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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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141

[1978]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 우젠슝 박사, 첫 울프상 수상자로 선정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인 우젠슝(吳健雄, 1912~1997) 박사는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일하면서 맨하탄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참여했다. 그녀는 기체확산 처리법을 이용하여 우라늄 U-235와 U-238 원소로 나누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기여했다. 이 방법은 오크 릿지(Oak Ridge)에 K-25 기체확산 공장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우 박사는 1912년 청나라의 상하이(上海)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 아직 중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교육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음에도 그녀의 부친은 그녀가 학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성년이 된 우젠슝은 상하이의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교(UC Be..

우주 · 과학 2023.05.25

[1945. 4. 17] 네덜란드 레지스탕스 여성대원, 종전을 3주 남기고 처형 당하다

1945년 4월 17일, 네덜란드 오베르베인(Overveen)에서 촬영된 야네트여 요하나 스하프트 (Jannetje Johnanna Schaft, 1920~1945), 애칭 '하니 스하프트 (Hannie Schaft)의 모습. 그녀는 네덜란드 레지스탕스 대원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 그녀는 독일군에게 체포된 뒤 오베르베인의 해안가로 끌려나와 총살형에 처해졌다. 독일군 병사는 그녀의 머리를 겨누고 총을 당겼으나 이 첫 발은 그녀를 죽이지 못하고 부상만 입혔다.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방아쇠를 당긴 병사를 돌아보며 조롱조로 한 마디 했다. "내가 쏴도 너보다는 잘 쏘겠다." 결국 처형당한 그녀는 그 자리에 매장됐으며, 시신은 전후에 이장되어 다른 421명의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블루멘달(B..

[1945. 5] 오키나와 전투 중 전사한 아들을 전장에서 애도하는 미군 대령

1945년 5월, 오키나와에서 아들인 마이크 펜턴(Mike Fenton 1925~1945) 일병의 임시 장례식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 중인 미 해병대의 프랜시스 펜턴(Francis Fenton) 대령의 모습. 이 사진은 해병대 전통을 따른 한 가족이 연루된 오키나와 전투의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프랜시스 I. 펜턴 대령(준장 예편)은 1917년 8월 미 해병대에 병사로 입대했다. 그는 계급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가 1944년 7월 미 제 1해병사단 공병장교로 임관했다. 그는 1사단에 소속되어 펠리리우 전투에 참가해 동성훈장을 수상했으며, 그 직후 이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됐다. 펜턴 대령이 상급부대로 올라간 동안 그의 막내아들인 마이클 펜턴은 1943년 8월 17일 미 해병대에 입대해..

[1913. 8] 영국에서 건조 후 일본으로 출항한 순양전함 공고 함

1913년 8월, 영국 포츠머스(Portsmouth) 항구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향하고 있는 일본 해군 순양전함(巡洋戰艦). 공고(金剛)는 일본 칸사이(關西)지역 가와치(河内) 인근(오늘 날의 오사카[大阪]현 주변)에 위치한 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공고는 일본 해군이 도입한 공고급 순양전함의 선두함으로, 순양 전함은 함정의 크기나 무장은 거의 전함과 유사하지만 방어력을 조금 낮추고 대신 속도를 높인 함종을 말한다. 공고 함은 1908년 영국의 인빈시블(HMS Invincible)함 취역 후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에서 1910년에 입법한 '해군력 확충법'에 근거하여 영국에 건조 주문을 넣었고, 이에 영국 함정 엔지니어인 조지 털스턴(George Thurston, 1869~1950)이 설계했다. 공고급은 총..

[1962] '독일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나이', 모사드와 손잡다

독일군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오토 슈코르체니(Otto Johann Anton Skorzeny, 1908~1975). 오스트리아 태생인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SS 무장친위대 소속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가장 친애한 특공대원이었으며, 연합군은 그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는 2차대전 말엽 무사히 독일을 빠져나갔으며, 놀랍게도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에 마지막으로 협조하며 최후의 '더러운 일'을 처리한 후 어디론가 영영 사라졌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게릴라전에 특화된 인물이었으며, 특공대 스타일의 기습작전에도 능했다. 그는 194cm의 장신이었으며, 왼쪽 뺨에는 펜싱 결투 중에 생긴 깊은 칼자국이 있었다. 슈코르체니는 SS에 입대한 후..

