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인물사 111

[1942. 10] '진짜'로 알려진 '가짜' 전투 사진

1942년 10월 말, "라이트풋(Lightfoot: 2차 엘 알라메인 전투)" 작전 기간 중 촬영된 사진. 사진 속 영국군 병사들은 독일제 MP-40을 만져보고 있다. 이들 근처에는 독일군으로부터 노획한 50mm Pak 38 대전차포와 '죽은 독일 병사의 시신'이 사진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완벽한' 사진은 전쟁 채권 판매 홍보용으로 쓰인 사진으로, 실제 전투 후의 사진이 아니라 "쳇(Chet)"이라는 남자가 사진 홍보용으로 연출한 것이다. 렌 체트윈(Len Chetwyn) 병장은 "전투장면 재연 전문" 사진사로, 영국 육군 사진부대(AFPU) 소속으로 활약했다. 사실 그가 전선에서 한참 먼 곳에서 '전투 장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당대에도 큰 비판을 받았다. 실제 전투 장면을 찍기 위해 목숨..

[1947. 2. 24] 동족 유대인을 팔아넘긴 안스 판 데이크의 재판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재판 중인 안스 판 데이크(Ans van Dijk, 1905~1948)의 모습. 2차대전 중 그녀는 유대인들을 꾀어낸 뒤 게슈타포에게 유인해주고, 그 댓가로 돈을 받았다. 그녀는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인 척 위장했으며, 유대인에게 접근해 은닉처를 소개해주는 척 하면서 위조서류로 신뢰를 샀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145명을 함정으로 유인했으며, 그 중에는 그녀의 남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 85명은 결국 유대인수용소 내 가스실에서 살해당했다. 추정에는 실제 그녀가 죽음으로 이끈 사람은 최대 700명까지 달할 것으로도 보고 있으며, 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안네 프랑크(Anna Frank, 1929~1945) 가족 역시 그녀가 밀고했을 가능성이..

[1968. 5. 2] 1000:1의 신화를 남긴 전설의 그린베레 대원

1968년, 베트남에서 1000:1의 신화를 남긴 사나이. 로이 베나비데스(Roy P. Benavidez, 1935~1998)는 1935년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멕시코 인이었으며, 모친은 멕시코 원주민인 야퀴(Yaqui)족 출신이었다. 그의 양친은 모두 베나비데스가 어렸을 적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어릴 적 스페인어 액센트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멕시코-원주민계 혈통이라는 인종적 배경 때문에도 배척당했다. 그는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과 일을 병행했으며, 그러던 중 '군대'가 이 모든 것을 해방해 줄 유일한 출구라고 판단하면서 미 육군에 입대하고자 했다. 그는 15세에 학업을 중단한 후 농장에서 일했으며, 최저 입대연령이 되자마자 곧장 미 육군에 병사로 입대했다. 그는 이..

[1942. 2. 14] 칸톤 섬 공습 당시 맥케인 제독의 비화(秘話)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연합군의 칸톤(Canton) 섬을 공습하던 당시, 태평양사령관이던 체스터 니미츠(Chester W. Nimitz, 1885~1966) 제독은 존 맥케인(John McCain, sr., 1884~1945) 제독이 방공호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니미츠 제독의 부관이 맥케인 제독의 집무실로 미친듯 달려가 방문을 열어보니, 그는 내실 화장실 안에서 변기에 틀니를 빠뜨려 그걸 꺼내려고 계속 변기를 휘젓고 있었다. 사건이 지나간 후 맥케인은 이 사실을 비밀로 묻어두려 했으나, 이후 그가 반복적으로 틀니를 살균 소독해달라는 말을 열 다섯 번이나 하면서 모두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게 되었고, 틀니 사건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되고 말았다. : 공화당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전 애리조나..

