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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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141

[1945. 4. 8] 독일군 포로를 이송 중인 미 제100대대 소속 재미 일본인 병사

1945년 4월 8일, 미 제 100보병대대 소속 샘 요시하나(Sam Yoshihana)가 독일군 포로를 인솔 중인 모습. 그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이며, 이 사진은 이칼리아 리구리아(Liguria)와 발레키아(Ballecchia) 마을 전투 후에 촬영된 것이다. 진주만 공습이 터지면서 일본의 기습을 받은 미국 내에서는 '재미 일본인'들, 통칭 '니세이'들이 미국 내에서 조상의 나라의 편에 서서 '제5열' 노릇을 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시 이 문제를 놓고 FBI의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 국장마저 조사 후 니세이들의 내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를 올렸지만, 하필 진주만에서 격추된 일본군 조종사 니시카이치 시게노리(西開地 重徳)가 니이하우 섬으로..

[1945. 6. 27] 적들조차 인정한 일본의 마지막 명장, 우시지마 미쓰루 중장

2차 세계대전 및 태평양전쟁의 종장 중 하나인 오키나와(沖縄) 전투에서 방자(防者) 측인 일본군을 지휘한 우시지마 미쓰루(牛島 満, 1887~1945) 중장의 모습. 그는 압도적인 열세의 상황에서 지구전으로 대응했으며, 이 때문에 미군은 지연전에 말려들면서 오키나와 제도 점령에 2개월이 걸렸을 뿐 아니라 사상자도 35,000명 이상이 발생했다. 가고시마(鹿児島) 태생인 그는 사쓰마 번(薩摩藩) 무사였던 부친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이 현대화 된 군대를 설치하자 부친 또한 초창기 일본군에서 장교 생활을 했다. 그는 성년이 되어 일본 육군사관학교 20기로 입교했으며, 1908년에 졸업하여 육군대학에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장)나 다나카 시즈이치(田中静壱, 대장) 등과 함께 28기로 입교했다. 중일전..

[1937. 1. 28] 제 1차 상하이 사변 발발

상하이 전투는 중국 국민혁명군이 일본을 상대로 치른 22회의 대 회전(會戰) 중 하나로, 사실상 중일전쟁의 초전과도 같은 전투였다. 특히 국민혁명군은 70개 사단 75만 명, 일본은 9개사단 30만 명을 투입한 대 전투였기 때문에 훗날 사가들은 이 전투를 "양쯔강(陽子江)의 스탈린그라드"라 일컫는다. 또한 사실상 2차 세계대전의 핵심 교전국가 간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이 전투가 2차 세계대전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은 이미 1931년에 만주를 침공한 뒤 1932년 상하이를 한 차례 침공했다. 쌍방의 긴장은 1937년 노구교(蘆溝橋) 사건(혹은 서양에서는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으로 증폭됐으며, 일본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중국 대륙 침공을 개시했다. 일명 1차 상하이 전투(혹은 1,..

[1942] 동부전선에서 동료의 군장을 정리 중인 독일군 병사

동부전선에서 동료의 군장을 정리해주고 있는 독일군 병사. 전쟁 말엽까지 독일군은 약 1,250만 명을 징집했으며, 전쟁 전체 기간 중의 사상자는 4백만 명에 달한다. 독일군의 생존률은 각각의 병사들이 투입된 전선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동부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의 전사 및 부상 확률은 서부 전선이나 덴마크, 노르웨이에 있던 병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한 전쟁 말 오스트리아 빈(Wien) 인근이나 슐레지엔, 혹은 독일이 거의 마지막까지 승세를 유지했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최후의 치열한 전투 지역에서는 병사들의 생존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 물론 병종이나 병과 또한 생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U-보트 승조원의 경우는 종전 전까지 전사할 확률이 80%에 달했으며, 개전 초부터 종전 시점까지 살..

[1944. 1. 1] 이오지마로 가기 전 마지막 기념촬영을 한 일본군 중위 가족

2014년에 출간된 댄 킹(Dan King)의 소설 『이오지마(硫黄島)라는 이름의 무덤(A Tomb Called Iwo Jima)』은 일본어에 능통한 미국인이 쓴 소설이지만, 실제 이오지마에서 마지막 항전을 한 일본군의 내용을 담았다. 이 소설은 실화에 바탕한 내용이다. 사진은 1944년 1월 1일, 나라(奈良)현 사쿠라이(桜井)시에서 부모와 함께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한 하토리 겐이치(服部健一, ?~?) 중위와 그의 동생인 하토리 겐지(服部健二, ?~?)의 모습이다. 하토리 겐이치 중위(맨 오른쪽)는 당시 결혼을 하여 슬하에 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육군 예비대 소속이었으나 현역으로 전환되어 오사카(大阪) 지역의 해안포대장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이오지마로 떠나는 제 10 대전차대대 ..