[1945. 5. 15] 항복하는 독일의 유보트를 감시하는 미군 최초의 제식 헬리콥터

1945년 5월 15일, 미 해군이 독일의 U-858함을 나포한 직후 촬영한 사진. 이미 해당 함의 함장은 4일 전에 항복 의사를 밝혔으며, 항복을 수리한 미 해군은 계속 전진 항해하여 미국 델라웨어 주 포트 마일스(Fort Miles, DE)까지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사진은 포트 마일스에 도착한 후 독일 승조원들이 하선하고 미 해군 수병들이 함을 인수하는 모습이며, 상공에서는 미군의 HNS-I 헬리콥터가 인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 헬리콥터는 미군이 사상 처음으로 편제장비로 도입한 헬리콥터이다. : HNS-I 헬리콥터는 시콜스키(Sikorsky, 現 록히드-마틴)에서 제작한 헬리콥터로, 처음 제작 목적은 항공기 조종사 훈련 용도였다. 복좌식으로 설계된 이 초창기 형태의 헬기는 이고르 시코르스키(Ig..

[1941. 4. 15] 선물 배달 중 격추 기록을 추가한 독일 공군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

1941년 4월 15일,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조종사인 아돌프 갈란트(Adolf Galland, 1912~1996)가 테오 오스터캄프(Theodor Osterkamp, 1892~1975) 장군의 생일선물로 랍스터와 샴페인을 배달하기 위해 이륙 준비 중인 모습. 갈란트는 프랑스 르 투케(Le Touquet)에 주둔 중이던 오스터캄프 장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프랑스로 출발했다. 그는 독일에서 출발해 프랑스로 향하던 중 자신의 윙맨과 함께 경로에서 잠시 이탈해 영국 근처까지 날아가 왕립공군 전투기를 찾았다. 갈란트는 도버(Dover) 해안의 절벽 인근에서 스핏파이어 편대를 발견하고 이들에게 다가갔다. 갈란트는 윙맨과 함께 스핏파이어를 공격해 두 대를 격추했으며, 추가로 한 대를 더 맞췄으나 추락여부까..

[1945. 5. 10] 항복 후 미군 장성과 기념촬영을 한 독일공군 케셀링 원수

1945년 5월 10일,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튿날 함께 기념촬영을 한 알베르트 케셀링(Albert Kesselring) 독일국방군 원수(중앙), 맥스웰 테일러(Maxwell D. Taylor) 미육군 소장(우측, 101 공정사단장), 그리고 제럴드 히긴스(Gerald J. Higgins) 미 육군 준장(좌측, 101 공정사단 부사단장)의 모습. 케셀링 원수는 육군 출신이지만 개전 후 공군으로 전군하면서 독일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 총장을 지낸 인물로, 항복 당시 제1 항공군 군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1945년 5월 9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 잘펜델(Saalfendel)에서 미 101 공정사단에 항복했으며, 테일러 소장은 그와 한 차례 면담 후 케셀링 원수를 매우 정중하게 예우하면..

[1940. 5. 10] 네덜란드 강습을 위해 수송기에 오르는 독일 공정부대원들

독일 제 22 강습보병사단 병사들이 1940년 5월 10일 네덜란드 침공에 앞서 뮌스터에서 Ju-52 항공기에 오르고 있는 모습. 독일군은 525대의 Ju-52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 5월 전쟁 중 대부분을 파손당했다. 독일은 네덜란드 공격을 시작하면서 275~350대의 항공기를 잃었으며, 이들 기체는 대부분 수리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들 기체 대다수는 방공포나 전투기에 격추당한 것이 아니었으며, 비상 착륙 중 파괴되거나 점령한 적 활주로에 폭격을 하던 중 네덜란드군 야포나 보병의 사격에 맞아 추락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발켄베르크(Valkenburg) 활주로에서는 35대 가량의 Ju-52가 착륙 중 늪지에 소실됐는데, 워낙 무거운 Ju-52가 부드러운 늪지 위에 비상착륙 하다가 그대로 땅 속으로 빨..

[1940. 5. 5] 영국이 128년 만에 적에게 나포당한 함정- 기뢰부설 잠수함 '실' 함

1940년 5월 5일, 영국 왕립해군의 그램퍼스(Grampus)급 기뢰부설 잠수함인 실 함(HMS Seal)이 독일군 기뢰에 걸려 파손된 뒤 부상하다가 독일군에게 나포됐다. 실 함은 1812년 전쟁 이래 나포된 첫 왕립해군 함정이었다. 독일은 함정을 분석한 결과 영국군의 잠수함 기술은 독일에 비해 뒤떨어졌으나, 어뢰 기술은 앞서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독일군은 프로파간다 가치 때문에 일부러 실 함을 개장한 후 독일군 마크를 달아 전선에 다시 투입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예비부품이 없는데다 개장 비용 자체도 적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독일은 이 비용을 들여 실을 투입하는 것이 프로파간다 효과에 비해 가치가 낮다는 판단에 따라 전선에 투입하지 않고 방치했다.

무기체계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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