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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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2차세계대전사 131

[1945. 9. 24] 장군 출신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 지미 스튜어트

1945년 9월 24일, 미국의 월간지 라이프(LIFE) 커버기사 사진. 기사 서두는 다음과 같다. "정복을 입은 지미 스튜어트(James 'Jimmy' Maitland Stewart, 1908~1997)가 아버지 가게에서 통화하는 사이, 그의 아버지는 가게에 온 손님과 대화하고 있다." 이 사진은 사진기자인 피터 스택폴(Peter Stackpole, 1913~1997)이 스튜어트가 휴가를 냈을 때 고향인 펜실베이니아 주까지 따라가 찍은 사진으로, 헐리우드 영화계의 대스타이자 전쟁영웅인 그가 고향을 가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따라가 촬영했다고 한다. 제임스 메이틀랜드 스튜어트는 펜실베이니아 주 인디애나(Indiana, PA) 주 태생으로, 부친인 알렉산더 스튜어트와 모친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사이에서 장..

[1945. 4. 8] 독일군 포로를 이송 중인 미 제100대대 소속 재미 일본인 병사

1945년 4월 8일, 미 제 100보병대대 소속 샘 요시하나(Sam Yoshihana)가 독일군 포로를 인솔 중인 모습. 그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이며, 이 사진은 이칼리아 리구리아(Liguria)와 발레키아(Ballecchia) 마을 전투 후에 촬영된 것이다. 진주만 공습이 터지면서 일본의 기습을 받은 미국 내에서는 '재미 일본인'들, 통칭 '니세이'들이 미국 내에서 조상의 나라의 편에 서서 '제5열' 노릇을 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시 이 문제를 놓고 FBI의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 국장마저 조사 후 니세이들의 내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를 올렸지만, 하필 진주만에서 격추된 일본군 조종사 니시카이치 시게노리(西開地 重徳)가 니이하우 섬으로..

[1945. 6. 27] 적들조차 인정한 일본의 마지막 명장, 우시지마 미쓰루 중장

2차 세계대전 및 태평양전쟁의 종장 중 하나인 오키나와(沖縄) 전투에서 방자(防者) 측인 일본군을 지휘한 우시지마 미쓰루(牛島 満, 1887~1945) 중장의 모습. 그는 압도적인 열세의 상황에서 지구전으로 대응했으며, 이 때문에 미군은 지연전에 말려들면서 오키나와 제도 점령에 2개월이 걸렸을 뿐 아니라 사상자도 35,000명 이상이 발생했다. 가고시마(鹿児島) 태생인 그는 사쓰마 번(薩摩藩) 무사였던 부친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이 현대화 된 군대를 설치하자 부친 또한 초창기 일본군에서 장교 생활을 했다. 그는 성년이 되어 일본 육군사관학교 20기로 입교했으며, 1908년에 졸업하여 육군대학에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장)나 다나카 시즈이치(田中静壱, 대장) 등과 함께 28기로 입교했다. 중일전..

[1942. 1. 3] 미국 내 최대의 스파이 조직 '두케인 스파이 조직' 검거

1942. 1. 3 1942년 1월 3일, 미 연방수사국(FBI)은 독일군 스파이 조직원 33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일명 두케인(Dusquene) 스파이 조직으로 알려진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제각각 미국에 대한 첩버 활동을 수행해왔다. 그 중 한 명은 항공사에서 근무하며 연합군 함정이 대서양을 건널 때마다 독일에 알렸으며, 다른 한 명은 산업계 및 군과 관련된 기밀을 수집해 서면으로 독일에 보내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윌리엄 세볼드(William G. Sebold, 1899~1970)는 FBI가 이중 간첩으로 활용하던 인물로, 이들 조직에 대한 스파이 활동 증거를 비밀리에 수집하고 있었다. 이 조직은 프레드릭 주베르트 두케인(Frederck Joubert Dusquene)이라는 자가 총책을 맡고 있..

[1937. 1. 28] 제 1차 상하이 사변 발발

상하이 전투는 중국 국민혁명군이 일본을 상대로 치른 22회의 대 회전(會戰) 중 하나로, 사실상 중일전쟁의 초전과도 같은 전투였다. 특히 국민혁명군은 70개 사단 75만 명, 일본은 9개사단 30만 명을 투입한 대 전투였기 때문에 훗날 사가들은 이 전투를 "양쯔강(陽子江)의 스탈린그라드"라 일컫는다. 또한 사실상 2차 세계대전의 핵심 교전국가 간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이 전투가 2차 세계대전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은 이미 1931년에 만주를 침공한 뒤 1932년 상하이를 한 차례 침공했다. 쌍방의 긴장은 1937년 노구교(蘆溝橋) 사건(혹은 서양에서는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으로 증폭됐으며, 일본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중국 대륙 침공을 개시했다. 일명 1차 상하이 전투(혹은 1,..

