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역사

사진과 함께 살펴보는 세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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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 114

[1944. 1. 1] 이오지마로 가기 전 마지막 기념촬영을 한 일본군 중위 가족

2014년에 출간된 댄 킹(Dan King)의 소설 『이오지마(硫黄島)라는 이름의 무덤(A Tomb Called Iwo Jima)』은 일본어에 능통한 미국인이 쓴 소설이지만, 실제 이오지마에서 마지막 항전을 한 일본군의 내용을 담았다. 이 소설은 실화에 바탕한 내용이다. 사진은 1944년 1월 1일, 나라(奈良)현 사쿠라이(桜井)시에서 부모와 함께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한 하토리 겐이치(服部健一, ?~?) 중위와 그의 동생인 하토리 겐지(服部健二, ?~?)의 모습이다. 하토리 겐이치 중위(맨 오른쪽)는 당시 결혼을 하여 슬하에 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육군 예비대 소속이었으나 현역으로 전환되어 오사카(大阪) 지역의 해안포대장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이오지마로 떠나는 제 10 대전차대대 ..

[1916. 12. 30] 러시아를 흔든 괴승(怪僧) 라스푸틴의 최후

그레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은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Nickolai Alexandrovich Romanov, 1868~1918)와 친밀해지면서 제정 러시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결과적으로는 러시아가 몰락하는 시발점을 마련했다. 사진은 1910년 경에 촬영된 것을 디지털 채색한 것이다. : 러시아 중부 포크로브스코예(Pokrovskoye: 현재의 튜멘 주) 출신. 시베리아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897년 한 수도원에 순례를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아예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수도승 혹은 '방랑 순례자(스트라니크)'를 자처했지만, 그렇다고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제나 수사 같은 공식 직함이나 직위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는 1903년부터 상페테르부르크(..

근대사 2022.12.27

[일본사] 전장의 꽃, 일본의 여성 사무라이들

"사무라이(待)"는 남성형 단어지만, 일본의 무사(부시, 武士) 계급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은 이들은 흔히 "온나무샤(女武者)"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실제로 크고 작은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580년 3월, 다케다 가쓰요리(武田 勝頼, 1546~1582)와 호조 우지마사(北条 氏政, 1538~1590)-후우마 코타로(風魔 小太郎, ?~1603) 연합군 간에 벌어진 오모스(重須) 전투에서 전사한 시신을 훗날 DNA 테스트로 검사한 결과, 105개의 시신 중 35개가 여성의 시신이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 주로 "남성의 영역"인 군사 분야에서 여성 무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겐페이(源平)전쟁(1180~1185) 때로, 헤이안 시대 말 두 유력 가문인 다이라(平) 가문과 미나모토(源) ..

중근세사 2022.12.25

[1945. 12. 21] 미 육군의 맹장, 조지 패튼 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

1945년 12월 21일, 미국의 명장인 조지 패튼(George Smith Patton, 1885~1945) 장군이 독일 만하임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 독불장군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명장으로, 히틀러조차 "연합군에서 가장 위험한 사내"라고 불렀던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주 LA 외곽인 산 게이브리얼(San Gabriel)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군인을 동경했으며, 평생 "군인 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지원할 때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신청을 넣었으나 상원의원 추천장이 없어 대기에 걸리자 ROTC 과정이 있는 여러 대학에 지원했고, 그 중 프린스턴 칼리지(Princeton College)에 입학 허가가 나왔으나 버지니아 사관학교(VMI)로 진학했다. 그러던 ..

[1978. 6. 1] 대통령에 맞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 미국의 영웅

1944년 8월 11일, 적지 종심에 연합군 특수작전 요원을 침투시키는 "제드버러(Jedburgh)" 작전을 위해 낙하산 강하작전을 준비하던 중 촬영된 존 K. 싱글러브(John Kirk Singlaub, 1921~2022) 중위의 모습. 가슴에는 공정강하용으로 제작된 .3 구경 M1-A1 개머리판 접이식 카빈을 매고 있다. 그는 작전 투입에 앞서 적에게 잡힐 경우를 대비해 청산가리가 든 캡슐이 지급되자 이를 받지 않고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전 적에게 잡힐 계획이 없거든요." 싱글러브는 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참전했으며, 두 개의 우수근무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 은성훈장(Silver Star), 퍼플하트(Purple ..

