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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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205

[1952. 2.] 2차대전 중 프랑스 외인부대를 이끈 백전의 노장, 지평리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다

자유프랑스에서 활약하며 프랑스 외인부대를 이끌었으며, 6.25 전쟁에서도 프랑스 대대를 이끌고 참전했던 랄프 몽끌라르(Ralph Monclar), 본명 라울 마그랭-베르느레(Raoul Charles Magrin-Vernerey, 1892~1964) 장군. 첫 사진은 미 10군단장이자 맥아더 원수의 참모장이던 알몬드 소장과 대화 중인 모습이며, 두 번째 사진은 프랑스 대대(미 제 2사단에 예속되어 있었음)원에게 훈장을 수여 중인 모습이다. : 가명을 쓴 이유는 나치 독일을 피해 자유프랑스에 합류했을 당시, 본명으로 활동하면 본국에 두고 간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 때문이다. 그는 불과 15세의 나이로 프랑스 외인부대(Légion étrangère, 레종 에뜨랑제)에 지원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1943. 2] 나치 독일 SS의 학살마, 요아힘 파이퍼

나치 독일 SS(무장친위대) 대령이던 요아힘 파이퍼(Joachim Peiper)의 모습. 보통 그는 발지대전투에 참전하여 티거-II 전차가 포함된 제1 SS 판처사단을 지휘하던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이는 그의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1943년 2월, 그의 지휘 하의 SS 무장친위대 대대는 교회 안에서 872명의 소련인 남성, 여성, 아이를 학살한 후 240명을 가둬놓고 산채로 태워 죽였다. 그는 전쟁 내내 학살행위에 열을 올렸으며, "공포의 물결이 우리를 따라올수록 우리의 명성도 올라가며, 이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다. 징기스칸이라도 우리를 기쁘게 부하로 맞아주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이탈리아로 이동한 후인 1943년 9월에도 보베스(Boves)에서 23명의 이탈리아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수백..

[1945] 화장실 배관 문제로 격침당한 독일 잠수함

1945년, 독일의 U-1206함이 화장실 배관 문제로 소실됐다. 훗날 증언에 따르면, 선내 엔지니어가 화장실 물을 내리는 배관 밸브를 수리하면서 복잡한 잠수함 선내 배관과 잘못 연결했고, 이 때문에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자 바닷물이 역류해 들어와 선내는 염수와 염소 가스가 가득찼다. 수리와 환기를 위해 할수없이 급 부상한 U-1206함은 물 위로 올라오자마자 수상에서 정찰 중이던 영국군 함정에게 포착되어 격침됐고, 선원들은 전원 배에서 퇴거해 탈출했다.

[1943. 4. 18]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부겐빌 순시 중 요격당해 전사

1943년 4월 18일, 미 해군 정보국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면서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1884~1943) 제독의 야전 순시 일정을 확보했다. 4일 뒤, 미 해군의 P-38 편대는 960km 이상 날아가 야마모토 제독이 탑승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항공기를 격추했다. 이 사진은 야마모토 제독이 순시에 나서기 불과 수 시간 전 라바울에서 마지막으로 촬영한 것이다. : 당시 야마모토 제독은 과달카날 패전 후 사기가 떨어진 일본군 병사들을 순시하기 위해 남태평양 일대를 직접 둘러보기로 결정하면서 라바울까지 내려와 있었다. 미 해군 정보부는 야마모토의 일정을 해독하는데 성공하면서 그를 격추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고, 이에 "매직(Magic)"이라는 코드네임을 부여했다. 야마모토의..

[1945. 2. 14] 프랑스 소녀에게 감사 키스를 받는 미군 장병

미 제 9 기갑사단의 앨빈 할리(Alvin Harley) 상병이 1945년 2월 14일, 성 발렌타인 데이 날 연합군에게 해방된 프랑스 아방꾸르(Abancourt)의 한 프랑스 소녀로부터 키스를 받는 모습. 이 사진은 중 하나로 선정됐던 작품이다. ========================= 발렌타인 데이는 기원 후 3세기경 이탈리아 테르니(Terni)의 발렌타인(Valentine) 주교가 결혼이 금지된 이들을 모아놓고 결혼식을 치러주면서 시작됐다. 보통 이들 커플은 남자가 노예 같은 신분이라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결혼을 못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발렌타인 주교는 자신의 화원에서 이들 커플에게 꽃을 증정했는데, 이 때문에 발렌타인 데이 날 "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문제는 주교의 행동이 당시 로..