[1942] 동부전선에서 동료의 군장을 정리 중인 독일군 병사

동부전선에서 동료의 군장을 정리해주고 있는 독일군 병사. 전쟁 말엽까지 독일군은 약 1,250만 명을 징집했으며, 전쟁 전체 기간 중의 사상자는 4백만 명에 달한다. 독일군의 생존률은 각각의 병사들이 투입된 전선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동부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의 전사 및 부상 확률은 서부 전선이나 덴마크, 노르웨이에 있던 병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한 전쟁 말 오스트리아 빈(Wien) 인근이나 슐레지엔, 혹은 독일이 거의 마지막까지 승세를 유지했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최후의 치열한 전투 지역에서는 병사들의 생존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 물론 병종이나 병과 또한 생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U-보트 승조원의 경우는 종전 전까지 전사할 확률이 80%에 달했으며, 개전 초부터 종전 시점까지 살..

[1944. 1. 1] 이오지마로 가기 전 마지막 기념촬영을 한 일본군 중위 가족

2014년에 출간된 댄 킹(Dan King)의 소설 『이오지마(硫黄島)라는 이름의 무덤(A Tomb Called Iwo Jima)』은 일본어에 능통한 미국인이 쓴 소설이지만, 실제 이오지마에서 마지막 항전을 한 일본군의 내용을 담았다. 이 소설은 실화에 바탕한 내용이다. 사진은 1944년 1월 1일, 나라(奈良)현 사쿠라이(桜井)시에서 부모와 함께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한 하토리 겐이치(服部健一, ?~?) 중위와 그의 동생인 하토리 겐지(服部健二, ?~?)의 모습이다. 하토리 겐이치 중위(맨 오른쪽)는 당시 결혼을 하여 슬하에 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육군 예비대 소속이었으나 현역으로 전환되어 오사카(大阪) 지역의 해안포대장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이오지마로 떠나는 제 10 대전차대대 ..

[1942. 1. 1] 노틸러스 함, 솔로몬 제도에서 수녀 14명 구출

1942년 1월 1일, 미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USS Nautilus, SS-168)가 솔로몬 제도로 이동해 특이한 난민들의 탈출작업을 도왔다. 이날 노틸러스는 솔로몬 제도에 도착해 9개월 동안 일본군을 피해 숨어다닌 14명의 수녀를 구출했다. 수녀들은 3일간 노틸러스에 있으면서 선원들의 호의에 감명 받았다. 수녀들은 결국 선내의 복잡한 기기들에 숙달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이동 중에 선원들로부터 크리바지(cribbage: 카드게임의 일종) 하는 법을 배웠다. 이 수녀들은 오렌지의 성 요셉 수녀원 소속으로, 열 네 명 모두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다시 솔로몬 제도로 돌아갔다. #2차세계대전 #전쟁사 #인물사 #천주교 #잠수함

[1941. 12. 7]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미 구축함의 첫 한 발

많은 이들의 상상과 달리, 사실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첫 한 발"의 총격은 일본군이 아닌 미군 구축함에서 발사됐다. 12월 7일 새벽 5시 45분, 미 해군 소속 화물선인 안타레스 함(USS Antares, AG-10)진주만 외곽에 설정된 방어 해상 구역(Defensive Sea Area) 바깥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포착했다. 이에 구축함 워드 함(USS Ward, DD-139)이 해당 물체를 향해 오전 6:37분경 두 발의 함포를 발사했다. 워드 함의 두 번째 함포 사격이 해당 물체에 명중했으며, 뭔지 알 수 없던 '그것'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당시 명중 당한 잠수함은 선발대로 진주만에 온 일본군 소형 잠수정으로, 이 잠수정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일본군 수병은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 발생한..

[1941. 12. 27] 연합군, 노르웨이 '아쳐리(화살)' 작전 개시

1941년 12월 27일, 노르웨이 복쇠위(Vågsøy)와 몰뢰이(Måløy)에서 '아쳐리(Archery)' 작전이 실시됐다. 연합군은 이 날 노르웨이령 섬인 복쇠위와 몰뢰이를 기습하면서 연합작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작전은 처음부터 항공 지원을 기습 계획 초기 단계부터 포함 시켰다. 이는 같은 해 초 로포텐(Lofoten) 2차 공습작전의 교훈을 반영한 것으로, 당시 연합군은 항공 지원을 계획에서 빼놓는 바람에 기습에 참가한 함정들이 추축국 항공기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두 섬에는 독일군이 주둔하면서 해안 방어를 강화한 상태였으므로 연합군은 이를 극복해야 했다.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독일군 181 사단에 소속된 병사 150명과 전차 한 대, 100명의 건설 노무자들이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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