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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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205

[1953. 6] 패퇴하는 한국군을 수습한 명장, '오성장군' 김홍일 장군

6.25 전쟁 초반, 패퇴하던 국군을 다시 수습해낸 '오성장군' 김홍일(金弘壹, 1898~1980) 장군의 모습. 평안북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교육 받았으며, 잠시 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으나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게되자 중화민국으로 망명한 후 중국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했다. 그는 국민혁명군에서 왕웅(王雄)이라는 이름을 쓰며 활약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이봉창(李奉昌, 1900~1932)과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에게 폭탄을 만들어 준 이가 바로 김홍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625 때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 되어 적으로 상대한 최용건(崔庸健, 1900~1976)이 윈난(雲南) 군사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추천장을 써준 적이 있는데, 이는 최용건..

[1944. 10]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핵무기에 격침된 일본 해군 전함

1944년 10월, 보르네오 섬 브루나이 인근에서 촬영된 일본 해군 전함 나가토(長門), 야마토(大和), 무사시(武蔵)의 모습. 전국시대 중 쵸슈(長州)의 나가토 국(長門国: 현재의 야마구치 현)에서 이름을 따온 나가토 함은 일본 해군이 건조한 슈퍼 드레드노트 급 전함이었다. 이 함정은 1934년~1936년 기간 중 현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장갑을 보강하고 기기류를 교체했으며, 선루(船樓) 역시 개조를 가해 파고다 형으로 바꾸었다. 나가토는 1937년 2차 중일전쟁에 잠시 참전했으며, 1942년 12월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 본토에서 지휘 중이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1884~1943) 제독의 기함이기도 했다. 1941년 12월 2일, 야마모토 제독은 하시라지마(柱島)에 정박 중이던 나가토 함교..

[1940. 1. 1] 프랑스에서 집결한 망국(亡國) 폴란드의 병사들

1940년 1월 1일, 통칭 '시코르스키(Sikorski)의 군대'로 불린 프랑스 망명 폴란드 육군 병사들의 모습. 1939년 9월,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는 독일을 힘겹게 막던 중 뒤에서부터 침공한 소련에 의해 양쪽에서 무너졌으며, 폴란드 수뇌부는 폴란드 함락 전 전군에게 각자도생으로 폴란드를 탈출해 프랑스에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85,000명의 폴란드 병사들이 폴란드를 탈출해 프랑스로 모여들었으며, 망명 폴란드 군은 망명자와 탈출 병사들을 재편해 총 4개 사단과 2개 독립여단, 1개 항공지원부대를 구성했다. 독일이 프랑스로 침공하자 이들 폴란드 사단도 전투에 참전했지만, 독일군에게 영불연합군이 파죽지세로 대패하자 총 85,000명의 병사 중 약 2만 명 가량이 영불 연합군 병사들과 함..

[1944.10.26] 일본해군 중순양함 모가미 함의 최후

일본 해군 중순양함 모가미(最上) 함의 6x20cm/50 3년형 쌍열식 함상포 포탑 3개가 전방을 향하고 있는 모습. 모가미 함은 일본 해군에서 건조한 4척의 모가미급 중순양함 중 선도함이다. 모가미의 함명은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 위치한 모가미 강에서 이름을 따왔다. 모가미 함은 1931년 10월 27일에 처음 용골(龍骨) 거치식을 갖고 건조에 들어갔으며, 1934년 3월 14일에 진수식을 거쳐 1935년 7월 28일 구레(吳) 해군 조병창에서 취역했다. 1944년 10월 25일 오전 03:00~03:30 사이, 모가미를 비롯한 일본군 함대가 수리가오 만에서 미 해군 PT 보트와 구축함의 공격을 받았다. 전함 후소(扶桑) 함과 야마시로(山城) 함이 곧장 어뢰에 피탄됐다. 구축함 야마구모(山雲) 함은..

[1945. 3] 독일 저격수에게 쓰러진 미군 병사의 모습

1945년 3월, 독일 코블렌츠(Coblenz)에서 독일 저격수에 당해 쓰러진 신원 미상의 미군 병사. 전장 위에서 보병에게 가장 치명적인 전력 중 하나는 저격수의 존재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하루 종일 은폐 · 엄폐를 하고, 표적을 소리 없이 노린 후 방아쇠를 당기며, 명중 뒤에는 유령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저격수는 모든 전장에서 활약했으며, 그 중 특히 러시아 전선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저격수를 가장 잘 운용한 군은 러시아 군으로, 공식 기록 상 러시아 저격수에 부상을 입은 독일군은 11,976명에 달한다. 한편 가장 대기록을 남긴 저격수는 핀란드 '겨울전쟁' 중 활약한 시모 헤위하(Simo Häyhä, 1905~2002)로, 이 기간 중 542회의 저격에 성공해 역사..