[1941. 12. 7]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미 구축함의 첫 한 발

많은 이들의 상상과 달리, 사실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첫 한 발"의 총격은 일본군이 아닌 미군 구축함에서 발사됐다. 12월 7일 새벽 5시 45분, 미 해군 소속 화물선인 안타레스 함(USS Antares, AG-10)진주만 외곽에 설정된 방어 해상 구역(Defensive Sea Area) 바깥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포착했다. 이에 구축함 워드 함(USS Ward, DD-139)이 해당 물체를 향해 오전 6:37분경 두 발의 함포를 발사했다. 워드 함의 두 번째 함포 사격이 해당 물체에 명중했으며, 뭔지 알 수 없던 '그것'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당시 명중 당한 잠수함은 선발대로 진주만에 온 일본군 소형 잠수정으로, 이 잠수정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일본군 수병은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 발생한..

[1941. 12. 27] 연합군, 노르웨이 '아쳐리(화살)' 작전 개시

1941년 12월 27일, 노르웨이 복쇠위(Vågsøy)와 몰뢰이(Måløy)에서 '아쳐리(Archery)' 작전이 실시됐다. 연합군은 이 날 노르웨이령 섬인 복쇠위와 몰뢰이를 기습하면서 연합작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작전은 처음부터 항공 지원을 기습 계획 초기 단계부터 포함 시켰다. 이는 같은 해 초 로포텐(Lofoten) 2차 공습작전의 교훈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연합군은 항공 지원을 계획에서 빼놓는 바람에 기습에 참가한 함정들이 추축국 항공기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두 섬에는 독일군이 주둔하면서 해안 방어를 강화한 상태였으므로 연합군은 이를 극복해야 했다.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독일군 181 사단에 소속된 병사 150명과 전차 한 대, 100명의 건설 노무자들이 섬 ..

[1945. 12. 21] 미 육군의 맹장, 조지 패튼 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

1945년 12월 21일, 미국의 명장인 조지 패튼(George Smith Patton, 1885~1945) 장군이 독일 만하임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 독불장군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명장으로, 히틀러조차 "연합군에서 가장 위험한 사내"라고 불렀던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주 LA 외곽인 산 게이브리얼(San Gabriel)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군인을 동경했으며, 평생 "군인 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지원할 때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신청을 넣었으나 상원의원 추천장이 없어 대기에 걸리자 ROTC 과정이 있는 여러 대학에 지원했고, 그 중 프린스턴 칼리지(Princeton College)에 입학 허가가 나왔으나 버지니아 사관학교(VMI)로 진학했다. 그러던 ..

[1950. 10]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노획한 제 27 영연방 여단

1950년 10월 경, 현재의 북한 지역 어딘가에서 영국 육군 제 27보병여단 병사들이 이오시프 스탈린(上)과 김일성(下)의 사진을 노획한 뒤 찍은 기념 사진. 정확한 장소는 특정되지 않는다. : 영국 제 27보병여단은 현재는 해편된 부대이며, 당시 예하에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군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제 27 영연방 여단(27th British Commonwealth Brigade)였다. 27여단은 1914년에 제 9 스코틀랜드 사단 예하부대로 첫 창설했으며, 1차세계대전 발발 후 편성된 자원여단 중 하나였다.특히 이 부대는 '킷체너(Kitchener) 공의 군대'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유럽 서부전선에서 싸우기 위해 호레이쇼 허버트 킷체너 백..

[1978. 6. 1] 대통령에 맞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 미국의 영웅

1944년 8월 11일, 적지 종심에 연합군 특수작전 요원을 침투시키는 "제드버러(Jedburgh)" 작전을 위해 낙하산 강하작전을 준비하던 중 촬영된 존 K. 싱글러브(John Kirk Singlaub, 1921~2022) 중위의 모습. 가슴에는 공정강하용으로 제작된 .3 구경 M1-A1 개머리판 접이식 카빈을 매고 있다. 그는 작전 투입에 앞서 적에게 잡힐 경우를 대비해 청산가리가 든 캡슐이 지급되자 이를 받지 않고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전 적에게 잡힐 계획이 없거든요." 싱글러브는 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참전했으며, 두 개의 우수근무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 은성훈장(Silver Star), 퍼플하트(Pur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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