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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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 116

[1940. 8. 20] 공산주의 사상가 레온 트로츠키, 암살 당하다

1940년 8월 20일, 공산주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가 NKVD 요원인 라몬 메르카데르(Ramon Mercader, 1913~1978)에게 암살 당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내전 중 소련이 승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한창 주목받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는 1929년 신생 소련에서 추방당했다. 트로츠키는 이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스탈린 정권을 비판하고 스스로 정립한 공산주의 사상인 '트로츠키주의'를 전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멕시코가 망명을 허용하자 그 곳으로 가 정착했다. 비록 그는 다른 대륙으로 옮겨 갔지만, 스탈린은 궐석재판을 진행해 트로츠키에게 반역혐의를 씌웠다. 이 때부터 트로츠키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이어졌지만 그는 몇 번인가의 ..

[1977. 8. 16] '락앤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1977년 8월 16일, "락앤롤(Rock and Roll)의 황제"로 불리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가 약물 과다 사용으로 자택인 그레이스랜드(Graceland)에서 사망했다. 프레슬리는 1964년부터 락앤롤을 대중화하면서 폭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독창적인 컨트리 음악과 리듬앤블루스를 결합한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56년 1월 싱글 앨범인 "허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로 공전의 히트를 쳤으며, 곧 자신의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각종 TV 프로와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이후에도 "제일하우스 록(Jail House Rock)",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Can't help Falling in Love)", "러브..

현대사 2023.08.16

[1955. 4. 18] 앨버트 아인슈타인 박사,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

1948년, 당시 69세이던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박사는 복부 대동맥류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을 결정했을 때 이미 상태가 악화될대로 악화된 상태라 집도를 맡은 의사는 아인슈타인 박사의 혈관을 셀로판 비닐로 감아 더 이상 팽창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이상 더 손댈 수가 없었다. 이미 3백만 건 이상의 분석결과가 쌓여있는 복부 대동맥류는 흡연이 가장 큰 발병 원인으로 꼽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복부 대동맥류가 나타난 이의 80% 이상이 대량 흡연자, 흔히 말하는 '골초'이다. 아인슈타인의 수술을 마친 의사는 박사의 건강이 안 좋으니 금연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으나, 아인슈타인 박사는 수술 후 회복되어 병원을 나서자마자 의사의 말 따윈 상관도 안한다는 듯..

현대사 2023.07.25

[1908. 7. 8] 미국 굴지의 재벌집안 출신 부통령, 넬슨 록펠러 출생

포드(Ford)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넬슨 록펠러(Nelson Aldrich Rockefeller, 1908~1979)의 초상화. 그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꼽는) 최대의 갑부 가문인 록펠러 가문 출신으로, 원래 가업을 이어 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다트머스(Dartmouth)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체이스 은행(Chase Bank: 현재의 J.P. 모건 체이스)과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 주식회사에서 임원을 지냈다. 넬슨 록펠러는 1930년 메리 토드헌터 클라크(Mary Todhunter Clark Rockefeller, 1907~1999)와 결혼했으며, 그녀로부터 다섯 자녀를 얻었다. 그는 비즈니스 계에서 다양한 직위를 거쳤으며, 1950년 국제 개발 자문위원회(Internat..

현대사 2023.07.17

[1944] 아이스크림 배식 줄을 새치기한 미 해군 장교들의 최후

오늘은 미국의 '아이스크림의 날'이다. 2차세계대전 중에 장병 사기를 위해 미 해군이 일부러 아이스크림 공급에 신경썼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다. 그런 어느 날, 한 미 해군의 함정 내에서 아이스크림 공급이 시작되자 수병들이 달려와 줄을 섰다. 그때 두 명의 장교가 오더니 계급빨을 내세우며 앞으로 새치기를 했다. 그러자 뒤에서 어마어마한 항의가 들어왔고, 이에 두 장교는 다시 계급을 강조하려고 뒤로 돌았는데 - 순간 이들의 눈에는 수병들과 함께 줄 서있다가 대노한 표정으로 항의하고 있는 함대사령관인 윌리엄 할시(William F. Halsey, 1882~1959) 중장의 모습이 보였다. 이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줄 맨 끝으로 가 섰다고 한다. : 덧붙이자면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원수까지 진급하신..

