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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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진 267

[항모] 2차대전부터 쿠바 미사일위기까지 함께한 에섹스급 항공모함

2차 세계대전 중 미 해군이 운용한 에섹스(Essex)급 항모 선두함인 에섹스 함(USS Essex, CV/CVA/CVS-9)의 모습. 에섹스급은 총 24척이 건조됐으며, 사진 속의 에섹스 함은 이 이름을 승계한 4번째 함정이었다. 1942년 12월에 취역한 에섹스 함은 태평양 전선에 투입됐으며, 전쟁 기간 중 다수의 주요 해전에 참전해 13개의 대통령 부대 표창과 전투참전기장 등을 수상했다. 종전 후 곧 퇴역한 에섹스 함은 다시 현대화 작업을 거친 후 1950년에 재취역했으며, 이번에는 공격항모(CVA)가 됐다가 다시 대잠전 항모(CVS)로 개조됐다. 두 번째 운용기간 중 에섹스 함은 6.25 전쟁에 참전해 4개의 전투 참전기장 및 해군 부대표창을 받았고, 이후에는 대서양으로 이동해 1962년 쿠바 미..

무기체계 2023.04.18

[1945] 화장실 배관 문제로 격침당한 독일 잠수함

1945년, 독일의 U-1206함이 화장실 배관 문제로 소실됐다. 훗날 증언에 따르면, 선내 엔지니어가 화장실 물을 내리는 배관 밸브를 수리하면서 복잡한 잠수함 선내 배관과 잘못 연결했고, 이 때문에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자 바닷물이 역류해 들어와 선내는 염수와 염소 가스가 가득찼다. 수리와 환기를 위해 할수없이 급 부상한 U-1206함은 물 위로 올라오자마자 수상에서 정찰 중이던 영국군 함정에게 포착되어 격침됐고, 선원들은 전원 배에서 퇴거해 탈출했다.

[1963. 4. 10] 미 해군 원잠 스레셔 함, 잠항시험 중 사고로 침몰

1963년 4월 10일, 대서양 심해 잠수 시험을 하던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 스레셔(USS Thresher, SSN-593)함이 129명을 승선 시킨 채 사고로 침몰했다. 아래 그림은 이 사고 소식이 유가족에게 알려지자 함장 존 하비(John W. Harvey) 중령의 어린 아들이 대서양 해저에 앉아 있는 스레셔 함의 그림을 크레용으로 그린 것이다. : 스레셔는 1963년 4월 9일 메인(Maine) 주 키터리(Kittery) 항에서 오전 08:00에 출항했으며, 11:00시쯤 잠수함 구난구조함인 스카이락(USS Skylark, ASR-20)과 조우했다. 잠시 후 시험 잠수에 들어간 스레셔는 매사추세츠 주의 케이프 코드(Cape Cod) 동쪽 350km 지점에서 잠항에 들어갔으며, 1차로 얕은 바다까지..

현대사 2023.04.14

[1945. 2. 14] 프랑스 소녀에게 감사 키스를 받는 미군 장병

미 제 9 기갑사단의 앨빈 할리(Alvin Harley) 상병이 1945년 2월 14일, 성 발렌타인 데이 날 연합군에게 해방된 프랑스 아방꾸르(Abancourt)의 한 프랑스 소녀로부터 키스를 받는 모습. 이 사진은 중 하나로 선정됐던 작품이다. ========================= 발렌타인 데이는 기원 후 3세기경 이탈리아 테르니(Terni)의 발렌타인(Valentine) 주교가 결혼이 금지된 이들을 모아놓고 결혼식을 치러주면서 시작됐다. 보통 이들 커플은 남자가 노예 같은 신분이라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결혼을 못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발렌타인 주교는 자신의 화원에서 이들 커플에게 꽃을 증정했는데, 이 때문에 발렌타인 데이 날 "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문제는 주교의 행동이 당시 로..

[1951. 9. 6] UN군, '피의 능선' 전투 승리

6.25 전쟁 중인 1951년 9월 6일, 미 제 2보병사단 소속 병사 두 명이 폐허가 된 통칭 "피의 능선(Bloody Ridge)"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이 능선은 일명 "펀치볼(Punchbowl)"이라 불린 해안 분지 서쪽의 방산면 현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벌어진 전투로, 현재의 강원도 양구군에서 벌어진 싸움이다. 1951년 중순,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UN군은 다시 출발지인 군사분계선 인근까지 밀려 내려왔다. 이후 전열을 정비한 UN군이 역습을 하면서 일부 전선을 회복하긴 했으나, 전체적인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이에 UN 진영과 공산진영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에 들어갔다. 그..

