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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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 114

[1940. 7. 18] 일본의 쉰들러, 스기하라 지우네의 '생명의 비자'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 1900~1986)는 리투아니아에 파견되어 있던 일본 외교관으로, 나치 독일이 리투아니아에서 유대인들을 집결시키기 시작하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대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1940년 7월 18일부터 약 열흘동안 비합법적인 비자를 발행했다. 그는 수기(手記)로 하루에 18시간씩 비자를 써서 유럽을 탈출하려는 유대인들에게 발급했다. 결국 1940년 7월 28일자로 일본이 리투아니아 일본 대사관에 대해 폐쇄 명령을 내리자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철수하는 와중에도 계속 비자를 발행했으며, 마지막에는 기차에 올라탄 뒤 창문을 통해 마지막 비자를 유대인들에게 뿌리며 역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세상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유대인들을 살리고자 한 그의 희생적 행위를 그가 사망하기 불과 1년 전인 ..

[1944. 12. 15] 美, 오성(五星) 계급 신설...최초의 '원수' 등장

1944년 12월 15일,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팽창하는 미군의 지휘권에 발맞추기 위해 오성 장관급 계급인 원수가 신설됐다. 최초로 원수 계급을 수여받은 인물은 윌리엄 레이히(William D. Leahy, 1875~1959) 제독이며 뒤를 이어 총 6명이 추후 한 주 간격으로 진급하여 원수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미군이 원수를 신설하게 된 이유는 연합군 부사령관으로 지명된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L. Montgomery, 1887-1976) 장군과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장군 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미국인에게 사령관직을 내준 것이 못마땅하던 몽고메리는 지속적으로 아이젠하워를 도발했지만, 아이젠하워는 연합군 ..

[1967. 10. 9] 공산혁명가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체포 후 처형

1967년 10월 9일,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 "Che" Guevara, 1928~1967)가 볼리비아의 라 이게라(La Higuera)에서 처형당했다. 남미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를 자처한 그는 쿠바 혁명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으며,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1926~2016)가 쿠바의 독재자로 등극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통칭 '7.26 혁명'으로 풀젠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01~1973) 대통령을 축출했으며, 곧 쿠바에 전체주의 공산국가를 수립했다. 게바라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단초가 된 소련 미사일을 쿠바로 끌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체 게바라는 3년 후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와 남미 등지를 돌며 계속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

현대사 2022.12.15

[1970] 영춘권의 두 대가(大家), 엽문과 이소룡

◎ 엽문*은 중국 포산(佛山) 난하이현(南海縣) 태생. 집안이 부유했으며, 진화순(陳華順, 1836~1909)에게 사사해 영춘권에 입문했다. 하지만 영춘권 입문 당시 진화순이 이미 노령이었으므로 얼마 안 가 사망했으며, 대신 진화순의 제자인 오중소가 뒤를 이어 그를 가르쳤다. 그는 16세에 광동(廣東)성-홍콩(香港)으로 가 사립학교를 다녔으며, 이 곳에서 스승 진화순의 선배 아들인 양벽을 만나 영춘권을 마저 배웠다. 엽문은 24세에 고향 포산으로 귀향하여 중화민국 국민정부에서 경관이 되었으며,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경관 일을 했으나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군이 승리하자 국민정부 밑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해를 입을까 우려해 홍콩으로 피신했다. 이 곳에서 본격적으로 무술 도장을 연 그는 초반에는..

현대사 2022.12.14

[1936. 8. 24] 맥아더 원수의 '트레이드마크', 필리핀 원수 군모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원수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원수 모(帽). 맥아더는 미 육군 원수(General of the Army, GA)이자 필리핀 육군 원수(Field Marshal) 계급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1930년대에 육군참모총장을 한 차례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던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필리핀 작전 중의 공로로 명예대훈장을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미-서 전쟁 중 명예대훈장을 받은 부친(아더 맥아더[Arthur MacArthur, Jr., 1845~1912] 중장)과 함께 "2대가 명예대훈장을 받은" 단 두 사례 중 하나이다. 그는 미 육군에서 오성계급에 도달한 다섯 명 중 하나이..