[1971] 디스코텍이 되어 마지막을 장식한 2차대전의 잠수함

이탈리아의 잠수함 나우틸로(Nautilo) 함은 1943년 폐선 처리됐으나, 독일이 이를 인수하여 재조립했다. 이후 이 배는 UIT19라는 명칭으로 다시 취역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국군의 폭격에 당해 파손됐다. 독일이 이 배를 버리자 이번에는 유고슬라비아 해군이 인수해 '사바(Sava)'라는 이름으로 다시 취역시켰다. 하지만 1971년에 함정이 지나치게 노후하자 함정목록에서 삭제한 후 퇴역시킨 뒤 폐기했다. 결국 이 나우틸로이자 UIT19이자 사바인 이 함정의 선체는 크로아티아에서 한 민간업체에 인수됐으며, '옐로우 서브마린'이라는 이름의 디스코 텍이 되어 겨우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다. #잠수함 #무기체계 #현대사

[1946. 6] 수감자들을 고문하고 학대한 여성 SS 대원

여성 SS 대원인 아넬리제 콜만(Anneliese Kohlmann, 1921~1977)의 체포 직후 모습. '악마'로 불리던 그녀는 전쟁 중 격리수용소에서 간수로 지내면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콜만이 간수로 지낸 기간은 길지 않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참혹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유대인 여성들을 고문하면서 피를 흘릴 때까지 채찍으로 후려치고, 수용소의 수감된 여성들에게 성고문을 자행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러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연합군이 진주해오자 수감자였던 척 하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콜만의 최초 임무는 노이엥가메(Neuengamme) 수용소 산하에 설치됐던 노이그라벤(Neugraben) 수용소의 간수 역할이었다. 그녀는 수감된 여성 수용자들이 대전차 호를 파는 작업을 감독했다. ..

[1954] 2차세계대전 전쟁포로의 생존율

1954년, 포로생활 후 귀국 중인 귀환 포로에게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한 노파의 모습. : 역사가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1964~)은 2차 세계대전 후 포로생활 후 귀환한 이들을 대상으로 생존율을 계산해 발표한 적이 있었다. 통계는 아래와 같다. - 일본에 잡혔던 중국군(국민혁명군/공산군) 포로: 99% 사망 - 독일에 잡혔던 소련군 포로: 57%가 사망 - 유고에 잡혔던 독일군 포로: 41.2%가 사망 - 소련에 잡혔던 독일군 포로: 35.8%가 사망 - 일본에 잡혔던 미군 포로: 33%가 사망 - 동유럽 국가에 잡혔던 독일군 포로: 32.9%가 사망 - 일본에 잡혔던 영국군 포로: 24.8%가 사망 - 독일에 잡혔던 프랑스 포로: 4.1%가 사망 - 독일에..

[1945. 7. 14] 이형 잠수함 I-53, 미 해군 구축호위함을 격침

이(伊)형 잠수함인 I-53 함은 일본 해군이 1944년 2월에 취역시킨 함정으로, C형 순양잠수함 2번 함이다. 최초 I-53은 가이텐(回天) 유인어뢰를 운용하기 위한 모함으로 건조했다. 1945년 7월 14일, I-53함은 I-47, I-58, I-363, I-366, I-367함과 함께 가이텐을 운용하는 '다몬대(多聞隊)'에 배속됐다. I-53은 여섯 발의 가이텐과 가이텐 조종수를 그날 아침에 승선시켰으며, 오후에는 포모사(현재의 타이완) 동남쪽 300해리(560km)에 설정된 작전책임지역으로 이동했다. I-53은 1945년 7월 22일자로 작전지역에 도착했다. I-53은 미 해군 물자 수송함인 아드리아 함(USS Adria, AF-30)과 여섯 척의 전차상륙함 및 오키나와에서 철수시킨 미 제 96..

[1944] 독일 협력 혐의로 삭발당한 프랑스 여성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협력했거나 독일군인의 애인이 되었던 프랑스 여성들이 단죄의 의미로 공개 삭발당한 후의 모습. 주로 1944년 연합군의 파리진주 이후부터 일명 '수평적 협력자(Collaboration Horizontale)' 색출이 시작되며 공개적으로 삭발을 당했다. 이 삭발은 중세 때부터 이루어진 일종의 '모욕'으로, 주로 서고트족이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단죄할 때 가했던 처벌이었다. 사실 이 '삭발' 행위를 당한 것은 비단 독일에 협력한 프랑스 여성 뿐이 아니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했을 당시, 1차대전 후인 1923년 이후부터 프랑스령이 됐던 라인란트 내에서 프랑스 군인들과 관계를 맺었던 독일 여성들은 독일인들에 의해 삭발을 당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때에도 나치 정부는 비 아리아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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