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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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205

[1944. 12. 6] 일본군의 마지막 공정강습작전 - 레이테 섬 전투

일본군의 "마지막" 공중강습작전 모습. 1944년 10월, 일본의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1885~1946) 장군은 일본의 필리핀 방어에 들어가면서 핵심 방어목표로 레이테 섬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군의 공격에 대한 몇 차례 역습이 실패하자 일본 측은 연합군이 보유하고 있던 활주로를 점령하기 위해 처절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상황이 되자 일본 측은 공정부대를 투입해 양동작전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게 되었다. 일본군의 마지막 공중강습 작전은 1944년 12월 6일에 실시됐다. 이들은 항공기로 침투하여 공중에서 강하한 후, 레이테 섬의 활주로 동편에 낙하하여 활주로를 점령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강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병력이 넓은 범위에 흩뿌려져 버렸고, 일부는 낙하산이 제 때..

[1965] 베트남 공화국군의 암 호랑이, 호 티커 상사

"메콩 삼각주의 암 호랑이"라 불리던 호 티커(Ho Thi Que, ?~1965) 상사의 모습. 그녀는 베트남 전쟁 중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제 44 레인저 대대, 통칭 "흑표(黑豹)" 부대 소속으로 싸웠다. 44 레인저 부대는 전쟁기간 중 베트남 전국해방전선(NLF), 통칭 "베트콩(Viet Cong)"을 상대로 싸웠으며, 그녀는 소속부대에서 의무병 겸 정보병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제 44 레인저 대대장인 응우엔 반 단(Nguyen Van Dan) 소령과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여섯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전쟁기간 내내 접적지역에서 의무병으로 활동했으며, 부상자를 발견하면 스스로의 안전을 신경쓰지 않고 달려가 치료했다. 호 티커 상사는 남베트남 정부로부터 용맹 십자훈장을 세 차례나 수훈받아 ..

[1941. 6] 독소전쟁 개전 후 소련군 포로를 처형한 독일군의 모습

1941년 여름, 독일이 독-소 방공조약(정식 명칭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Molotov-Ribentropp] 협정)을 깨고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을 개시한 후의 사진. 독일 병사들이 포로로 잡혔던 소련 병사를 처형한 후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독일이 소련 침공 당시 자행한 전쟁범죄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경향이 강한데, 워낙 전사자 수가 기하급수적인데다 초소련 역시 인력을 '갈아넣어' 독일의 진격을 막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인명을 존중할 겨를이 없던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2차세계대전 전후에도 독일군의 잔인한 소련군 포로 취급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는 또한 독일이 포로의 '우선순위'를 다룰 때 소련군 포로를 '가장 바닥 계층'으로 분류한 ..

미 해군 유일의 '지상(地上)함', TDE-1 리크루트 함

미 해군 유일의 '지상함(Landship)'인 '리크루트 함(USS Recruit, TDE-1)이 뉴욕시 맨하탄에 설치된 모습. 이 '함정'은 미 해군이 드레드노트(Dreadnought)'급 모습대로 만든 목재 배였다. 미 해군은 이 배를 지상에 설치했으며,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훈련용 뿐 아니라 모병 홍보용도로 사용했다. 미 해군은 리크루트 함을 일반 전함과 마찬가지로 취역시킨 후 함정목록에 등록했으며, 훈련생들을 정상 함정처럼 배치했다. 리크루트는 1917년부터 1919년 말까지 뉴욕 시내 유니언 광장(Union Square)에 설치되어 있었다. 1920년,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동원 해제와 감군이 진행되어 함정에 배치할 여유인력이 줄자 미 해군은 리크루트 함을 퇴역처리한 후 함정 자체도 폐기..

[1950. 10. 22] 북한 용주에 진출한 대양주연합군에게 사살당한 북한 병사

1950년 10월 22일, 북한의 용주 인근에서 UN군 산하 대양주연합군(ANZAC: Australia-New Zealand Army Corps)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 3대대와 교전 중 쓰러진 북한 인민군 병사의 모습. 뒤에 서 있는 M4 셔먼(Sherman) 전차는 미 제 89 기갑대대 소속 전차이다. 용주로 진격한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사과농장을 중심으로 반격해오는 인민군 제 239 보병연대 예하 후위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격전 끝에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격멸했으며, 전투 후 집계에 따르면 총 150명의 인민군 병사를 사살하고 239명을 포로로 잡았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군은 7명의 부상자 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용주를 점령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이 곳에서 미 제 187..