[1944. 6] 독일 군복을 입은 의문의 조선인 포로, 양경종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어 온 사진. 장동건,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2011년작 《마이웨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내용이다. 참고로 그가 처음 "한국인"이라는 단서도 이 사진 뒷면에 사진 촬영자가 취조 과정에서 들은 이름인 '양경종(Yang Kyoungjong)'을 영어로 휘갈겨 써놔 처음 알려졌음. : 2차 세계대전 중 3개국 군복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한국인 병사의 모습. '양경종'은 조선 출신으로, 최초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소련군에게 생포됐고, 소련군에 입대해 대독(對獨) 전선에 투입됐으며, 다시 독일군으로 입대해 노르망디를 방어하다가 미군에게 생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양경종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단지 알려진 것은 그가 조선 출신이고, 2차 세..

[1994. 7. 8] 북한의 통치자 김일성 사망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1912~1994) 주석이 사망했다.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해방 후 혼란기에 소련의 비호를 받으며 북한에 입성했으며,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세습제의 왕조나 마찬가지인 '김씨(金氏) 조선'을 만들었다. 그는 사실상 신성 불가침의 절대 왕조를 수립해 권력을 휘둘렀지만, 그의 최후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여러가지 추측이 혼재한다. 특히 말년에는 아들 김정일(金正日, 1997~2011)에게 권력 싸움에서 패해 실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이미 후계작업이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암살설'과 '사망 방치설' 등이 존재한다.1994년 7월 8일 오전, 김일성은 향산군(香山郡)에 세워 놓은 초대소(별장)에 있다가 심..

현대사 2023.07.08

[1998. 6. 30] '무명의 용사'로 오인받은 미군 조종사, 이름을 되찾다

1972년, 베트남 공화국군(ARVN: Army of the Republic of Vietnam) 정찰대가 미군 A37 지상 공격기 추락 지점을 정찰하던 중 시신 일부를 수거해 미군에 전달했다. 당시 베트남 공화국 군은 해당 지점에서 미군의 신분증, 군번 줄, 가족 사진이 들어있는 지갑, 조종복과 권총집 일부를 함께 수거해왔으며, 당시 신분증에는 마이클 블라시에(Michael Blassie) 미 공군 중위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 베트남으로부터 이 물건들을 인수받은 윌리엄 파넬(William Parnell) 대위는 이 물건들을 군번줄로 감아 플라스틱 박스에 넣은 후 태국에 설치한 미 수색회복본부로 넘겼으며, 다시 이 물건들은 하와이에 위치한 미 육군 중앙 신원확인 연구소(US Army Centra..

[1951. 6. 30] 30명의 패잔병과 단 한 명의 여성이 고립된 '아나타한 섬 사건'

1951년 6월 30일, 마리아나 해구의 한 작은 섬인 아나타한 섬에서 약 30명의 일본군 병사와 수병들이 미 해군에 항복했다. 종전 후에도 항복을 거부하고 이 섬에서 6년 넘게 버티던 이들은 인원 수가 많은데다 섬에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해 버틸 수 있었지만, 섬에서 코코넛 술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단 한 명 밖에 없는 여성을 두고 내부 투쟁이 벌어지면서 계급체계 자체가 흐릿해진 상태였다. : 하도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과 2년 뒤인 1953년에 이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이들은 세 척의 좌초한 일본군 함정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며, 원래 1945년 종전 당시 미군이 마리아나 제도에 도착하면서 생존자들 및 섬 원주민들을 섬 밖으로 한 차례 이송했다. 하지만 이 서른 명은 일본이 패망했다는 사실..

[1858. 6. 18] 인류학자 찰스 다윈, 첫 출판으로 진화론을 알리다

1858년 6월 18일,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이름이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Alfred Russell Wallace, 1823~1913)가 쓴 연구논문을 통해 처음 이름이 알려졌다. 월러스의 논문은 다윈과 별개의 연구과정을 통해 다윈의 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이에 따라 다윈은 '진화론'의 출판을 결심하게 된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자연선택론(theory of natural selection)'에 대해 연구했으며, 이 기간 중 갈라파고스(Galapagos) 제도로 떠나는 영국 왕립해군 탐사대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갈라파고스에 체류하는 동안 다윈은 지질학자로 활동했지만, 그 곳에서 목격한 야생동물과 채집한 화석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근대사 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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