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625전쟁 32

[1953. 1. 22] "샌드백 성(城)"에서 고지를 사수 중인 프랜시스 코너스 상사

1953년 1월 22일, 북한 지역의 1052 고지, 통칭 "샌드백 성(Sandbag Castle)"에서 촬영된 프랜시스 코너스(Francis Conners) 미 육군 상사의 모습. 당시 그의 소속대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해당 일자에 1052 고지를 점령했던 부대가 미 제 45보병사단 180보병연대 였으므로 해당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샌드백 성은 38선 바로 북방의 사태리 계곡에 있으며, 악명높은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 인근이다.

[1950. 10]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노획한 제 27 영연방 여단

1950년 10월 경, 현재의 북한 지역 어딘가에서 영국 육군 제 27보병여단 병사들이 이오시프 스탈린(上)과 김일성(下)의 사진을 노획한 뒤 찍은 기념 사진. 정확한 장소는 특정되지 않는다. : 영국 제 27보병여단은 현재는 해편된 부대이며, 당시 예하에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군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제 27 영연방 여단(27th British Commonwealth Brigade)였다. 27여단은 1914년에 제 9 스코틀랜드 사단 예하부대로 첫 창설했으며, 1차세계대전 발발 후 편성된 자원여단 중 하나였다.특히 이 부대는 '킷체너(Kitchener) 공의 군대'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유럽 서부전선에서 싸우기 위해 호레이쇼 허버트 킷체너 백..

[1978. 6. 1] 대통령에 맞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 미국의 영웅

1944년 8월 11일, 적지 종심에 연합군 특수작전 요원을 침투시키는 "제드버러(Jedburgh)" 작전을 위해 낙하산 강하작전을 준비하던 중 촬영된 존 K. 싱글러브(John Kirk Singlaub, 1921~2022) 중위의 모습. 가슴에는 공정강하용으로 제작된 .3 구경 M1-A1 개머리판 접이식 카빈을 매고 있다. 그는 작전 투입에 앞서 적에게 잡힐 경우를 대비해 청산가리가 든 캡슐이 지급되자 이를 받지 않고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전 적에게 잡힐 계획이 없거든요." 싱글러브는 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참전했으며, 두 개의 우수근무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 은성훈장(Silver Star), 퍼플하트(Purple ..

[1950. 12. 5] 장진호 전투를 버텨낸 미 해병대의 전설, 체스티 풀러 장군

체스티 풀러 장군은 미군에서 역사상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실전 공적 검증이 되어야만 수여 되는 해군 십자 훈장만 다섯 개를 받았고, 우수근무십자훈장까지 하나가 있어 "십자 훈장"만 여섯 개를 보유한 인물이다. 역사상 십자훈장 수가 그보다 많은 인물은 1차세계대전 중 육군 항공대 조종사로 참전해 적기 26기를 격추 한 에디 리켄벡커(Edward Vernon Rickenbacker, 1890~1973) 대위 뿐이다. 버지니아 주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VA) 태생. 부친을 열 살에 여의고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려서 부터 남북전쟁 이야기에 심취해 특히 토머스 '스톤월'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 1824~1863) 장군에게 매료됐다. ..

[1950. 8. 22] 국군 장군이 된 인민군 중좌 - 정봉욱 소장

사진 속 인물인 정봉욱(鄭鳳旭, 1924~2018) 중좌는 유일하게 전쟁중 북한군 좌관급 장교가 국군에 투항한 뒤 국군 장교로 임관한 사례다. 그는 원래 북한 인민군 제 13사단에 소속되어 있던 포병장교였다. 그는 당번병 하나와 함께 하루 전 날인 8월 21일에 미 제 25사단 27연대에 투항했다가 국군 제 1사단에 인계됐다. 황해도 안악군 태생. 일제시대 때 태어나 중국국민혁명군 제 18집단군, 혹은 공산군 예하 "팔로군(八路軍)"에 소속되어 중국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했으며, 평양 군관학교를 거쳐 인민군 포병으로 임관했다. 6.25가 발발했을 당시에는 전연군단인 인민군 1군단 예하 13사단 사단 포병대에 소속되어 참전했다. 북한 인민군 1군단은 개전과 함께 남침을 시작한 후 강원도를 거..

[1936. 8. 24] 맥아더 원수의 '트레이드마크', 필리핀 원수 군모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원수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원수 모(帽). 맥아더는 미 육군 원수(General of the Army, GA)이자 필리핀 육군 원수(Field Marshal) 계급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1930년대에 육군참모총장을 한 차례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던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필리핀 작전 중의 공로로 명예대훈장을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미-서 전쟁 중 명예대훈장을 받은 부친(아더 맥아더[Arthur MacArthur, Jr., 1845~1912] 중장)과 함께 "2대가 명예대훈장을 받은" 단 두 사례 중 하나이다. 그는 미 육군에서 오성계급에 도달한 다섯 명 중 하나이..

[1934]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에서 촬영 중인 여류 사진작가 마거릿 브루크-와이트

1934년, 뉴욕 시에 건립한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 61층에 장식된 독수리 두상 하나를 촬영 중인 LIFE 지 사진기자 마거릿 부르크-와이트(Margaret Bourke-White, 1904~1971)의 모습. :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사. 처음 소련의 '5년 개발 계획'이 시작됐을 때 소련 산업을 취재하면서 이름이 알려졌으며, 이후 종군사진기자로 활약하다가 포트 펙 댐(Fort Peck Dam) 사진을 촬영한 것이 LIFE지 창간 첫 표지 사진이 되었다. 건축물 사진에 주로 관심이 많았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장에서 촬영기자로 활동하는 것이 허가된 첫 여성 사진기자가 되었다. 1941년에는 독일이 독-소 방공협정을 깨고 공세를 시작한 순간 소련을 여행 중이었으므로, 독..

근대사 2022.12.09

[1950. 10] 6.25 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에이스, 세르게이 크라마렌코 대위

소련 공군의 에이스인 세르게이 크라마렌코(Sergey Kramarenko, 1923~2020) 대위의 모습. 사진은 그가 소련 공군 제 324 전투항공사단 예하 176 호위전투항공연대에 소속되어 있던 당시 촬영한 것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부터 참전했으며, 1951년 4월~1952년 1월까지 북한에 파병되어 총 15대의 UN군 항공기를 격추해 에이스가 되었다. : 소련의 '인민영웅' 칭호를 받은 에이스 조종사. 소련이 배출했던 '마지막' 에이스였으며, 2차 세계대전과 6.25 두 전쟁 참전 후 1970년대에는 이라크 공군과 알제리 공군 자문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소련군에서 공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인 칼리노프카(Kalinovka) 태생으로, 부모가 어려서 이혼하는 바람에 어머..

[1950. 10. 22] 북한 용주에 진출한 대양주연합군에게 사살당한 북한 병사

1950년 10월 22일, 북한의 용주 인근에서 UN군 산하 대양주연합군(ANZAC: Australia-New Zealand Army Corps)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 3대대와 교전 중 쓰러진 북한 인민군 병사의 모습. 뒤에 서 있는 M4 셔먼(Sherman) 전차는 미 제 89 기갑대대 소속 전차이다. 용주로 진격한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사과농장을 중심으로 반격해오는 인민군 제 239 보병연대 예하 후위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격전 끝에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격멸했으며, 전투 후 집계에 따르면 총 150명의 인민군 병사를 사살하고 239명을 포로로 잡았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군은 7명의 부상자 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용주를 점령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이 곳에서 미 제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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