[1934]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에서 촬영 중인 여류 사진작가 마거릿 브루크-와이트

1934년, 뉴욕 시에 건립한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 61층에 장식된 독수리 두상 하나를 촬영 중인 LIFE 지 사진기자 마거릿 부르크-와이트(Margaret Bourke-White, 1904~1971)의 모습. :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사. 처음 소련의 '5년 개발 계획'이 시작됐을 때 소련 산업을 취재하면서 이름이 알려졌으며, 이후 종군사진기자로 활약하다가 포트 펙 댐(Fort Peck Dam) 사진을 촬영한 것이 LIFE지 창간 첫 표지 사진이 되었다. 건축물 사진에 주로 관심이 많았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장에서 촬영기자로 활동하는 것이 허가된 첫 여성 사진기자가 되었다. 1941년에는 독일이 독-소 방공협정을 깨고 공세를 시작한 순간 소련을 여행 중이었으므로, 독..

근대사 2022.12.09

[1950. 10] 6.25 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에이스, 세르게이 크라마렌코 대위

소련 공군의 에이스인 세르게이 크라마렌코(Sergey Kramarenko, 1923~2020) 대위의 모습. 사진은 그가 소련 공군 제 324 전투항공사단 예하 176 호위전투항공연대에 소속되어 있던 당시 촬영한 것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부터 참전했으며, 1951년 4월~1952년 1월까지 북한에 파병되어 총 15대의 UN군 항공기를 격추해 에이스가 되었다. : 소련의 '인민영웅' 칭호를 받은 에이스 조종사. 소련이 배출했던 '마지막' 에이스였으며, 2차 세계대전과 6.25 두 전쟁 참전 후 1970년대에는 이라크 공군과 알제리 공군 자문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소련군에서 공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인 칼리노프카(Kalinovka) 태생으로, 부모가 어려서 이혼하는 바람에 어머..

[1943. 10. 14] 스위스에 비상착륙한 미군 B-17의 '검은 목요일'

1943년 10월 14일,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에 촬영된 사진. 이날 임무를 위해 출격한 출격한 총 291대의 B-17 플라잉 포트레스(Flying Fortress) 중 60대는 격추당했고, 17대는 심각하게 파손되어 귀환 후 폐기해야 했으며, 나머지 121대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입었다. 미 제 8공군 제 305 폭격단 예하 364 폭격비행대대 소속 B-17F, 기체번호 4230831 WF-H "레이지 베이비(Lazy Baby)"역시 1943년 10월 14일 "검은 목요일"날 격추 당했다. 해당 기체는 스위스 슐라토프(Schlatthof)의 들판에 랜딩기어를 빼지 않은 채로 동체 착륙했으며, 이 파손된 기체는 곧 스위스 바젤란트의 애쉬(Aesch) 마을 중..

[1941. 12. 7] 일본 정부로부터도 이용당한 주미 하와이 일본대사, 노무라 제독

1941년 11월 14일, 주미 일본대사였던 기치사부로 노무라(野村 吉三郎, 1877~1964) 제독은 미-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자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미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으며, 일본 정부에는 미 정부와 협상을 하기 위해 융통성 없는 "데드라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던 당시의 주미 일본대사. 와카야마(和歌山)현 출신으로, 일본 해군병학교(海軍兵學校) 26기로 입교하여 1898년 57명의 사관생도 중 2등으로 졸업했다. 견습사관을 거쳐 1900년 1월에 소위 계급을 단 그는 전함 미카사(三笠)에 배속되어 1901년부터 1902년까지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러-일 전쟁이 발발할 당시 순양함 다카치호(高千穂)함 수석 항해사로 참전했으며, 전후에도 순양함..

[1965] 베트남 공화국군의 암 호랑이, 호 티커 상사

"메콩 삼각주의 암 호랑이"라 불리던 호 티커(Ho Thi Que, ?~1965) 상사의 모습. 그녀는 베트남 전쟁 중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제 44 레인저 대대, 통칭 "흑표(黑豹)" 부대 소속으로 싸웠다. 44 레인저 부대는 전쟁기간 중 베트남 전국해방전선(NLF), 통칭 "베트콩(Viet Cong)"을 상대로 싸웠으며, 그녀는 소속부대에서 의무병 겸 정보병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제 44 레인저 대대장인 응우엔 반 단(Nguyen Van Dan) 소령과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여섯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전쟁기간 내내 접적지역에서 의무병으로 활동했으며, 부상자를 발견하면 스스로의 안전을 신경쓰지 않고 달려가 치료했다. 호 티커 상사는 남베트남 정부로부터 용맹 십자훈장을 세 차례나 수훈받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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