[1951. 9. 6] UN군, '피의 능선' 전투 승리

6.25 전쟁 중인 1951년 9월 6일, 미 제 2보병사단 소속 병사 두 명이 폐허가 된 통칭 "피의 능선(Bloody Ridge)"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이 능선은 일명 "펀치볼(Punchbowl)"이라 불린 해안 분지 서쪽의 방산면 현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벌어진 전투로, 현재의 강원도 양구군에서 벌어진 싸움이다. 1951년 중순,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UN군은 다시 출발지인 군사분계선 인근까지 밀려 내려왔다. 이후 전열을 정비한 UN군이 역습을 하면서 일부 전선을 회복하긴 했으나, 전체적인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이에 UN 진영과 공산진영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에 들어갔다. 그..

[1945. 4. 12] 루즈벨트 대통령, 휴가 중 조지아 주에서 서거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이 급성 뇌출혈로 서거했다. 향년 63세. 사망 당시 그는 조지아 주 웜 스프링스(Warm Springs)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루즈벨트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미국사에서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는 4선 출마를 앞두고 3선까지 부통령이던 급진주의 성향의 헨리 월러스(Henry A. Wallace, 1888~1965)를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과 교체했으며, 1944년 4선 승리 후 임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루즈벨트 서거 후 바로 다음 날 트루먼이 루즈벨트의 4선 임기를 승계하..

[1918. 4. 11] 독일, 한 발의 공격으로 라이베리아 해군 전체를 격멸하다(?)

1918년 4월 10일, 독일제국 해군이 단 한 발의 어뢰로 라이베리아 해군 전체(!)를 수장(水葬)시켰다. 라이베리아는 연합군에 가담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이에 따라 독일은 유보트(U-Boat) 한 척을 수도 먼로비아(Monrovia)에 전개했다. 바다에 은신하고 있던 유보트는 곧 항구에서 출항하는 라이베리아 유일의 포함(砲艦)인 대니얼 E. 하워드 대통령(RLS President Daniel E. Howard) 함을 향해 갑판에 설치된 함포를 한 발 쐈고, 라이베리아 유일의 군함은 이 한 발에 치명타를 맞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 대니얼 E. 하워드 함은 라이베리아 11대 대통령으로 당시 현직이었던 다니엘 에드워드 하워드(Daniel Edward Howard, 1861~1935/재직기간 19..

[1916. 12] 수통 속의 럼주를 마시고 있는 영국군 병사들

"미안, 친구. 내가 다 마셨어." (원본에 있던 캡션이라고 함) 두 영국군 병사가 제식장비로 지급된 수통인 "초크 핏(Chalk Pit/'백악광')"에 담긴 럼주를 마시는 모습. 1916년 12월 솜므(Somme)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1차세계대전 중 럼주는 모든 영국군 병사들에게 일일 단위로 지급됐지만 지급량은 매우 적었다. 럼주는 보통 부대 단위로 지급됐기 때문에 엄격하게 통제됐으며, 실제 하급 병사에게까지 돌아가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후, 스코틀랜드 제 4 "블랙워치(Black Watch/통칭 "로열 하이랜더")" 연대의 군의관들은 전후 청문회에서 통칭 쉘 쇼크(Shell Shock: 전쟁신경증으로, 날아오는 포탄 소리 때문에 걸리는 노이로제)"에 대해 증언하면서 "일일 지급되..

[1944] 장병 사기 진작을 위해 소해함을 개조해 양조함을 만든 왕립해군

1944년, 왕립해군의 보조 기뢰부설함 '메네스티우스(HMS Menestheus)'함은 태평양에서 근무 중인 영국군 장병들을 위해 선상 양조함(??)으로 개조했다. 메네스티우스는 매주 '데이비 존스(Davy Jones: 바다에 존재하는 악령을 지칭함)'라는 이름의 럼주를 250통씩 생산했다. 메네스티우스의 양조작업은 두 명의 왕립해군 장교가 책임을 맡았으며, 이들은 전후 각각 기네스(Guinness)와 트루먼(Truman) 양조사의 책임 양조장이 되었다. 이후 미 해군은 왕립해군 측에 메네스티우스를 1백만 파운드로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제의를 했으나, 왕립해군은 이를 거절했다. 왕립해군은 종전 후 메네스티우스 함을 폐선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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