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전쟁사/625전쟁사 33

[2023. 1. 7] MiG-15와 월남한 노금석 상위 별세

2023년 1월 7일, 미국에서 케네스 로(Kenneth Rowe) 교수가 별세함. 이렇게 말하면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노금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1932년생인 그는 1949년 8월 북한 해군 군관학교에 입학해 조종사가 됐으며,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21일, 순안 공항에서 최신예기인 MiG-15를 몰고 김포공항을 통해 월남했다. 당시 미 극동사령부는 해당 기체에 약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놨는데, 노 상위는 그 사실을 모른채 항공기를 갖고 귀순했다고 한다. 귀순 후 그는 앞서 월남한 모친과 상봉했으며, 현상금을 수령한 후 195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델라웨어 주립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한 뒤 듀폰, 웨스팅하우스에서 근무했으며, 퇴직 전까지는 데이토..

[1952. 1. 9] 현역 시절 전쟁터를 두 번 다녀온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 테드 윌리엄스 선수

1952년 1월 9일, 미국 메이저리그(Major League)의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소속 좌익수인 테드 윌리엄스(Ted Samuel Williams, 1918~2002)가 현역 신분으로 전환된다고 미 해병대가 발표했다. 테드 윌리엄스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5월, 미 선별징병청(USSS: United States Selective Service)에 의해 미 해군 예비군으로 징병되어 한 차례 야구선수 커리어가 중단됐다. 이 시기에 징집된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은 해군 소속으로 적(籍)을 옮긴 후 야구를 계속했으나, 그는 징집자로 분류되자 몸 편하게 야구를 계속하는 대신 해군 항공대에 자원 입대했다. 그는 미 해군에 의해 앰허스트 대학교로 위탁교육을 보내져 항법학을 반년..

[1953. 1. 22] "샌드백 성(城)"에서 고지를 사수 중인 프랜시스 코너스 상사

1953년 1월 22일, 북한 지역의 1052 고지, 통칭 "샌드백 성(Sandbag Castle)"에서 촬영된 프랜시스 코너스(Francis Conners) 미 육군 상사의 모습. 당시 그의 소속대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해당 일자에 1052 고지를 점령했던 부대가 미 제 45보병사단 180보병연대 였으므로 해당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샌드백 성은 38선 바로 북방의 사태리 계곡에 있으며, 악명높은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 인근이다.

[1951. 1. 3] 서울 재점령 후 정부청사 앞에서 환호하는 중국군

중국 인민의용군 병사들이 서울에 진입한 후 정부청사 건물 앞에서 환호 중인 모습. 1951년 1월에 촬영된 사진으로, 6.25 개전 초 북한군이 점령했던 서울을 인천상륙작전 후 UN군이 다시 탈환한 것을 중국군이 재점령한 상황이었다. 사진이 찍힌 정확한 일자는 알 수 없으나, UN군 측이 서울 방어를 포기하고 퇴각한 것이 1월 4일이므로 이 날 경으로 추측된다. 중국은 북한군이 압록강까지 밀리자 전쟁에 전격 개입한 후 1951년 1월 2일까지 서울 교두보에서 14.5km 지점까지 순식간에 밀고 내려왔다. 중국군과 교전을 치른 한국군 부대는 최소 4개 집단군 5개 사단 이상의 중국군이 서울로 진격하고 있다고 UN사에 보고했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UN 진영은 중국군이 동쪽에서도 밀고내려오고 있을 가능성..

[1950. 10]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노획한 제 27 영연방 여단

1950년 10월 경, 현재의 북한 지역 어딘가에서 영국 육군 제 27보병여단 병사들이 이오시프 스탈린(上)과 김일성(下)의 사진을 노획한 뒤 찍은 기념 사진. 정확한 장소는 특정되지 않는다. : 영국 제 27보병여단은 현재는 해편된 부대이며, 당시 예하에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군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제 27 영연방 여단(27th British Commonwealth Brigade)였다. 27여단은 1914년에 제 9 스코틀랜드 사단 예하부대로 첫 창설했으며, 1차세계대전 발발 후 편성된 자원여단 중 하나였다.특히 이 부대는 '킷체너(Kitchener) 공의 군대'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유럽 서부전선에서 싸우기 위해 호레이쇼 허버트 킷체너 백..

