민들은 그를 구조해 치료했으나, 곧 일본군의 기습에 대해 니이하우 주민들도 알게 되었고, 니시가이치 역시 공습 중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니시가이치는 곧 현지 주민 중 일본계 주민을 모아 섬을 장악하려 했으나, 하와이 원주민인 베네하카카 카나헬레가 니시가이치를 제압하려 했다. 니시가이치는 베네하카카를 향해 권총을 세 발이나 쐈지만 이 거구의 하와이 원주민은 쓰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니시가이치를 잡아 들어 돌벽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베네하카카의 아내..

[1953. 4. 23] 625에 참전한 패튼 장군의 아들

1953년 4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인근에서 자신의 M46 패튼(Patton) 전차를 배경으로 선 조지 패튼 4세(George S. Patton IV, 1923~2004) 대위와 버나드 프레스키(Bernard Preskey) 중사의 모습. 이들은 당시 미 제 40보병사단 140 전차대대 A 중대의 중대장과 중대원이었다. 당시 140 전차대대 예하 2개 중대는 한국군 제 12보병사단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 패튼 대위는 2차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인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1885~1945) 대장의 친아들이다. 당시 그는 한국에 부임한지 2개월 차였으며, 휴전선 경계를 놓고 UN 진영과 공산진영이 마지막 전력을 쏟아넣는 치열한 시기에 한국에서 싸웠다. 그는 8월 휴전 무..

[1915] 3차 십자군 기사와 악수하는 호주 육군 모병 포스터

오스트레일리아의 1차세계대전 참전 독려 포스터. 1189년부터 1192년까지 진행된 3차 십자군 원정대의 영국군 기사와 악수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병사 모습을 그려놓았다. 3차 십자군 원정은 '사자왕' 리처드 1세(Richard I, 1157~1199)가 참가해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딘(?~1193)과 일전을 치렀던 십자군 원정이다. : 오스트레일리아 육군은 1차세계대전 발발 후 연합군에 참여하면서 뉴질랜드 군과 병력을 통합한 후 지중해 원정군을 편성했다. 1914년 이집트에 도착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병사들은 앤잭(ANZAC: Australia-New Zealand Army Corps)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최초에는 이들 부대를 단순히 오스트레일리아 연합군 혹은 오스트랄라시아 (Australasia)..

[1950. 11. 26] 중공 인민지원군, 625 전쟁 개입

1950년 11월 26일,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인민지원군이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일로를 걷고 있던 북한 인민군 지원을 위해 6.25 전쟁에 개입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부터 한반도의 공산화를 목표로 남침을 개시했으나, 미국이 지휘권을 받아 행사하게 된 국제연합군(UN군)이 창설되며 신생 국가인 대한민국 구원에 나섰다. UN군과 한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처절한 방어전을 치르는 찰나 세계 각지에서 증파된 UN군은 인천에 집결해 기습상륙을 실시했고, 이 한차례의 기습으로 양분된 인민군은 UN군과 낙동강의 한미연합군 사이에 끼어 괴멸했다. 이후 UN군과 한국군이 북상을 개시하며 평양을 점령했고, 곧 종전 시점이 다가오려는 순간 한반도에 통일 반공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보고있을 수 없던 중국은 전격적..

[1945. 11. 20]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시작

1945년 11월 20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시작됐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우선 24명의 고위급 나치 관리를 대상으로 재판을 시작했으며, 전후 전쟁범죄 조사가 진행되면서 대상자가 늘었다.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포로가 된 나치 관리들의 처우를 고민하게 됐으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나왔다. 스탈린은 사로잡은 나치 장교와 정부관리 대부분을 대규모 처형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들 전부에 대한 일괄적 처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후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소련 모두 포로가 된 나치 관리에 대해 재판을 벌인 후 '최악의 인물'들에 대해서만 처형하는데 동의했다. 재판은 국제 군사법원(IMT: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에서 처리하기로 했으며, 이 법원은..

[1952. 11. 18] 휴전 협상에 가려 비밀에 붙여진 한반도 상공의 미-소 공중전

1952년, 미 해군의 F9F-5 판서(Panther) 조종사인 로이스 윌리엄스(Royce Williams) 대위는 북한의 해안지역을 윙맨과 함께 비행하던 중 소련 공군 MiG-15 네 대의 공격을 받자 이들을 모두 격추했다. 그는 총 35분간 전투를 치르면서 적기로부터 263발을 맞았으나, 전투 후 간신히 모함인 오리스카니 함(USS Oriskany, CV-34)까지 귀환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미 정부는 휴전 협상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다시 전쟁이 확전하지 않도록 소련군과의 이 교전사실 자체를 비밀에 붙였다. 이 전투 자체도 최근이 되어서야 공개됐으며, 일각에서는 윌리엄스 대위에게 명예대훈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운동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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