[1945. 5] 헤르만 괴링의 침대에서 잠든 미 제3군 병사

1945년,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1885~1945) 중장이 지휘하는 미 제 3군 소속 병사가 독일 노이하우스(Neuhaus)의 벨덴슈타인(Veldenstein) 성 내 헤르만 괴링(Hermann W. Göring, 1893~1946)의 침대에서 자는 척 포즈를 취한 사진. 침대 머리 맡에 있는 그림은 1618년 네덜란드의 화가 페트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와 얀 빌덴스(Jan Wildens, 1586~1653)의 작품인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의 복제화로, 이 그림은 전후 뮌헨으로 옮겨져 현재 알테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벨덴슈타인 성..

[1943. 11. 5] 라바울 전투를 위해 출격 중인 미 해군 조종사들

항모 비행갑판에서 각자 자신의 항공기로 이동 중인 미 해군 조종사들의 모습. 앞쪽부터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헨리 디어링(Henry H. Dearing) 중위, 텍사스 주 휴스턴 출신의 찰스 밀러(Charles W. Miller) 소위, 캘리포니아 주 산 마테오 출신의 버스 알더(Bus Alder) 중위이며, 이들은 새러토가(USS Saratoga, CV-3) 항모에 수납된 그루먼(Grumman) F6F-3 "헬캣(Hellcat)"기로 걸어가고 있다. 이 사진은 1943년 11월 5일에 촬영된 것으로, 이 세 조종사는 일본 해군 함대와 교전 중이던 어벤저(Avenger) 뇌격기와 돈트리스(Dauntless) 급강하폭격기를 엄호하기 위해 출격하고 있었다. 1943년 11월 5일, 연합군 태평양사령부..

[2022. 11. 29] 6·25 전쟁의 '실존' 캡틴 아메리카, 미야무라 히로시 상병 별세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24일, 미 제 3보병사단 7보병연대 H중대에 배속되어 있던 히로시 미야무라(Hiroshi Hershey Miyamura, 1925~2022) 상병은 대전리 근처의 방어진지에 배치됐다. 이날 중공군의 미친듯한 공세가 시작되자 미야무라 상병은 자신의 진지에서 뛰쳐나와 대검을 착검한 후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여 열 명을 쓰러뜨렸다. 다시 진지로 돌아온 그는 부상당한 동료들을 돕다가 이들의 퇴거를 지휘했으며, 잠시 후 중공군의 제 2파가 시작되자 동료들이 퇴거하는 동안 기관총좌에서 적들을 향한 제압사격을 실시했다. 잠시 후 기관총의 탄약이 떨어지자 그는 다시 소총에 대검을 착검하여 적들을 헤치고 나아가 다른 기관총좌로 이동했으며, 이 곳에서 계속 자신의 분대원들이 퇴각하는..

[1990. 8] 쿠웨이트군의 기개를 보여준 아흐메드 알-자베르 기지 전투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 후 수복된 쿠웨이트의 아흐메드 알-자베르 공군기지 앞에서 포즈를 취한 미 제 8 전투비행대대원들과 록히드(Lockheed) F-117A의 모습. 이 강화진지는 사막의 폭풍작전 중 미군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이 기지는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중에 벌어진 가교 전투(the Battle of the Bridges) 당시 이라크군에게 포위당했다. 하지만 기지 내에 있던 쿠웨이트 병사들은 퇴각에 실패했으며, 기지내 비전투원들이 퇴각하는 동안 항복을 종용하는 이라크군에게 저항하다가 곧 전멸 당했다. 이라크 군은 이들을 모두 처형한 후 쿠웨이트 군 지휘관의 시신을 깃대 위에 걸어 올렸다. 오늘날 해당 기지는 문제의 깃대를 ..

[1942. 10] '진짜'로 알려진 '가짜' 전투 사진

1942년 10월 말, "라이트풋(Lightfoot: 2차 엘 알라메인 전투)" 작전 기간 중 촬영된 사진. 사진 속 영국군 병사들은 독일제 MP-40을 만져보고 있다. 이들 근처에는 독일군으로부터 노획한 50mm Pak 38 대전차포와 '죽은 독일 병사의 시신'이 사진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완벽한' 사진은 전쟁 채권 판매 홍보용으로 쓰인 사진으로, 실제 전투 후의 사진이 아니라 "쳇(Chet)"이라는 남자가 사진 홍보용으로 연출한 것이다. 렌 체트윈(Len Chetwyn) 병장은 "전투장면 재연 전문" 사진사로, 영국 육군 사진부대(AFPU) 소속으로 활약했다. 사실 그가 전선에서 한참 먼 곳에서 '전투 장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당대에도 큰 비판을 받았다. 실제 전투 장면을 찍기 위해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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