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28

[1937] 독일의 도움으로 양성된 국민혁명군 제 88 사단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병사들이 도열하고 있는 모습. 국민혁명군의 정예는 1926년에 체결된 중-독 군사협력조약에 의해 1941년까지 독일식으로 훈련받고 독일제 장비로 무장했다. 이들 사단은 국공내전은 물론, 중일전쟁에도 투입되어 국민혁명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제 87 및 88사단은 장제스(蒋介石, 1887~1975) 특급상장(特級上將)이 보유하고 있던 최정예 부대였다. 이 두 부대는 장제스가 1930년 초, 독일 군사고문을 받기로 하면서 양성이 시작됐다. 장제스는 초대 독일 군사고문으로 바이마르(Weimar) 공화국 시절 병무총감을 지낸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1866~1936) 중장을 받았으며, 젝트 장군은 부대 양성과 훈련 뿐 아니라 국공내전에서 공산..

[1944. 5. 22] 안치오 전투 중 부상병을 이송 중인 독일군 포로들

1944년 1월~6월까지 이탈리아 안치오(Anzio) 에서 벌어진 '안치오' 전투 중 촬영된 사진. 1944년 5월 22일, 안치오에서 지뢰를 밟고 한쪽 다리가 날아간 영국군 병사를 연합군 포로가 된 두 독일군 공정부대원들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처 세계대전 중 지뢰에 의한 부상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자주 등장한 급조폭발물(IED: Improvised Explosive Device)에 의한 피해와 다를 바 없었다. 아울러 포로로 사로잡은 독일군 공정대원을 부상자 이송에 투입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전투 후에는 일손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포로를 부상자 이송 등의 노역에 투입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치오 전투는 2차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전역에서 벌어진 전투 중 하나로, ..

[1944.7.20] '발키리 작전', 히틀러 암살미수사건 발생

1944년 7월 20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 대령을 비롯한 이들이 동프로이센 라스텐부르크(Rastenburg)의 히틀러 야전지휘소인 '늑대굴'에 폭탄을 설치해 히틀러 암살을 모의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일명 "발키리 작전(Operation Valkyrie)"이라 명명했던 이 암살 계획은 원래 암살계획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작전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후대에는 암살 미수 사건 전체를 칭하는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히틀러 암살 계획에는 히틀러에게 실망한 장교들 외에도 전통적인 우익 보수 성향 정치가, 고위 경찰, 그리고 외교관들까지 가담했다. 이들은 히틀러가 최대한 끔찍하게 살해당해야 일반 국민들이 반(反) 나치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했다. 7월 20일..

[1944] 아이스크림 배식 줄을 새치기한 미 해군 장교들의 최후

오늘은 미국의 '아이스크림의 날'이다. 2차세계대전 중에 장병 사기를 위해 미 해군이 일부러 아이스크림 공급에 신경썼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다. 그런 어느 날, 한 미 해군의 함정 내에서 아이스크림 공급이 시작되자 수병들이 달려와 줄을 섰다. 그때 두 명의 장교가 오더니 계급빨을 내세우며 앞으로 새치기를 했다. 그러자 뒤에서 어마어마한 항의가 들어왔고, 이에 두 장교는 다시 계급을 강조하려고 뒤로 돌았는데 - 순간 이들의 눈에는 수병들과 함께 줄 서있다가 대노한 표정으로 항의하고 있는 함대사령관인 윌리엄 할시(William F. Halsey, 1882~1959) 중장의 모습이 보였다. 이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줄 맨 끝으로 가 섰다고 한다. : 덧붙이자면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원수까지 진급하신..

[1944. 6] 독일 군복을 입은 의문의 조선인 포로, 양경종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어 온 사진. 장동건,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2011년작 《마이웨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내용이다. 참고로 그가 처음 "한국인"이라는 단서도 이 사진 뒷면에 사진 촬영자가 취조 과정에서 들은 이름인 '양경종(Yang Kyoungjong)'을 영어로 휘갈겨 써놔 처음 알려졌음. : 2차 세계대전 중 3개국 군복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한국인 병사의 모습. '양경종'은 조선 출신으로, 최초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소련군에게 생포됐고, 소련군에 입대해 대독(對獨) 전선에 투입됐으며, 다시 독일군으로 입대해 노르망디를 방어하다가 미군에게 생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양경종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단지 알려진 것은 그가 조선 출신이고, 2차 세..

