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1월 14일, 주미 일본대사였던 기치사부로 노무라(野村 吉三郎, 1877~1964) 제독은 미-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자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미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으며, 일본 정부에는 미 정부와 협상을 하기 위해 융통성 없는 "데드라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던 당시의 주미 일본대사. 와카야마(和歌山)현 출신으로, 일본 해군병학교(海軍兵學校) 26기로 입교하여 1898년 57명의 사관생도 중 2등으로 졸업했다. 견습사관을 거쳐 1900년 1월에 소위 계급을 단 그는 전함 미카사(三笠)에 배속되어 1901년부터 1902년까지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러-일 전쟁이 발발할 당시 순양함 다카치호(高千穂)함 수석 항해사로 참전했으며, 전후에도 순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