[1950. 12. 5] 장진호 전투를 버텨낸 미 해병대의 전설, 체스티 풀러 장군

체스티 풀러 장군은 미군에서 역사상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실전 공적 검증이 되어야만 수여 되는 해군 십자 훈장만 다섯 개를 받았고, 우수근무십자훈장까지 하나가 있어 "십자 훈장"만 여섯 개를 보유한 인물이다. 역사상 십자훈장 수가 그보다 많은 인물은 1차세계대전 중 육군 항공대 조종사로 참전해 적기 26기를 격추 한 에디 리켄벡커(Edward Vernon Rickenbacker, 1890~1973) 대위 뿐이다. 버지니아 주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VA) 태생. 부친을 열 살에 여의고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려서 부터 남북전쟁 이야기에 심취해 특히 토머스 '스톤월'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 1824~1863) 장군에게 매료됐다. ..

[1950. 8. 22] 국군 장군이 된 인민군 중좌 - 정봉욱 소장

사진 속 인물인 정봉욱(鄭鳳旭, 1924~2018) 중좌는 유일하게 전쟁중 북한군 좌관급 장교가 국군에 투항한 뒤 국군 장교로 임관한 사례다. 그는 원래 북한 인민군 제 13사단에 소속되어 있던 포병장교였다. 그는 당번병 하나와 함께 하루 전 날인 8월 21일에 미 제 25사단 27연대에 투항했다가 국군 제 1사단에 인계됐다. 황해도 안악군 태생. 일제시대 때 태어나 중국국민혁명군 제 18집단군, 혹은 공산군 예하 "팔로군(八路軍)"에 소속되어 중국에서 활동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했으며, 평양 군관학교를 거쳐 인민군 포병으로 임관했다. 6.25가 발발했을 당시에는 전연군단인 인민군 1군단 예하 13사단 사단 포병대에 소속되어 참전했다. 북한 인민군 1군단은 개전과 함께 남침을 시작한 후 강원도를 거..

[1941. 12] 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장교가 된 안창호 의사의 딸, 수산 안 커디

"많은 사람들은 여성이 군에 속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했죠." 한국계 이민가정 출신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수산 안 커디(Susan Ahn Cuddy/안수산)와 그녀의 형제 자매들은 어려서부터 줄곧 부친으로부터 "훌륭한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부친의 가르침대로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에 공습을 가해오자 곧장 미 해군에 수병으로 입대해 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장교로 임관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중 전투함에 탑승해 미 해군 역사상 첫 함포장교(gunnery officer)가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해군 내의 엄청난 성 차별과 인종 차별을 겪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50구경 기관총 교관으로 활약하며..

[1974. 12. 18] 일본육군의 마지막 항복자, 나카무라 테루오 이병

1974년 12월 18일, 인도네시아 모로타이 섬에서 저항하던 나카무라 테루오(中村 輝夫, 1919~1979)가 항복해 일본군의 공식적인 마지막 항복자가 됐다. 그는 대만계 팡카족으로, 일본인이 아니다. 원래 이름은 아툰 팔라린이던 그는 1943년 11월 대만에서 편성한 타카사고 자원부대에 입대했으며, 동인도 모로타이 섬에 배치됐다. 하지만 그가 배치되고나서 불과 얼마 뒤인 1944년 11월, 모로타이 전투 후 연합군이 섬을 장악했고, 일본군 역시 그가 11월 13일에 전사했다고 군적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섬 깊숙한 곳에서 소수의 병사들과 살아남은 그는 저항을 시작했고, 어느새 저항은 1950년대까지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게릴라 행위를 계속하다 인도네시아 경..

[1971. 12. 24] 항공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17세 소녀

1971년 12월 24일, 탑승 중이던 여객기가 벼락을 맞은 후 항공기에서 빨려나갔지만 살아남은 17세의 소녀인 줄리안 퀘프케(Juliane Koepcke, 1954~)의 모습. 그녀는 좌석벨트에 묶인 채로 고도 3km 상공에서 떨어졌지만 살아남았고, 10일간 아마존 정글을 헤치고 다니면서 버텼다. 사고로부터 열흘 후 그녀는 아직 연료가 꽤 차 있는 보트를 발견했으며, 연료를 퍼내 자신의 상처에 부어 팔 위에서 들끓기 시작한 구더기를 모두 제거했다. 그녀는 탑승자와 승무원을 포함, 총 93명이 탑승했던 란사(LANSA) 508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 이날 페루 국적의 항공사인 LANSA(Lineas Aéreas Nacionales Sociedad Anonima/1972년 폐업) 508편은 리마에서..

현대사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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