[1940] 독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마지막 사진

1940년, 네덜란드 도른(Doorn)의 자택에서 애견과 함께 촬영된 81세의 전(前) 독일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1941)의 모습. 1918년 11월 9일, 빌헬름 2세는 1888년 즉위 후 내내 지위를 지켜왔던 독일 황제("카이저") 자리를 내놓고 퇴위했다. 1918년 11월 3일, 독일 킬(Kiel)에서 발생한 제국 해군의 수병 반란으로 야기된 독일 혁명이 성공하면서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됐다. 독일 대공자이자 수상이던 막시밀리안 폰 바덴(Max von Baden, 1867~1929)은 11월 9일 정오를 기해 황제의 동의없이 빌헬름 2세의 퇴위를 발표했으며, 그 역시 곧이어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바덴은 후임으로 사회 민주당 당수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1945. 3. 21] 독일의 제트 에이스, 하인리히 에를러 소령의 최후

주요 전쟁터인 유럽의 한참 북쪽인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주로 활동한 독일 공군 제 5 전투비행단(JG5) "아이스미어(Eismeer)"는 상대적으로 전투빈도가 떨어지는 전장이 주 작전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부전선 최고 격추기록을 수립한 에이스를 다수 배출했다. 그 중에서 가장 월등했던 인물은 하인리히 에를러(Heinrich Ehler, 1917~1945) 중위(최종계급은 소령)로, 그는 전쟁 기간 중 애기(愛機)인 Me 262를 타고 총 208회의 격추를 기록했으며 그 중 10회의 격추는 서부전선, 나머지는 모두 동부전선에서 수립했다. 에를러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는 1944년 11월 12일, 제 5 전투비행단장이 영국군 폭격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대원들에게 알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인류 최초로 운석을 맞고도 살아남은 여성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운석에 맞은 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운석에 맞고도 살아남은 인물인 앤 엘리자베스 파울러 하지스(Ann Elizabeth Fowler Hodges, 1920~1972)가 운석에 맞은 후 촬영된 사진. 1954년, 자몽 정도 크기의 운석 파편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하지스의 농장 집 천장을 꿰뚫고 들어왔다. 이 파편은 지붕을 뚫고 들어와 거실로 들어왔고, 바닥에 튀기면서 나무로 만든 대형 라디오 콘솔을 박살냈다. 그리고나서는 거실 소파에서 낮잠을 자던 하지스의 허리를 강타한 뒤 바닥에 처박혔다. 당시 서른 네살이던 그녀는 허리에 뜨거운 운석이 스쳐 심하게 부어오르고 피부가 검게 변했지만, 걷는데 무리는 없었다. 이 사건은 그녀에게 날벼락이긴 했지만, 대신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면서 유명..

우주 · 과학 2022.11.30

[1920. 11. 20]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최초의 여성 수병, 낸시 벤틀리

1920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타즈메니아 섬 숲 속에서 한 소녀가 나무 위에서 놀다 떨어져 다쳤다. 그녀의 이름은 낸시 벤틀리(Nancy Bentley). 그녀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아래에 있던 뱀을 놀라게 했고, 뱀이 그녀의 팔목을 물었다. 독사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위급한 상태였으나, 문제는 그 곳은 깡촌...가장 가까운 마을은 소렐이라는 곳이지만 그 곳까지 제 시간에 도달 못할 가능성이 크자, 그녀의 아버지는 소녀를 보트에 태운 후 가장 가까이 떠 있던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경순양함인 시드니 함(HMAS Sydney)까지 노를 저어 갔다. 당시 시드니 함은 해안에서 연습에 참가 중이었다. 당연히 선내 의무병은 소녀를 치료할 의향이 있었으나, 문제는 이게 1920년대라는 점... 그렇다...

[1942. 9. 27] 미 해안수비대 유일의 명예훈장 수훈자, 더글러스 먼로 하사

미 해안수비대(USCG: United States Coast Guard) 중 유일한 명예대훈장 수훈자인 더글러스 앨버트 먼로(Douglas Albert Munro, 1919~1942) 하사(Signalman First Class)의 모습. 그는 1942년 9월, 2차 마타니카우 전투에서 미 해병대 진지가 일본군에게 압도당하자 이들 해병을 탈출시키기 위해 투입됐다. 그는 히긴스 보트(Higgins Boat)를 조종해 해안까지 도달했으나, 해병대원들이 가득 탄 상륙정이 공격받게 되자 자신의 보트를 들이대 방패로 삼아 대신 기관총 세례를 받고 전사했다. 향년 22세. : 미국계 부친, 영국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캐나다에서 출생했다. 하지만 가족은 곧 미국으로 이주해 워싱턴 주에서 자랐으며, 중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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