[1978. 6. 1] 대통령에 맞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 미국의 영웅

1944년 8월 11일, 적지 종심에 연합군 특수작전 요원을 침투시키는 "제드버러(Jedburgh)" 작전을 위해 낙하산 강하작전을 준비하던 중 촬영된 존 K. 싱글러브(John Kirk Singlaub, 1921~2022) 중위의 모습. 가슴에는 공정강하용으로 제작된 .3 구경 M1-A1 개머리판 접이식 카빈을 매고 있다. 그는 작전 투입에 앞서 적에게 잡힐 경우를 대비해 청산가리가 든 캡슐이 지급되자 이를 받지 않고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전 적에게 잡힐 계획이 없거든요." 싱글러브는 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참전했으며, 두 개의 우수근무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 은성훈장(Silver Star), 퍼플하트(Purple ..

[1950. 12. 5] 장진호 전투를 버텨낸 미 해병대의 전설, 체스티 풀러 장군

체스티 풀러 장군은 미군에서 역사상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실전 공적 검증이 되어야만 수여 되는 해군 십자 훈장만 다섯 개를 받았고, 우수근무십자훈장까지 하나가 있어 "십자 훈장"만 여섯 개를 보유한 인물이다. 역사상 십자훈장 수가 그보다 많은 인물은 1차세계대전 중 육군 항공대 조종사로 참전해 적기 26기를 격추 한 에디 리켄벡커(Edward Vernon Rickenbacker, 1890~1973) 대위 뿐이다. 버지니아 주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VA) 태생. 부친을 열 살에 여의고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려서 부터 남북전쟁 이야기에 심취해 특히 토머스 '스톤월'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 1824~1863) 장군에게 매료됐다. ..

[1950. 8. 22] 국군 장군이 된 인민군 중좌 - 정봉욱 소장

사진 속 인물인 정봉욱(鄭鳳旭, 1924~2018) 중좌는 유일하게 전쟁중 북한군 좌관급 장교가 국군에 투항한 뒤 국군 장교로 임관한 사례다. 그는 원래 북한 인민군 제 13사단에 소속되어 있던 포병장교였다. 그는 당번병 하나와 함께 하루 전 날인 8월 21일에 미 제 25사단 27연대에 투항했다가 국군 제 1사단에 인계됐다. 황해도 안악군 태생. 일제시대 때 태어나 중국국민혁명군 제 18집단군, 혹은 공산군 예하 "팔로군(八路軍)"에 소속되어 중국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했으며, 평양 군관학교를 거쳐 인민군 포병으로 임관했다. 6.25가 발발했을 당시에는 전연군단인 인민군 1군단 예하 13사단 사단 포병대에 소속되어 참전했다. 북한 인민군 1군단은 개전과 함께 남침을 시작한 후 강원도를 거..

[1950. 10] 6.25 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에이스, 세르게이 크라마렌코 대위

소련 공군의 에이스인 세르게이 크라마렌코(Sergey Kramarenko, 1923~2020) 대위의 모습. 사진은 그가 소련 공군 제 324 전투항공사단 예하 176 호위전투항공연대에 소속되어 있던 당시 촬영한 것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부터 참전했으며, 1951년 4월~1952년 1월까지 북한에 파병되어 총 15대의 UN군 항공기를 격추해 에이스가 되었다. : 소련의 '인민영웅' 칭호를 받은 에이스 조종사. 소련이 배출했던 '마지막' 에이스였으며, 2차 세계대전과 6.25 두 전쟁 참전 후 1970년대에는 이라크 공군과 알제리 공군 자문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소련군에서 공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인 칼리노프카(Kalinovka) 태생으로, 부모가 어려서 이혼하는 바람에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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