[1940.8] 베를린 대공방어를 위해 축조한 동물원의 요새

독일 동물원에 설치된 '동물원 대공포' 탑. 이 '동물원 탑'은 강화 대공포 진지 탑으로, 현재 베를린 동물원(티어가르텐/Tiergarten) 인근에 설치되어 그 이름이 붙었다. 대공포 탑은 1940년 8월, 영국 왕립공군이 베를린에 첫 폭격을 실시하자 축조가 결정되었으며, 이렇게 설치된 총 8개의 대공포 탑 중에서 사진에 나온 '동물원 탑'이 가장 유명하다. 이 탑은 8개 중 가장 먼저 설치됐으며, 베를린의 정부 기관 시설을 방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차 세계대전 중 '동물원 탑'을 포함한 대공포 탑은 독일공군('루프트파페')과 함께 영국 왕립공군 및 연합군의 항공기 공격으로 야기될 독일 본토의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동물원 탑은 1세대 대공포 탑으로, 2개의 구조물을 겹쳐서 지은 형태..

[1951. 6. 30] 30명의 패잔병과 단 한 명의 여성이 고립된 '아나타한 섬 사건'

1951년 6월 30일, 마리아나 해구의 한 작은 섬인 아나타한 섬에서 약 30명의 일본군 병사와 수병들이 미 해군에 항복했다. 종전 후에도 항복을 거부하고 이 섬에서 6년 넘게 버티던 이들은 인원 수가 많은데다 섬에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해 버틸 수 있었지만, 섬에서 코코넛 술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단 한 명 밖에 없는 여성을 두고 내부 투쟁이 벌어지면서 계급체계 자체가 흐릿해진 상태였다. : 하도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과 2년 뒤인 1953년에 이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이들은 세 척의 좌초한 일본군 함정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며, 원래 1945년 종전 당시 미군이 마리아나 제도에 도착하면서 생존자들 및 섬 원주민들을 섬 밖으로 한 차례 이송했다. 하지만 이 서른 명은 일본이 패망했다는 사실..

[1940. 7] 영국을 멸망시켜라!! 나치독일의 '바다사자' 작전

1940년 독일이 입안한 영국 본토 강습 양륙작전, 통칭 "바다사자(Sea Lion)" 작전 계획도. 이 작전은 영국 경제가 악화되면 항공기 가동률이 저하하는 시점에 독일공군 루프트바페가 제공권을 뺏으며, 이후 왕립해군에 대한 대규모 폭격으로 영국 해군을 격멸시킨 뒤 영국에 상륙한다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동, 서 유럽을 석권한 나치 독일은 서유럽의 마지막 저항세력인 영국을 정복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영국의 정복은 미국의 참전의지를 완전히 꺾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으므로 무엇보다 중요했다. 유럽 대륙의 집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영국이 없다면, 미국 본토에서부터 직접 유럽을 공격하는 것은 거리 부담이 늘어나 보급선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를 건너 공격해야 한다는 부담이..

[1940] 네덜란드 해변에서 오토바이 시험 중인 독일 병사들

1940년, 독일 무장친위대(SS) 소속 병사가 네덜란드 스케브닝언(Scheveningen) 해변에서 모터사이클을 시험해보고 있는 모습. 해안에 배치된 독일 병사들은 북해를 따라 모터사이클로 종종 달리면서 민첩성 연습을 하곤 했다. 이 지역은 전쟁 초반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으며 연합군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므로 한적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해변에서 근무하던 독일 병사들은 독일본토에서 카메라를 사와 휴일마다 촬영을 해 가족들에게 보내곤 했다. 2차세계대전 초반부터 독일 국방군이 현대적인 모터사이클을 사용했다는 것은 와전된 이야기에 가깝다. 1940년 초, 서유럽으로 침공한 독일군의 공세세력 중 차량화 된 병력은 10%(157개 사단 중 16개)에 불과했다. 이 시기만 해도 독일군 상당 수는 기동..

[1945. 2. 13] 격파된 독일군 돌격포 뒤에 은폐 중인 자유폴란드 병사들

영국군에 배속된 제 2 폴란드 군단 3 '카르파티아(Carpathian)' 라이플 사단 2여단 5대대 1중대 1소대원들이 격파된 독일군 돌격포 뒤에 은폐한 상태로 2인치 박격포를 장전 중인 모습. 뒤에는 통신병이 웅크린 상태로 통신 연결을 시도 중인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은 1945년 2월 13일, 파엔차(Faenza)에서 촬영됐다. 이들은 정찰부대로, 세니오(Senio) 강 남쪽 언덕으로 정찰을 하던 중 적과 조우했다. 사진 속에 격파된 돌격포는 이탈리아제 세모벤테(Semovente) 75/18의 파생형으로, 정식 명칭은 세모벤테 M42M 75/34이다. 이 차량은 기본적으로 세모벤테 75/18 M41에 75mm L34 브레다(Breda) 포를 장착한 형상으로, 대전차 공격 능력을 향상 시킨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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