[1945. 4. 12] 루즈벨트 대통령, 휴가 중 조지아 주에서 서거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이 급성 뇌출혈로 서거했다. 향년 63세. 사망 당시 그는 조지아 주 웜 스프링스(Warm Springs)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루즈벨트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미국사에서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는 4선 출마를 앞두고 3선까지 부통령이던 급진주의 성향의 헨리 월러스(Henry A. Wallace, 1888~1965)를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과 교체했으며, 1944년 4선 승리 후 임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루즈벨트 서거 후 바로 다음 날 트루먼이 루즈벨트의 4선 임기를 승계하..

[1944] 장병 사기 진작을 위해 소해함을 개조해 양조함을 만든 왕립해군

1944년, 왕립해군의 보조 기뢰부설함 '메네스티우스(HMS Menestheus)'함은 태평양에서 근무 중인 영국군 장병들을 위해 선상 양조함(??)으로 개조했다. 메네스티우스는 매주 '데이비 존스(Davy Jones: 바다에 존재하는 악령을 지칭함)'라는 이름의 럼주를 250통씩 생산했다. 메네스티우스의 양조작업은 두 명의 왕립해군 장교가 책임을 맡았으며, 이들은 전후 각각 기네스(Guinness)와 트루먼(Truman) 양조사의 책임 양조장이 되었다. 이후 미 해군은 왕립해군 측에 메네스티우스를 1백만 파운드로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제의를 했으나, 왕립해군은 이를 거절했다. 왕립해군은 종전 후 메네스티우스 함을 폐선 처리했다.

[1865. 4. 9] 리 장군, 애포매톡스에서 그랜트에게 항복...美 남북전쟁 종료

1865년 4월 9일, 미국의 애포매톡스(Appomattox) 법원 건물에서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CSA)군 총사령관인 로버트 리(Robert E. Lee, 1807~1870) 대장이 미 연방군(the Union: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즈 그랜트(Ulysses S. Grant, 1822~1885) 장군에게 항복했다. 게티스버그(Gettysburg) 전투 이래로 남부연합군은 계속 추격해오는 북군을 피해 수세에 몰려 있었다. 남부연합은 이후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 장군이 남부 주요지역과 애틀란타로 향하는 루트를 모두 초토화 시킨 "바다로의 행군(March to the Sea)"이 실시되면서 전력이 더 약..

[1945. 4. 6] 집중적인 가미가제 공격에도 살아남은 '죽지않는 배' 래피 함

1945년 4월 6일, 일본 연합함대는 오키나와 전투 지원을 위해 이동 중이던 미 해군 함대에 대해 대규모 가미가제 공격을 실시했다. 400대가 넘는 항공기를 투입한 일본은 이미 전력의 열세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에 최후의 돌격전을 감행했지만, 대부분의 가미가제 항공기는 미 해군의 대공포나 F-6F 헬 캣(Hell Cat) 전투기에 격추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항공기가 방공망을 돌파해 자살돌격에 성공했으며, 총 30척의 함정과 3척의 지원함에 타격을 입혔다. 미 해군 구축함 래피(USS Laffey, DD-724)도 그 중 하나로, 이날 래피는 4차례의 폭탄을 맞았을 뿐 아니라 6대의 가미가제 전투기에게 피격당해 선미가 화염에 휩싸이며 32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71명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가라앉지 않..

[1941. 10] 말레이시아에서 훈련 중인 제 9 구르카 라이플 연대원들

1941년 10월,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훈련 중인 영국군의 제 9 구르카(Gurkha) 라이플 연대 2대대원들의 모습. 인도의 삼 마넥샤우(Manekshaw) 참모총장(대장)은 한때 이 구르카 족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놈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던가 구르카 족이던가 둘 중 하나다." 산악민족인 구르카는 네팔의 전통부족으로, 처음에는 구르카 인들끼리 부족생활을 했으나 네팔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네팔의 일부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구르카"의 이름은 중세의 힌두 전사이자 성인인 구루 고라크나스(Guru Gorakhnath)에서 기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은 식민지 경쟁이 한창이던 19세기에 네팔로 침공했다가 구르카 족에게 처절한 참패를 당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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